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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미한 사건” 이슬람혁명의 상징 타격당한 이란이 ‘차분한 대응’ 하는 까닭은

by bomida 2017. 6. 8.

이란 수도 테헤란의 호메이니 영묘와 의사당. 이슬람국가(IS)가 7일(현지시간) 저격한 것은 이란의 자부심인 이슬람혁명과 민주주의였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변 걸프국들이 이란을 경계하는 이유도 이 두 가지, 시아파라는 이란의 종교적 특성과 정치 시스템 때문이다. 하지만 테헤란이 IS에 처음 뚫렸다는 사실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것은 예상보다 차분한 이란의 ‘로키(low-key) 대응’이다.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라마단을 맞아 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날 테러를 “폭죽놀이”라고 언급하며 “이란 국민들의 의지를 꺾기에 너무 약하다.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테러리스트는 신의 뜻으로 뿌리 뽑힐 것이다. 이란은 전진하고 있다”고 했다.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늘 그래왔듯이 이란의 메시지는 ‘테러는 공통의 문제’라는 것”이라며 극단주의와 테러리즘에 맞서기 위한 국제사회의 협력을 촉구했다. 알리 라리자니 국회의장은 의회에 나와 “테러의 방어 요새인 이란에서도 이들이 문제를 일으켰으니 엄중히 다뤄야 한다”면서도 “비겁한 테러리스트들이 일으킨 경미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이슬람국가(IS)가 이란 수도 테헤란을 연쇄 공격한 7일(현지시간)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가 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테헤란_EPA연합뉴스


 

테헤란을 공격한 IS 테러범들이 이란 출신으로 보인다는 점이 충격을 안긴 것은 사실이다. 이란 내부까지 극단주의가 침투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수니와 시아의 종파 갈등이 불거질 위험성도 있다. 이란이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미 시리아와 이라크를 영향력하에 둔 이란으로선 사태를 더 키워서 득이 될 게 없다. 오히려 종파 차이를 부각시키고, 사우디 등 아랍국들과의 갈등이 악화될 수 있다. 핵합의는 여전히 유효한 데다 경제 제재도 더디게나마 풀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이 요동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를 방문해 이란을 맹비난했을 때에도 이란은 “가치 없는 쇼”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이면에서 사우디가 계속 이란을 고립시키려 하고 트럼프가 이를 더욱 부추길 경우, 정세가 더욱 복잡해질 수 있다. 트럼프의 순방 뒤 사우디는 걸프국들을 규합해 이란과 협력한 카타르와 단교했다. 로하니는 “이란의 적들은 자신들 사회의 불만, 이슬람 가치의 붕괴, 역내에서의 패배를 감추기 위해 탁피리(이단자·IS)를 고용하고 지원한다”고 했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은 트위터에 테러범들을 ‘대리인’이라 부르며 “그들이 공격한 것은 그 주인이 가장 경멸하는 민주주의의 전당”이라고 썼다. 선거로 정권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이란을 걸프 왕국들이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음을 비꼰 것이다.

 

주시해야 할 것은 혁명수비대의 움직임이다. IS 격퇴전에 나선 이라크와 시리아 정부를 지원하고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정치조직 헤즈볼라를 도와온 것도 이들이었다. 혁명수비대는 “미국 대통령이 중동의 반동 정부를 만난 지 1주일 뒤 테러가 일어났다”며 “그들(미국과 사우디)이 개입됐다는 증거”라는 성명을 냈다. 혁명수비대의 대외전략 부대인 ‘알쿠즈’ 병력 상당수가 시리아와 이라크 내전에 투입돼 IS 격퇴전에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란 내부적으로 로하니의 온건파 정부와, 혁명수비대를 축으로 한 보수강경파의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 이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시아 벨트’와 걸프의 균열이 더 심해질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사우디가 이런 균열을 만들어 이란에 대한 반감을 키우는 데에 트럼프가 힘을 싣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테헤란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는 성명에서 “테러를 지원하는 나라들은 스스로 만든 악행의 수렁에 희생자들을 빠뜨릴 위험에 처하게 된다”며 오히려 이란을 비난했다. 자리프 외교장관은 “불쾌한 성명”이라고 맞받았다.

 

트럼프는 카타르 단교 사태와 관련해서도 트위터에 “내가 중동 방문 때 ‘더 이상 급진 이데올로기에 대한 자금지원은 없을 것’이라고 했고, 정상들이 모두 카타르를 지목했다. 봐라!”라며 마치 단교를 지지하는 듯한 글을 올렸다. 뉴욕타임스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남긴 불안한 휴전(이란 핵합의)이 트럼프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테헤란 테러는 미국과 이란 관계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