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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뉴스]“미세먼지, 관리 못한 국가 탓”···줄잇는 국가 상대 소송

by bomida 2017. 5. 8.



깨끗한 공기를 마시지 못한 탓에 한 해 420만명(2015년 기준)이 기대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다. 미국의 비영리단체 보건영향연구소(HEI)는 지난 2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미세먼지 등 대기에 떠다니는 오염물질에 노출돼 조기에 사망한 이들은 25년 사이에 20%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나쁜 공기는 고혈압, 흡연 등과 함께 인간의 명을 단축시키는 중요한 원인이 됐다. 

악화된 대기오염은 환경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국가의 잘못이라며 정부를 행해 책임을 묻는 움직임도 늘었다. 안전하게 숨 쉴 수 있도록 국민을 보호하는 국가의 의무를 촉구하는 이들이 전 세계에서 ‘총대’를 매고 법정소송으로 맞서고 있다. 

지난 4일 중국 베이징 도심 거리에서 한 여성 공기 정화 마스크를 쓰고 걸어가고 있다. 이날 베이징에는 몽골과 중국 네이멍구(內蒙古)에서 발원한 황사로 올해 첫 확사 남색경보가 발령돼 2년만에 최악의 공기 상태를 기록했다. Getty Images


■도시에서 얻은 천식, 정부가 방치한 공기 탓  

4일(현지시간) 가디언에 따르면 천식 환자들이 영국 정부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추진 중이다. 정부가 기준치를 넘는 대기오염을 방치해 병을 얻게 됐다며 보상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영국은 2010년 이후 도시의 90%가 이산화질소 허용치를 초과하는 수준으로 공기가 나빠졌다. 이산화질소는 주로 디젤 차량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연간 4만명에 이르는 조기사망자 중 2만3500명이 여기에 노출돼 기대수명을 채우지 못했다는 정부 통계도 나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연간 병으로 숨진 환자 8명 중 1명인 700만명이 대기오염으로 인해 질환을 얻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번 소송을 맡은 프란시스 로슨 변호사는 “영국이 유럽연합(EU)이 정한 대기의 질 기준을 위반했고, 그 결과로 (천식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점을 들어 정부에 국가에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런던 등 오염된 지역 거주자들이 호흡 중 지나친 이산화질소에 노출돼 천식과 비슷한 증상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점을 들어 이를 증명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특히 대기오염이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과학적 증거도 계속 보강되고 있어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다. 

영국 환경단체인 클라이언트어스 역시 앞서 정부가 이산화질소를 2010년까지 줄이도록 한 EU의 환경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며 소송을 난 바 있다. 법원은 규정 위반을 최대한 빠른 시일 내 개선하라고 주문하며 단체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11월 인도 델리 시내에 짙은 스모그가 깔려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델리는 초미세먼지(2.5㎛ 이하) 농도는 평균 122μg/㎥ (2015년 기준)으로 최악의 수준이다. 세계에서 가장 미세먼지 상황이 나쁜 도시 10곳 중 4곳이 인도에 속해 있다. Getty Images


■숨쉬는 고통, 다음 세대에 넘기지 마라

악명높은 대기오염으로 수시로 휴교령이 떨어지는 인도에선 아홉살 소녀가 기후변화에 대처하지 못한 정부를 고소했다. 인도환경재판소에 52장에 달하는 청원서를 낸 리드히마 판데이양은 “청년들은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하나, 의사결정에는 참여하지 못한다”며 정부가 환경법을 이행하지 않은 무책임을 꼬집었다. 

WHO에 따르면 인도는 호흡기 질환 사망자가 인구 10명당 159명(2012년)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다. 델리는 1㎥ 당 초미세먼지(2.5㎛ 이하) 수치가 허용치의 수십배가 넘어 세계 최악의 수준이다. 세계에서 가장 미세먼지 농도가 짙은 도시 10개 중 4곳이 인도에 속해있다. 도심에서 진행 중인 각종 공사를 중단시키고 화력발전소 가동도 멈췄지만 큰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판데이양은 “인도는 화석연료 사용을 줄일 수 있음에도 온실가스 배출 규제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이는 나와 미래 세대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가디언에 말했다. 

그의 청원에 대해 재판소는 “정부가 기후변화에 따른 악영향을 줄이거나 최소화하기 위한 효과적이고 과학적인 조치를 취하라”고 명령했다. 


미세먼지가 나쁨 수준을 보인 지난 3월 서울 광화문광장에 마스크를 쓴 학생들이 지나가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1㎥ 당 μg 아시아 도시 연간 평균 초미세먼지(2.5㎛ 이하) 농도 순위 | 세계보건기구(WHO)



숨쉬기 힘든 공기로 시민들이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중국에서도 ‘스모그 투사’들이 정부를 상대로 움직임에 나서고 있다. 

인권침해 소송 전문 변호사 5명은 올 1월 베이징과 톈진(天津), 허베이(河北)성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주민들을 대기오염으로부터 보호하지 못한 지방정부들이 시민 1명당 마스크 비용 65위안(약 1만원)과 정신적 피해보상금 9999위안(약 166만원) 등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유해가스의 배출량을 감축시킬 여력이 있으며 이를 위한 오염방지 법규도 제정해 놓고는 제대로 시행하지 않는데 분노한 이들은 중국 공안당국의 소송 철회 압박에도 “스모그의 심각성은 인권침해보다 심각하다”며 맞서고 있다. 

미세먼지 농도가 매년 짙어지고 있는 한국에서도 정부를 상대로 한 첫 소송이 제기돼 있는 상태다. 최열 환경재단 대표와 춘천지역 안경재 변호사 등은 식목일이었던 지난달 5일 대한민국과 중국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이들은 중국이 국제사회 일원으로 오염물질을 관리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아 국제 규범을 위반했고, 한국 정부는 미세먼지의 원인도 파악하지 못한채 국민의 안전과 행복 추구권을 보호할 의무를 다하지 않은 탓으로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