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들에겐 조용한 청년이었던 영국 맨체스터 아레나의 자살폭탄 테러범 살만 아베디(22)는 정부가 이미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파악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고위험’이 아닌 ‘주변적 위험’ 수준으로 분류해 참극은 막지 못했다. 테러는 점차 ‘외로운 늑대’나 개별 지령을 받는 극단주의 추종자, 시리아 등 테러집단의 ‘본거지’에 가지 못한 ‘좌절된 여행자’들이 자국의 평범한 일상을 노리는 공격이 돼 가고 있다. 조직보다 파편화된 이들 ‘주변부’를 막는 일은 이전보다 더 어려운 숙제가 됐다.
아베디는 1994년 맨체스터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무아마르 카다피 독재정권을 피해 리비아를 떠나 영국으로 이민을 왔고, 아버지는 공항 보안요원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가족은 2011년 아랍의 봄으로 카다피 정권이 무너지자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아베디는 형과 남았다. 자폭 현장 근처에 있는 샐퍼드 대학에 입학해 경영학을 공부했지만 지난해 9월 학교를 그만뒀다.
23일(현지시간) 한 남성이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시내의 한 분수 앞에 서 있다. 전날 발생한 영국 맨체스터 자폭테러로 희생된 22명을 추모하기 위해 프로젝터로 영국 국기가 분수에 투사됐다. 자그레브 _ AFP연합뉴스
한 리비아계 주민은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좋아했으며 조용하고, 언제나 공손한 소년이었다”고 말했다. 이 청년이 언제 극단주의자로 변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맨체스터의 디즈버리 이슬람 사원의 성직자 무함마드 엘사에이티는 그에게 다른 면이 있었다고 했다. 무함마드는 “IS 등 테러리즘을 비판하는 설교를 하자 아베디가 나를 화난 표정으로 바라봤다”며 “증오를 표현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인디펜던트는 3주 전에 그가 리비아로 갔다 며칠 전 돌아왔다는 친구의 증언을 빌려 공격 전 훈련을 받았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또 영국 출신 IS 청년 요원과 친분이 있었다는 주장도 전했다.
아베디 가족의 지인은 “그가 리비아에서 급진화했다고 보지 않는다”며 “누군가 여기서 그에게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리비아인 이주사회에선 범인의 신원이 밝혀지기 전부터 리비아계 청년이 자폭했을 수 있다는 추측이 나왔다고 한다. IS 대원이 되려는 청년이 시리아로 갈 수 있도록 돕다가 테러 가담 혐의로 실형을 받는 등 서구에 반감을 가진 청년들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아베디가 살던 맨체스터 남부는 영국에서 가장 많은 1만6000명의 리비아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대부분 반카다피 성향으로 2011년 리비아 내전에 참여한 경우도 많다.
특히 이번 공격에는 못, 나사를 이용한 정교하고 잔인한 폭탄이 사용됐다. 아마추어의 단독 범행으로 보기 어려워 당국은 공범, 테러조직의 연루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다. 리비아 기반의 테러리스트들 지원 여부도 수사하고 있다. 보안전문가 로버트 에머슨은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외로운 늑대들의 공격은 IS의 지령을 받았지만 단독 범행 여부를 알아내기 어려웠다”며 “맨체스터 공격도 혼자서 했다면 더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경찰이 테러 다음날인 23일(현지시간) 체포한 23세 청년은 아베디의 형인 이스마일로 전해진다.
가디언은 시리아 등지로 건너가 테러리스트가 되려다 실패한 ‘좌절된 여행자’들이 영국의 대테러 전략에서 부담이 됐다고 분석했다. 특히 이달 초 알카에다를 이끄는 오사마 빈라덴의 아들 함자는 추종자들을 향해 “자국에서 순교할 방법을 찾으라”는 지령을 내렸다. 이라크, 시리아 내 군사적 압박이 커진 IS 역시 비슷한 선전을 벌이고 있다. 영국의 대테러 전문가 라파엘로 판투치는 “최근 테러 모의로 체포된 범죄자가 증가한 것도 이 같은 양상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는 자국민 850명 이상이 IS 등에 가담하기 위해 시리아 등지로 떠났고, 절반이 돌아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을 포함한 3000명이 정보기관의 ‘주시 명단’에 올라 있다. 이 중 500명이 요주의 인물이며 24시간 감시가 필요하다고 영국 정보국(MI5)은 경고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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