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

테러리즘의 신무기 ‘기후변화’

by bomida 2017. 5. 3.

ㆍ‘볼모’가 된 식량·물·땅

테러리즘의 신무기 ‘기후변화’


중앙아프리카에 위치한 차드 호수는 주변국 나이지리아, 니제르, 카메룬 주민 3800만명의 생활터전이었다. 호수에서 물을 끌어다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는 인구는 50년간 2배가 늘었다. 물 사용은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온난화가 심해지면서 우기와 건기의 주기는 불안정해졌고 강수량은 줄었다. 결국 호수의 90%가 말라버렸다. 

가뭄으로 물과 식량이 부족하진 호숫가 경제는 붕괴 수준까지 악화됐고, 70개 인종이 모여 살던 지역의 혼란도 커졌다. 빈곤율이 71.5%나 되고, 주민 절반이 영양실조 상태인 나이지리아 북동부 호수 일대는 잔혹한 테러를 벌이는 극단주의 무장조직 보코하람이 가장 득세한 지역이다. 생계가 막막해진 농부들, 직업을 구할 수 없는 지역의 젊은이들은 푼돈에도 활동대원으로 매수가 가능한 상대들이다.

19일 가디언에 따르면 독일 싱크탱크 아델피(Adelphi)는 지난해 말 외교부 지원으로 발간한 보고서에서 보코하람과 같은 테러단체들이 온난화가 초래한 자연 재앙, 물과 식량 부족을 악용해 활동 참여자들을 쉽게 구하고 민간인 장악력을 높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식량과 물, 땅을 안정적으로 이용할 수 없게 하는 기후변화가 테러리즘의 ‘무기’가 된 셈이다. 

6년째 총성이 멈추지 않는 시리아에서 태동한 이슬람국가(IS)도 마찬가지다. IS가 대원들에게 지급하는 월급 400달러는 경제 기반이 사라진 시리아 농촌지역 평균 임금의 5배다. 실직 농부들과 살길이 막막해진 젊은이들에게는 큰 경제적 유혹이다. 특히 시리아는 최악의 가뭄이 내전을 촉발시켰다는 분석도 있다. 5년간 가뭄이 이어지면서 북부 농촌지역에선 2007년 130만명이 흉작을 겪었고 목동들은 가축의 85%를 잃었다. 농촌 인구가 대거 도시로 몰려들면서 2002~2010년 다마스쿠스, 알레포 등의 인구는 8.9% 늘어 1380만명으로 급증했다. 기존 거주자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시위에 나섰고 이 갈등이 종파갈등으로 옮아 붙었다는 것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루카스 뤼팅거는 “테러단체들이 자원을 전쟁 무기로 사용하면서 자원 부족은 더 심화된다”며 “자원을 장악한 쪽의 힘은 더 강해지며 특히 천연자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지역이 그렇다”고 말했다. 

실제로 IS는 2015년 정부군을 공격하기 위해 댐의 수문을 닫아버리거나 기존 주민들을 몰아내려고 물길을 바꿔 홍수를 일으키기도 했다. 라카에서는 물에 세금을 붙여 테러자금을 모았다. 보코하람은 자원을 테러전술에 이용한다. 정부군이 점령한 지역의 우물이나 개울에 독을 타서 사람들과 가축들에게 위협을 주는 것이다. 

오랜 내전에 시달리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역시 내분의 절반 이상이 땅과 물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고 보고서는 언급했다. 강우량 감소로 사막화가 계속되면서 목초지를 두고 유목민과 목축민들의 갈등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미국 국방부는 2015년 보고서를 통해 기후변화가 국내 안정을 흔드는 지정학적인 ‘위협 승수’가 됐다고 분석한 바 있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도 지난 1월 인준청문회에서 “기후변화는 전 세계 미군 주둔지의 안정에 충격을 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퇴역 군인들이 만든 기관인 세계군사자문위원회는 “온난화의 충격이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대규모 난민을 만들 수 있고 기후는 21세기 가장 큰 안보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엔은 지난 3월 차드 호수 위기와 기후, 생태계 변화의 상관성을 인정하며 기후 안정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