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

[도전하는 도시]마을 내 주차장 없앤 독일 보방 ‘석유 안 쓰기’ 선언한 스웨덴 벡셰

by bomida 2015. 3. 9.



ㆍ자연과 공존하는 도시들

▲ 일본 도쿄 시나가와구
메구로 강바람 이용해 도심 ‘열섬 현상’ 차단
프랑스·독일 등에선 자전거·전기차 공유


도시는 자연을 인위적으로 변형해 만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는 태생적으로 자연과의 공존에 한계를 안고 있다. 오랜 세월 개발과 산업화를 거쳐온 도시들은 자연을 희생시킨 대가를 치른다. 그래서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데에 사활을 걸고 있다.

독일에서는 1990년대 사민당과 녹색당의 ‘적록연정’이 들어선 후 이런 기조가 확고한 정책이 됐고, 현 집권당인 우파 기민·기사연합도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탈원전을 키워드로 하는 에너지정책의 변화는 ‘도시에서 자연성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는 움직임으로 확산됐다.

연방정부가 2000년 ‘지속가능발전전략’을 발표하면서 내놓은 ‘30㏊ 목표제’도 이런 고민에서 나왔다. 집 짓고 길 내는 데 쓰이는 땅을 2020년까지 하루 30㏊ 이하로 억제한다는 선언이다. 계획이 나올 때만 해도 독일에서는 매일 100㏊ 이상의 자연이 도시환경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를 줄이려면 남아있는 자연생태계를 보호하는 동시에 도심의 토지를 재활용해야 한다.

독일 남부 프라이부르크시 보방의 도심 녹지 모습. | 보방마을 홈페이지



독일 남부 프라이부르크의 보방(Vauban)은 군 기지가 이전하면서 5000명이 사는 마을이 들어선 곳이다. 이 도시에는 길과 찻길, 심지어 노면전차가 지나는 선로에도 잔디밭이나 오솔길이 나 있다. 하우턴과 달리 보방은 자동차 운행에 제한을 두는 대신 주차장을 없애 자연스럽게 친환경 이동수단을 주류로 만들었다. 

이 마을에서 집을 사려면 마을 외곽의 주차구역을 사야 한다. 차가 없거나 앞으로도 차를 살 생각이 없다면 주차구역을 사는 대신에 마을 주변 녹지 지분을 산다. 장차 주차장이 더 필요해질 경우 이 지분을 더 비싼 값에 팔 수 있기 때문에, 녹지를 사는 것은 주민의 의무이자 투자가 된다.

일본 도쿄에는 ‘바람 부는 마을’이 있다. 도쿄 남부 오사키(大崎)역 주변은 공장지대가 교외로 빠져나가면서 1970년대에 재개발됐다. 당시 시나가와(品川)구가 난개발을 막고자 세운 원칙은 메구로(目黑)강을 끼고 있다는 점을 최대한 활용하자는 것이었다. 당국은 오사키 남동쪽 도쿄만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도심으로 부는 길목이 되게 하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 60㏊의 개발 지대가 바람길이 되게 해 ‘열섬 현상’을 막자는 취지였다. 그래서 강을 따라 바람이 지나도록 도로와 건축물을 설계했다. 주택가의 건물 옥상, 벽면은 식물로 덮었다. 강변에도 녹지를 만들어 온도를 낮췄다.

2010년 동계올림픽 선수촌이 있었던 캐나다 밴쿠버의 폴스크릭은 사람들이 쓰고 버린 열(熱)도 재활용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 마을은 ‘지역에너지시스템’을 만들어 주민들이 설거지나 샤워를 하고 흘려보내는 물을 모은다. 양수장의 작은 발전소에서는 하수도의 따뜻한 물에서 열을 뽑아내 전기를 생산한다. 이 시스템이 생긴 뒤 폴스크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4분의 1로 줄었다.

1996년 화석연료 없는 도시를 선언한 스웨덴 크로노베리 주의 주도 벡셰는 유럽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로 꼽힌다. 1인당 온실가스 발생량을 2025년까지 1993년의 70%로 줄이려는 이곳은 2030년까지 화석연료 사용을 아예 끝내려 하고 있다. 석유 대신 나무를 쓰고 남은 찌꺼기를 모아 바이오연료를 생산하고, 쓰레기는 20가지로 분류해 재활용한다. 벡셰의 지속가능 에너지 사용 비율은 2012년 전체 에너지의 절반이 넘는 58%에 이르렀다.

친환경 접근에 경제성이 맞물린 ‘공유’는 도시 지속가능성의 가장 큰 화두다. 프랑스 파리는 도시 안팎에 공유자전거 ‘벨리브’ 정류장이 1450곳, 공유전기차 ‘오토리브’ 정류장이 1100곳 있다. 파리는 2007년 벨리브가 큰 성공을 거둔 뒤 2011년 오토리브를 도입해 공유교통 체계를 완성했다. 시내든 주택가든 300m마다 벨리브와 오토리브 정류장이 있고, 시민들은 회원가입만 하면 싼 값에 어디서든 자전거와 전기차를 빌려 탈 수 있다. 반납은 아무 정류장에나 세워두면 끝이다. 1월31일 파리에서 만난 중학교 교사 마린(48)은 출퇴근에 오토리브를 이용한다고 했다. 15㎞ 거리를 왕복 10유로(약 1만3000원)에 오가지만 “기름값, 주차비를 생각하면 훨씬 경제적”이라고 말했다.

파리는 시 당국이 이런 시스템을 갖췄지만 민간기업이 운영하는 공유교통도 유럽에선 보편적이다. 지난 1월13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약속 장소로 가는데 갑자기 비가 왔다. ‘드라이브나우’ 앱을 켜 주변의 공유자동차를 찾았다. BMW의 ‘미니’ 차량이 부근에 있었다. 한국에서도 인기 많은 이 차를 쓰는데 1분당 24유로센트(약 300원)면 된다. 회원카드로 문을 열고 운전해 약속 장소에 도착한 뒤 공용주차장에 세웠다. 약속을 마치고 나오니 어느새 누군가 ‘공유해’ 갔다. 이 업체만 2300여대의 공유자동차를 운영하고 있다. 

[도전하는 도시]‘태양광 도시’ 독일 튀빙겐

ㆍ민·관 협력 에너지주택 설계

태양광 패널을 얹은 16세기 교회, 전기 대신 지붕에서 열을 끌어다 쓰는 레스토랑. 중세 건축물과 대학 캠퍼스가 어우러진 고즈넉한 도시인 독일 튀빙겐은 친환경 건물의 실험장으로 변신하고 있다.

지난 1월12일 남쪽 뮐렌지구 주택가에 들어서자 저녁놀에 물든 한 건물 벽(사진)이 유난히 반짝였다. 창문처럼 생긴 네모난 유리는 가까이에서 보니 태양광 패널이다. 문 옆 디지털 안내판에는 이 패널들로 생산한 전기량이 뜬다. 5층짜리 건물 곳곳 패널들로 1월 들어 그때까지 모은 전기는 3590W였다.


바로 옆 4층 주택은 베란다 없이 큰 창문이 벽을 채우고 있다. 알루미늄 대신 나무를 여러 겹 쌓은 창호를 둘러 단열이 잘된다.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고급 주택 옥상에는 이끼가 깔린 작은 정원이 있었다. 1535년 지어진 마을교회는 지붕을 태양광 패널로 다시 얹었다. 강변의 유명 식당은 태양열 집열기로 지하 양조장을 돌린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려면 건물 짓는 비용이 10%는 더 들어간다. 그런데도 건축주가 이 방식을 선택하는 것은 정부 보조금과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튀빙겐시는 1990년대 뮐렌지구와 옛 프랑스군 주둔지 등을 재개발하면서 에너지 철학이 맞는 건축가들과 함께 건축주들을 설득했다. 튀빙겐 건축가워킹그룹의 가르시아 엘첼은 “독일의 재생에너지는 처음엔 비싼 석유의 대안으로 떠올랐지만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뒤 이런 흐름이 더 확고해지고 있다”며 “기름값이 떨어져도 에너지 정책의 방향은 흔들릴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