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자출족' 취재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한강변을 따라 아침마다 전쟁를 치르는 이야기였는데요. 자전거 도로를 달리는데도 불구하고 차로와 인도 사이 껴있는 바람에 사고 위협을 느끼기도 하다더라고요. 1시간 넘게 라이딩을 하면 땀처리가 문제라서, 회사 인근 헬스장에 샤워실만 쓰기로 하고 한달에 몇만원 낸다고도 했습니다.
사실 자전거로 출근하는 것은 이런 번거로움과 불편때문에 '유난스럽다'는 시선을 받기도 하죠. 지하철, 버스 놔두고 왜 굳이... 이런 생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 총리도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네덜란드는 도대체 우리와 무엇이 다를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떠난 취재였는데요. 생각보다 아주 많이, 엄청나게 다르더라고요. 무엇보다 도시철학의 온도차는 상당했습니다. 1000만명이 모인 도시 서울에서 자전거가 대중교통이 될 수 있을지, 과연 가능한 일이기나 한 것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영등포구와 마포구를 합한 면적에 인구 5만명의 작은 도시 하우턴. 구글로 보면 이렇게 나비가 날개를 펼친 것처럼 생겼습니다. 특이하죠?
차타면 불편하고 걷거나 자전거를 타야 편해지는 이 마을은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도전하는 도시]지하철 개찰구까지 자전거로… 자전거도로
따라 공공시설 배치
ㆍ(5) 자전거 천국 네덜란드
하우턴
▲ 도시 확장 막기 위해 역 중심으로 자전거도로
외곽에
차전용도로 설계
아이들 맘껏 골목 누벼도 시내 교통사고 거의 없어
지난 1월15일, 네덜란드의 소도시 하우턴역에
도착했다. 인구 5만명이 사는 이 도시는 암스테르담에서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40분 남짓 가면 나온다. 아침부터 비가 제법 내렸지만 조용하고
아담한 거리에는 일과를 시작한 주민들과 학교 가는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다.
2층 플랫폼에서 1층으로 내려가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중앙개찰구가 자전거 수백대에 ‘포위’돼 있었다. 두 겹으로 세워둔 자전거는 족히 수백대는 돼 보였다. 더 놀라운 풍경은 개찰구 밖에 있었다.출입문이 열리자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운전자는 속도를 줄여 주변을 한바퀴 빠르게 돌더니 능숙하게 빈자리에 자전거를 대고 자물쇠를 채운다. 기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나자 얼릉 개찰구를 통과해 플랫폼으로 올라가 도착한 열차를 탔다. 자전거를 탄 채 기차역에 들어와 1~2분 내 열차로 환승하는 시스템은 전 세계에서 하우턴역밖에 없다고
했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에도 자전거 수천대를 세울수 있는 3층짜리 주차장이 있지만, 역 바깥에 있기 때문에 자전거를 세우고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
하우턴은 자전거 천국 네덜란드에서도 ‘꿈의 자전거 마을’이다. 나비가 날개를 펼친 모양의 이 도시는 네덜란드의 대표 ‘피스타드’(Fietsstad·자전거 도시)다.
1월15일 네덜란드 하우턴역 개찰구 주변에 수백대의 자전거가 서 있다. 하우턴(네덜란드) | 김보미 기자
1월14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중앙역 개찰구 밖에 설치된 자전거주차장에 자전거들이 줄지어 서 있다.
하우턴(네덜란드) | 김보미 기자
하우턴의 도로를 체험해보기 위해 자전거를 빌려 타고 시내로 나갔다. 역 주변에 상점들이 있고, 역에서 동서로 뻗은 큰 자전거 도로 옆에 시청과
초등학교가 있다. 붉은 바닥이 깔린 길을 따라 달리니, 나무가 빼곡한 골목 여기저기 주택들이 보였다. 바닥에는 방지턱이나 꼬마 언덕이 울퉁불퉁
계속된다. 속도를 낮추기 위한 장치다. 하우턴에서 차와 자전거는 시속 30㎞를 넘을 수 없다. 외곽으로 나가자 도시를 에워싼
자동차전용도로(링로드)가 나왔다. 그 아래 굴다리 밑으로 난 자전거길은 대도시 위트레흐트까지 이어져 있다. 그대로 자전거를 내달리면 20분이면 닿는다. 아이들은 이 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위트레흐트에 있는 고등학교로, 직장인들은 위트레흐트대학 등 직장으로 향한다. 이 때문에 위트레흐트에도 골목마다 자전거들이 주차돼 있고, 위트레흐트대학에는 캠퍼스 안 곳곳에서 자전거 주차대를 찾을 수 있다.
1월14일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학 안에 자전거 주자장 모습. 위트레흐트(네덜란드) | 김보미 기자
1970년대 초 하우턴은 3000명이 사는
소도시였다. 정부는 이곳을 10만명 규모의 베드타운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옛 도심을 지키고 싶었던 주민들이 반발했다. 구도심을 지키고 작은 도시를 원했던 주민들은 정부에 맞섰다. 논의 끝에 인구는
3만명까지만 늘리기로 했다. 단 새 도시는 자동차보다 자전거가 다니기 편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암스테르담에서 기차가 들어오는 하우턴역을 짓고, 역을 중심으로 폭 20m, 네덜란드에서 가장 큰 자전거도로를 만들었다. 지금은 폭이 줄었지만 이 길 중심으로 학교와 마트 등 중요 공공시설을 배치했다. 마을 안에서 이동은 자전거만 있으면 충분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 골목에 집들을 짓고, 도시가 더 커지지 않게 링로드를 둘렀다. 자동차로 도시를 가로지를 수 없기 때문에 차를 타고 이동하려면 일단
링로드로 나갔다가 다시 샛길로 들어가야 한다. 자전거로는 어디든 8~9분이면 갈 수 있는 작은 도시에서 차를 타면 갈 길은
복잡해진다.
1990년대 초, 당초보다 규모를 더 키워 총 5만명의 도시를 확장할 때에도 설계의 기본은 유지됐다. 링로드 경계를 허물지 않고 쌍둥이 마을을 하나 더 붙였다.
카스텔룸 하우턴역을 내고 중앙 자전거도로를 만들었다. 이번에는 일직선이 아닌 5각형 도로를 제방처럼 쌓았다. 특히 이 길은 땅에서 1.5m 높여 제방처럼 쌓았다. 이 위로 사람들은 차와 완전히 분리돼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다닐 수 있다. 공공시설은 역시 자전거길 중심으로
배치했고, 경계에 링로드를 만들었다. 나비 모양의 하우턴은 이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1월15일 네덜란드 카스텔룸 하우턴역 주변으로 난 자전거전용도로의 모습. 지면에서 1.5m 높게 길을 만들어 완전히 분리했다. 빼곡하게 심은 나무들 사이로 난 작은 길로 자전거가 지나다니고 사람들이 걸어간다. 하우턴(네덜란드) | 김보미 기자
하우턴이 차가 아예 없는 곳은 아니다. 집집마다 마당에 차를 세워뒀고, 동네 곳곳에도 주차된 차량들이 많다. 링로드나 링로드에서 도심으로 나있는 4개의 자동차 도로가 아니더라도 차는 중앙 자전거길을 제외하고 도시 어디든지 갈 수 있다. 하지만 이 도시 안에서는 차를 타면 몹시 불편하다.
자전거에서 내려, 하우턴역에서 카스텔룸까지 차를 타고 가봤다. 도심을 못 지나니 하우턴 중앙 자전거길 부근 좁은 차로를 지나 링로드로 나갔다.
반대편 날개의 링로드로 이동해 카스텔룸역과 닿아 있는 좁은 차로로 들어갔는데, 곳곳이 막다른 길이었다. 차를 빼 도로로 재진입하려고 할 때마다 자전거만 갈 수 있거나, 일방차로여서 헤매기를 십수분을 반복했다. 특히 하우턴은 차를 위한 방향 표지판 등은 거의 찾기가 힘들다. 무작정 들어갔다가는 주택이나 건물로 길이 끊어지기 일쑤다. 하우턴 끝에서 끝까지 자전거를 타면 어디든 20분이면 가지만 자동차, 특히 초행길 운전자가 운전대를 잡은 차라면 시간은 장담할 수 없다.
그 대신에 주민들은 안전과 자유를 얻었다. 아이들은 마음껏 골목을 돌아다니고
자전거를 탄다. 유치원생들도 부모 없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지만 시내 교통사고는 거의 없다. 도시 외곽에 자전거와 자동차의 동선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곳에서 충돌이 일어나기는 하지만 큰 부상을 당하는 피해는 없다고 한다. 10년 전 시내버스도 아예 사라졌다. 도시 안에서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것 외에 다른 교통수단은 필요 없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중앙역 앞 대로를 1월14일 오전 자전거를 탄 시민들이 줄지어 지나고 있다.
하우턴(네덜란드) | 김보미 기자
네덜란드 위흐레흐트 한 초등학교 앞에서 아이들이 하교를 위해 자전거에 올라타고 있다. 학부모나 선생님이 앞에서 인솔해 자전거로 달리면 아이들이 뒤따라 달린다. 위흐레흐트(네덜란드) | 김보미 기자
네덜란드에서 ‘자전거’는 자유로움의 상징이기도 하다. 규칙도 없고, 규제도 없다. 신호등이 없는 길에서 자전거 운전자는 방향을 꺾을 때 오른손이나 왼손으로 45도 들어 수신호를 할 뿐이다. 출근시간대 암스테르담 중앙역 인근은 버스와 트램(노면전차), 자동차와 자전거가 뒤섞여 이방인에겐 혼돈속으로 보였다. 수십대의 자전거가 차와 같은 속도로 도로를 달려 신호를 대기했다가 다시 달리기를 반복한다. 자전거길로 잠깐 내려섰다가는 큰 소리로 욕을 먹거나 자전거 경적에 놀라 길을 비켜야 했다.
[도전하는 도시]하우턴의 철학 ‘놀이처럼 즐기며 사는
마을’
하우턴의 집들은 나무 사이에 숨어 있다. 길은 손금처럼 방향성을 알 수 없게 여기저기로 나
있다. 자전거도로는 바닥이 울퉁불퉁해서 패달을 밟으면 고개를 넘는 느낌이다. 작은 다리로 연결된 꼬마 호수들을 지나치다보면 숲속 공원 같기도 하고 동화 속 마을 같기도 한 이 자전거 도시는 누가 만들었을까.
지난 1월15일 하우턴 시 도시계획
담당자 안드레 보터만스(사진)를 만나 물었다. 그는 대답은 로마제국 얘기로 시작됐다 “서부 도시 라이덴(Leiden)은 로마시대 제국 영토의 북쪽 최전선이었고, 하우턴도 성채 경계부분이었다고 해요. 지금도 유물이 가끔 나와요. 자전거랑은 상관없는 이야기이지만 1970년대 도시계획가들의 구상에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디자인의 단초로 사용됐거든요. 하우턴의 양 날개 모양 중 남쪽 날개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5각형 모양이죠. 로마 카스텔룸(Castellum·요새)에서 따온 겁니다. 중앙에 새 기차역을 만들면서 역명도 하우턴 카스텔룸으로 붙였어요. 나도 도시계획자니까 교통 뿐아니라 건축, 공공공간 설계 등에 어떻게 철학을 반영할지 고민합니다.”
이어 그는 “도시계획에서는 교통, 건축, 공공공간에 어떻게 철학을 반영할지 고민한다”고 했다.
1960년대에는 크고 높은 건물, 자동차와 대형 주차장이 공간에 대한 의식을 지배했다. 70년대에 그에 대한 ‘반란’이 일어났다. 시민들은
거리에서 차 대신 아이들이 놀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위트레흐트와 헤이그 등 모든 대도시의 고민이기도 했다. “주민들, 도시계획가들이 하우턴에 모여 이런 시대적 요구와 이상을 현실로
만든 겁니다.”
무엇보다 주민들은 도시가 커지거나 위트레흐트 같은 대도시에 흡수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도시 경계에 링로드를 만든
것은 확장을 막기 위해서였다. 외곽에 집을 계속 짓지 못하게 하는 효과도 있었다. 인근 대도시 위트레흐트로 편입되거나 다른 도시로 흡수되는데도 반감도 컸다고 한다. “격자 모양이 아닌 구불구불한 길을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도시는 살아 있는 생물입니다. 놀이처럼 즐기며 살
수 있는 마을을 만들려 했던 반세기 전 도시계획이 실현된 셈입니다.”
마침 당시에는 녹색정책이 힘을 얻고 있었고, 녹색당의 발언권도
컸다. “6~7년 전까지 기독민주당이 우세했지만 도시계획을 만들 때는 지금처럼 자유민주당이 제1정당이었고 녹색당의 발언권도 컸습니다. ‘환경’이라는 가치를 여러 정당이 추구했던거죠.”그렇다고 모든 과정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몇몇 정책은 50년이 지나서야 완성됐어요. 세계에서 하우턴을 보러온 이들에게
저는 ‘기다리라’고 조언합니다. 10년도 짧을 수 있어요. 자전거 도시를 생각한다면 경제구조도 봐야하고 사람들의 보편적 생각도 고려해야 합니다.” 하우턴은 모든 기능을 곳곳에 분산시켜 학교와 직장과 상점이 모두 자전거로 갈 만한
거리에 있게 했다. 자전거 길만 잘 닦는다고 될 일은 아닌 셈이다. 하우턴 구도심에 살았던 원주민들과 현재의 주민들의 임금 수준이 네덜란드 평균보다 높다는 특징도 정책을 끌고갈 수 있던 힘이기도 하다. 하우턴 내 경제활동인구는 2만명 수준인데 이 중 60%가 외지에 나가 일한다. 하우턴 내 일자리수는 2만개 정도로 자체적 수요공급을 맞췄지만 3분의 1정도만 생활권 내 직장을 얻어 다니고 있다. "하우턴 주민들의 교육열은 다른 지역보다 높고 수입도 많은 편입니다. 평균 2배정도 되죠. 큰 도시에 고소득 일자리가 많은 것은 사실이고, 사는 지역에서 일도 하라고 강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서울도 자전거 천국이 될 수 있을까. 보터만스도 “이 실험을
대도시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힘들다”고 말한다. 하우턴이 날개 한쪽만 있을 때는 주민 이동수단 중 43%가 자전거였지만, 한쪽 더 확장되면서
37%로 줄었다. 다른 곳에 집을 두고 하우턴에서 일하는 사람이 늘다 보니 차를 타는 사람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도시는 생활권의 문제입니다. 이동거리가 늘면 차를 이용하게 되죠. 근대도시는 대형 극장과 경기장, 대규모 상점을 만들어 주차장도 크게 지었어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데 초점을 맞춘 것이죠. 자동차의 의존도를 높인 것은 이런 경제적인 측면이 커요. 하우턴은 여기에 반동으로 탄생했습니다. 모든 기능은 마을 곳곳으로 분산시켜 주민의 생활 공간을 흩어놓은 것이죠. 그래야 학교도, 직장도, 가게도, 자전거로 갈만한 거리에 있게 됩니다. 생활권을 여기저기 작게 쪼갠거에요. 자전거 길만 잘 닦는다고 될 일은 아닌거죠. 14년 전 처음 하우턴에서 일하게 됐을 때는 매일 왕복 3시간씩 기차로 통근을 했어요. 그렇게 2년을 다니다 집을 사서 들어왔더니, 자전거를 타고 5분이면 도착합니다. 동료의 절반은 위트레흐트 등 하우턴 밖에 집이 있어요. 시간제 일자리가 보편적이라 일주일에 3~4일만 일하는 경우가 80%이기 때문에 멀리서 다니는게 큰 일이 아닐 수도 있죠. 날씨가 오늘처럼 궂으면 차를 타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는
“경제구조는 물론이고 시민들의 생각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네덜란드에서는 총리도 자전거로 출퇴근해요. 사회에서 자전거가 어떻게
인식되는지도 중요합니다. 미국이나 멕시코에서 자전거를 타고 먼 길을 다니면 사람들은 돈이 없다고 생각할 거에요. 중국같은 신흥국의 젊은이들은 큰 집과 좋은 차를 원하고요. 네덜란드에서는 헤이그에서 총리가 자전거를 타고 출근해요. 정장을 입은 여성들도 자전거 앞에 가방을 얹혀놓고 달려요. 여기선 자전거가 세련된 아이템인거에요. 사회적으로 자전거가 어떻게 인식되는지가 관건인거죠.” 서울에서 시장이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