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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이슈/서울이야기

도시농업으로 지적장애인 치유·자립 돕는 청년 사회적기업 ‘동구밭’

by bomida 2014. 9. 15.



ㆍ홍익대 사회적기업 ‘동구밭’ 대학생들, 장애인과 텃밭 가꾸며 멘토 역할

ㆍ함께 흙 만지고 식물 키우며 농사 통해 ‘건강한 삶’ 지원

두 줄로 작물들을 나란히 심은 밭 사이로 호미를 든 남학생들이 바구니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바구니 흙속에선 지렁이들이 꿈틀대고 있다. 대학생 권보건씨(24)가 “이제 땅을 파서 한두 마리씩 묻어볼까”라고 제안하자 주저하던 아이들이 손바닥 가득 지렁이를 나눠 들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지난 13일 찾은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주민센터 앞 문래텃밭에 ‘동구밭’ 식구들이 모였다. 대안학교인 사람사랑나눔학교 학생 다섯명과 아이들을 돌볼 대학생 누나·형 다섯명이 짝을 지었다. 두 번째 만남이다.  


홍익대 학생들로 구성된 사회적기업 ‘동구밭’ 회원들이 지난 13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주민센터 앞 문래텃밭에서 대안학교 학생들과 함께 작물을 심고 있다.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본격적으로 밭을 매기 전, 동구밭 매니저 권씨가 지렁이 그림을 들고 설명을 시작했다. “지렁이는 사과껍질 같은 음식물쓰레기를 먹고 땅속에 똥을 싸놓으면 텃밭이 비옥하게 되는 거지. 개미나 거미, 지네도 마찬가지야. 농사할 때 나온다고 죽이면 안돼.”

자신감이 생긴 조한열군(18)은 배추와 상추, 쪽파를 심은 밭 구석구석에 지렁이를 분양하고 김을 맸다. 윤민영군(16)과 김형준군(19)은 계란 노른자와 식용유, 물을 섞어 해충을 방지하는 유기농약을 만들어 상추와 배추 잎 사이사이마다 뿌렸다. 아이들은 분무기로 번갈아가며 일하는 틈틈이 대학생 누나들과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동구밭은 농사에 관심이 있는 홍익대 학생들이 만든 사회적기업이다. 도시농업에 관심을 가져온 이들은 ‘누구와 함께 텃밭을 경작하면 가장 큰 가치를 만들까’를 고민하다 지적장애인들과 공동체를 이뤄 작물을 키워보기로 했다. 장애인들과 1대1로 짝을 이뤄 호미와 낫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사는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멘토 역할을 한다. 농사를 매개로 장애인들의 치유를 돕고 사회적 진출 기회도 주자는 취지다.

올해 초 강동구에서 작은 텃밭을 분양받아 농사를 시작했고, 지금은 마포와 영등포로까지 확대했다.

강동 동구밭은 지적장애인들이 수확한 쌈채소를 포장한 ‘쌈팩’을 판매하고, 상추와 바질(향신료로 쓰이는 식물)을 따서 비누도 만든다. 권씨는 “발달장애 학생들도 농사 순서를 차례로 알려주면 반복적인 작업은 금방 배운다”며 “상추 간격을 재는 자나 수확이 가능한 채소 크기를 교구로 만들어 친구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시농업의 정서 치유 효과는 유럽에서 확인되면서 세계적으로 확산 중이다.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가족 단위로, 이탈리아에선 사회적 협동조합 형태의 고용 중심으로 장애인 집단에 도입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농촌진흥청의 연구결과를 보면 국내 치유농업의 사회·경제적 가치는 1조5599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아이들을 인솔한 교사 한지영씨(28)는 “발달·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흙을 만지고 식물을 키우는 것은 감각적으로도 도움이 된다”며 “서울에서는 접할 기회가 많지 많았는데 지렁이도 만지고 재배한 재료로 요리까지 하는 경험을 해 아이들 정서 함양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