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산이 있는 서울시 마포구에, 성인 자폐 장애인이 몇 명이나 살고 있을까요?”
인터뷰가 끝나갈 때 쯤, 정찬이 어머님이 물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다 "한 백명 정도 되나요?" 라고 답했죠. 하지만 땡! 정답은
“열 명이 채 안돼요. 생각해보면 길을 걷다가, 아니면 가게에서 자폐증세가 있는 어른들을 본 적이 없을 거에요. 아이들은 가끔 있지만요. 자폐증을 가진 아이가 성인이 되면 도시에서 살기가 힘들거든요. 성인 자폐장애인을 받아주는 복지관은 거의 없어요. 그래서 부모들은 연고도 없지만 시설이 있는 지방으로 가게 되죠.”
헐.. 잠시 멘붕이... 정말 그런 것 같았거든요. 초등학교(저는 국민학교를 졸업했습니다만;) 때는 분명히 몇몇 반에서는 같이 공부하기도 했었는데, 성인이 된 지금은 동네에서 거의 보지 못한것 같네요. 생각해보니 취재를 나가서야 이 친구들을 접하게 되는게 사실입니다.
너무 잘 알려져 있어서, 또 이제 너무 성숙단계에 접어든 성미산이 마을 만들기가 붐을 이루고 있는 최근의 도심 정책에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의구심을 안고 시작한 취재에서 힌트를 얻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도시에 무슨 마을이 필요해? 어차피 내집도 아니고 2년 후면 다른 동네로 이사가게 될지도 모르는 걸?
저도 비슷한 심정으로 서울 한복판에서 살고 있죠.. 하지만 정찬이를 자라온 동네에서 끝까지 살게 하고 싶은 어머님의 절박한 마음은 왜 도시에도 마을이, 공동체가 필요한지 제가 답을 주었습니다.
지면기사에 담지 못한 내용까지 담은 인터뷰 전문입니다.
서울 마포구 성산1동 성미산마을에서 더치커피(찬물로 우려낸 커피)를 생산하는 마을기업 ‘좋은날’의 운영이사 최경화씨(51·사진)가 이곳으로 이사한 것은 9년 전, 아들 이정찬씨(22)가 중학생이 될 무렵이었다. 장애가 있는 아들을 집에서 직접 가르칠지, 특수학교에 보낼지 고민하며 밤을 지새우던 때였다.
자폐장애 1급인 정찬이는 일반 초등학교를 다녔다. 학교는 처음에 아이를 맡을 인력이 없다며 받아줄 수 없다고 했지만, 그가 아들의 보조인을 맡겠다고 사정해 입학 허가를 받았다. 다른 아이와 수업 이해 수준이나 수업 시간을 참아낼 인내심도 다른 정찬이의 시간표는 엄마가 직접 짰다. 6년간 매일 같이 등교해 아들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키우려고 애를 썼다.
“나도 교사였기 때문에 매일 같이 학부모가 학교로 찾아오는 것이 선생님들에게 얼마나 부담스러워할지 알아요. 하지만 어릴 때만큼은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자랐으면 했어요. 그렇다고 예민한 자폐아에게 똑같이 수업을 듣게 할 수도 없어 대학생처럼 골라서 수업을 들은 거죠.(웃음)”
그때부터 최씨는 정찬이와 성미산에서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과자를 굽는 것을 좋아하는 정찬이는 고등학생이 된 후엔 직접 만든 과자를 학교에서 팔았다. 처음에는 엄마와 만든 리어카를 가져다 놓고 팔았다. 같은 학교를 다니는 초등학교 동생부터 선생님들까지 정찬이의 과자를 사 먹었다. 그러자 학교는 빈 공간에 작은 카페를 만들어 정찬이게 내줬다. 사회적 기업에도 등록하면서 인건비 지원을 받았고, 정찬이의 첫 사회생활이 시작됐다. 정찬이와 같은 장애를 가진 학교 누나는 과자 대신 밀랍초를 만들어 카페 한 켠에서 팔았다. 학교와 마을이 아이들의 사회 첫 발을 만들어 준 셈이다.
“그래도 이곳에 온 이유는 마을이 있기 때문이잖아요. 아이가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마을 주민으로 살아갈 수 있겠다는 희망이 있었던 거죠. 원하는 것을 스스로 만들려고 노력하면 서로 돕는 곳이 성미산이거든요. 비빌 언덕이 있으니 이런 시도도 해봤던 거죠.”
그렇게 해서 최씨는 주민 21명이 조합원인 마을기업 ‘좋은날’의 운영이사가 됐다. 정찬이를 포함해 성미산학교를 졸업한 발달장애인 4명이 일한다. 모두 주급 4만원씩 받고 제 몫을 한다. “임금과 가게 월세를 내다보면 아직은 적자지만, 한 명씩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수익으로는 따질 수 없는 가치가 있는데, 받고 돈을 소비하는게 아이들의 일과가 되면서 마을에서 그 돈을 쓰는 거에요. 소비는 마을의 일원이 되는 핵심이기도 해요. 편의점에서 미용실까지 생활 반경도 넓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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