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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이슈/서울이야기

서울 매봉산 자락에 숨어있던 석유비축기지, 16년만에 ‘문화기지’로

by bomida 2014. 8. 25.

서울 마포구 매봉산 자락에는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비밀 공간이 있다. 월드컵경기장에서 맞은 편으로 길을 건너 산 자락을 오르면 서울광장의 8배가 넘는 엄청난 규모의 부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1970년대 정부가 석유를 담아두기 위해 건설했던 석유비축기지다.

두 차례 오일쇼크가 전 세계를 강타하자 정부는 매봉산에 탱크 5개를 만들기로 했고, 1979년부터 이 곳에 131만 배럴의 석유를 저장해뒀다. 그러다 2002년 월드컵 유치가 확정된 후 상암에 경기장이 들어서게 되면서 위험 시설인 비축기지는 2000년 경기도 용인으로 이전했다. 상암동 일대에 디지털·미디어 기업들이 옮겨왔고, 쓰레기를 묻었던 난지 매립지는 노을·하늘공원으로 바뀌었지만 석유기지는 이후 잊혀진 공간이 돼 그대로 남아있었다.


서울 마포구 상암 월드컵경기자 건너편 매봉산에 자리잡은 마포 석유비축기지. 서울시 제공


서울시는 25일 마포 석유비축기지의 새로운 용처를 확정해 2016년 새롭게 문을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14년간 방치됐던 이 곳에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은 2년 전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면서다. 시는 공개토론회와 시민 아이디어 공모를 통해 활용방향 공론화에 들어갔다.

올해 초 환경과 재생에 중점을 둔 복합문화공간을 만들기로 확정하면서 국제현상설계 공모를 진행했다. 5월부터 84일간 16개국에서 227명의 건축가가 95개 작품을 제출했다. 외국인도 53명이나 참가했다. 심사에는 지난해 건축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일본의 이토 토요와 미 시라큐스대 프란시스코 사닌 교수, 조성룡 성균관대 교수 등이 참가했다.

1등 당선작은 RoA건축사무소(백정열)와 허서구, 이재삼 건축가가 공동 설계한 ‘땅(石)으로부터 읽어낸 시간’이 선정됐다. 조성룡 교수는 “마포 석유비축기지의 역사에 초점을 맞췄던 유일한 기획안이었다”며 “탱크 등 기존 설치물에 가장 손을 덜 대 보존하고, 과거 기지를 어떻게 지금의 시각을 해석할지를 담고 있다”고 심사평을 했다.

선정작은 5개의 탱크가 만들어졌던 과정과 1970년대 공사 시작 당시 매봉산 항공 사진에 주목했다. 석유비축기지는 단단한 암석이 많은 산을 잘라내 작업로를 만들어 산 속 내부로 들어가 굴을 뚫었다. 이 곳에 콘크리트로 탱크 겉면을 만들고, 이 콘크리트 벽 안쪽에 다시 철제 탱크를 설치한 뒤 석유를 담은 것이다.

마포석유기지 국제현상설계 공모 당선작. 1970년대 매봉산 암반을 뚫고 석유 탱크를 만들었던 작업로를

 다시 복원한 모습 상상도. 서울시 제공


시는 공모 당선작의 설계에 따라 기지 공사가 끝나고 매몰됐던 작업로를 되살려 이동통로를 만들고 5개의 탱크 중 3개는 틀을 그대로 놔둔 채 내부만 변경해 공연장과 전시장 등을 만들 예정이다. 또 철제 탱크 일부는 해체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편의시설도 지을 방침이다.

이제원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은 “10월부터 설계에 들어가 내년 말 공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라며 “2017년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건축가 연맹’(UIA·International Union Of Architects) 총회를 이 곳에서 개최해 공공건축의 모델로 소개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