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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이슈/서울이야기

미혼모 자립 돕는 ‘공동 육아방’ 전국 첫 운영 “막막했는데… 맘 놓고 보육·취업 준비합니다”

by bomida 2014. 7. 14.

ㆍ서울시, 서대문구에 ‘꿈나래 놀이방’ 개설… 32명 ‘둥지’

ㆍ태교부터 자립까지 돌봐… 최장 4년 반 거주 가능
ㆍ다른 미혼모 시설 12곳… 도시, 육아방 설치 검토

1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기대 부근의 4층 상가건물. 2층으로 올라가보니 일반 아파트 내부처럼 꾸민 공동 육아방이 있다. 한 살 난 아들을 둔 최진숙씨(34)와 6개월 된 딸아이를 안은 홍다빈씨(19), 이달 말 돌을 맞는 딸을 키우는 이선미씨(27)가 함께 아이를 돌보고 있다. 최씨에게 안고 있는 아이의 이름을 묻자 “우리 애는 저기 있어요. 이모가 대신 보고 있네요”라며 웃는다.

서대문구 대한구세군유지재단의 두리홈과 두리마을에는 나이는 다르지만 ‘엄마’라는 공통점을 가진 미혼모 32명이 살고 있다. 미혼모들은 아이를 직접 키우고 싶지만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 취업과 학업을 중단해야 하는 일이 많고, 그러다보니 생활고에 빠지는 악순환을 겪게 마련이다.

서울시가 미혼모의 육아를 돕기 위해 14일 서울 서대문구에 전국 처음으로 개설한 ‘공동 육아방’에서 엄마들이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서울시가 이날 문을 연 ‘꿈나래 놀이방’은 이런 엄마들의 자립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태교와 출산을 돕는 두리홈과 자녀 양육을 위한 주거 공간인 두리마을의 미혼모들이 하루 3시간 정도 자신의 시간을 갖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해주자는 취지다. 임신한 미혼모가 최장 4년6개월까지 태교부터 육아, 자립까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2층에는 공동 육아방, 3층에는 임신부들이 공동생활을 하는 두리홈, 4층에는 미혼모들이 각방을 쓰며 아이를 키우고 자립을 준비하는 두리마을이 있다. 서울시의 연간 지원금 8400만원과 재단이 조달한 3000만원으로 보육·보조교사 4명을 상주시켜 아이 15명을 돌보고 있다. 앞으론 시설에서 자립한 미혼모들의 자녀도 돌볼 계획이다.

다음달 돌인 딸아이와 한 달 전 두리마을에 온 임은정씨(33)는 1년 전 출산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아가며 육아를 해왔지만 쉽지 않았다. 임씨는 “주말에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려고 해도 대부분 가족 단위여서 눈치가 보였는데 여기선 다른 엄마들과 함께 나들이를 갈 수 있어 좋다”며 “아이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 지내니 낯도 덜 가리게 됐다”고 말했다.

다른 미혼모 시설에서 아이를 낳은 이선미씨도 6개월 전 이곳에 입주했다. 친정아버지께 출산 사실을 털어놓지 못해 도움을 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학원에 다니며 취업 준비를 할 수 있게 됐다. 이씨는 “여기서 앞으로 1년6개월 더 지낼 수 있어 한시름 놨다. 아이와 함께 살 수 있도록 준비하기 위해 컴퓨터를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같은 처지에 놓인 엄마들이 함께 육아를 할 수 있는 공동생활 가정이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엄마들은 이곳에서 정서적으로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홍다빈씨는 고교 재학 중인 지난해 아이를 가졌다. 그는 “부모님이 (임신 사실을 안 뒤) 도와줄 수 없다고 해 막막했는데 여기서 아이를 낳아 언니들과 함께 키우고 있다. 이제 검정고시도 치를 수 있다”고 말했다. 최진숙씨는 8개월째 한 살배기 아들과 생활하면서 다른 엄마들을 돕는 도우미로도 일하고 있다. “아이를 낳고 한 달 만에 이곳에 들어왔는데 처음엔 힘들었지만 이제는 낮에 일하고 밤에는 학원을 다니며 아이와 함께 생활할 준비를 하고 있어요.”

임은정씨는 “나보다 어린 엄마들이 아이를 키우며 앞날을 위해 씩씩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 힘을 얻는다”고 덧붙였다.

서울시는 앞으로 시내 미혼모 시설 12곳에도 육아방 지원을 검토할 예정이다. 조현옥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은 “가족에게도 기대기 어려운 환경에서 홀로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에게 공동 육아방은 꼭 필요하다”며 “자녀 양육과 경제적 자립을 동시에 지원하면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