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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 사후 1년, ‘애플의 마법’ 잃었나

by bomida 2012. 10. 9.

‘잡스 없는’ 애플이 가장 공을 들여 첫선을 보인 아이폰5는 역설적이게도 1년 전 우려가 단순히 기우가 아닐지 모른다는 전망을 나오게 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가 없는 1년이 흘렀다. 많은 이들이 사후를 걱정해 왔으나 그의 애플은 여전히 막강하고 절대적 지지층인 ‘애플 팬보이’(광팬)들도 건재하다.

5일 1주기에 앞서 지인들은 그에 대한 기억들을 풀어놓으며 잡스 없이 한 해를 보낸 팬보이들을 위로했다. ‘혁신’을 위한 완벽함만 추구했을 것 같지만 잡스의 인간적 면모가 보인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9월 12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예바 부예나센터에서 아이폰5를 소개하고 있다. _ 샌프란시스코/AFP연합뉴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함께 일했던 랜디 애덤스는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난 직후인 1986년을 떠올렸다. 컴퓨터 제조사 ‘넥스트’를 차린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와 회의가 잡혔다. 만나기로 한 날 게이츠가 회사에 도착하자 안내원이 2층 잡스의 사무실에 전화로 이를 알렸다. 그러나 한참을 올라오라는 답신을 하지 않았다. 애덤스는 “바쁜 일 없이 앉아 있는 것을 봤는데 1시간이 넘도록 안내하지 않았다”며 “그 덕에 넥스트 엔지니어들은 게이츠와 말할 기회가 생겨 기뻐했다”고 10월 3일(현지시간)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말했다.

생전 빌 게이츠와 치열하게 경쟁한 잡스가 MS를 제친 애플을 봤다면 아마 더 기뻐했을 것이다. 애플 주가는 그가 사망한 지난해 10월 5일 주당 377.37달러에서 현재(10월 4일 기준) 662.2달러까지 뛰었다. 75% 넘게 올랐다. 시가총액은 3500억 달러 규모에서 6200억 달러로 커져 MS를 꺾고 세계 1위로 부상했다.

시가총액 6200억 달러로 세계 1위

1985년 당시 애플 최고경영자(CEO) 존 스컬리와 경영진에 의해 해고된 잡스가 짜낸 애플 ‘수복’ 전략도 알려졌다. 애플의 마케팅 담당자 리지스 매케나는 그가 쫓겨나고 일주일 후 만났다. 매케나는 “잡스는 자신의 새 컴퓨터 기술을 애플에 줄 수 있다고 했다. 이익을 낼 수 있는 애플의 새 도전을 돕겠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신제품 성공으로 상품 라인을 강화하면 경영난에 시달렸던 애플은 회사 매각을 검토할 것이라는 의미였다. 이 예상은 적중했다. 애플은 1996년 잡스가 창업한 ‘넥스트’에 팔렸다. 그는 스스로의 복귀를 앞당긴 셈이다.

돌아와 생을 마감하기까지 12년간 ‘애플의 잡스’는 ‘잡스의 애플’을 완성시킨다. 그 구상은 스물여덟의 청년 잡스가 이미 짜놓았던 듯하다. 미 정보기술(IT) 블로거 마르셀 브라운이 2일 라이프리버티테크(lifelibertytech)에 올린 글을 보면 잡스의 1983년 연설 속에 2012년 현재가 있다. 잡스는 미래 IT를 전망하며 애플의 목표는 “믿기 힘든 엄청난 컴퓨터를 넣은 책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20분이면 사용법을 익혀 들고 다니며 무선으로 다른 컴퓨터와 대용량 데이터통신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0년에 나온 ‘아이패드’를 그린 것 같다. 그는 음원과 앱도 30년 전 예견했다. 잡스는 “전화선을 따라 소프트웨어가 전송될 것이고 이 디지털 상품은 기존 굴뚝산업과 다른 유통방식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인들의 추억에는 완고하고 공격적인 잡스도 보인다. 2004년 그는 미 캘리포니아주 팰러앨토 스탠퍼드 쇼핑센터의 애플스토어 문을 열며 기자 몇 명을 초대했다가 돌연 취소했다. 이 매장은 새하얗게 도색한 천장 뒷면에서 빛이 나와 조명을 대체하고 벽은 이음새 없이 스테인리스로 마감된 데다, 바닥은 항공기 격납고 소재로 매끄럽게 만들었다며 잡스가 자랑해온 곳이다. 그런데 실제 매장을 가보니 벽에는 손자국, 바닥은 신발자국이 가득했다. 잡스는 그날 밤 디자이너들을 모두 소집해 벽과 바닥 청소를 시켰다고 한다.

1989년 넥스트가 거래처를 뚫으려 안간힘을 쓸 때도 그의 성격은 여지없이 나온다. IBM과 소프트웨어 계약을 논의하는 날 넥스트 회의실에 두 회사 임원이 모였다. 잡스는 IBM 임원에게 “당신들의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엉망”이라고 쏘아붙였고 모두 입을 열지 못하고 숨을 죽였다. 이 이야기를 전한 지인은 “그가 평소 협상을 성공시킨 방식”이라고 말했다. 욕을 해 상대방을 얼떨떨하게 만든 다음 ‘우리는 협상을 할 거지만 당신 제품은 좋지 않다’고 미리 말해놓는 것이다. 무례하긴 했으나 결국 원하는 것을 항상 얻었다고 한다. 이날도 IBM은 넥스트 소트프웨어를 6500만 달러에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이 같은 잡스가 살아있다면 불호령을 내렸을지도 모를 일이 최근 애플에 생겼다. ‘잡스 없는’ 애플이 가장 공을 들여 첫선을 보인 새 스마트폰 ‘아이폰5’가 원인이다. 새 운용체계(OS) iOS6에 적용된 자체 개발 지도의 이미지가 깨지고 잘못된 위치가 표시되기도 했다. 사용자 불만이 커지자 팀 쿡 애플 CEO는 공식 사과문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포브스는 “잡스가 살아있었다면 쿡을 해고했을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갤럭시S3 보다 덜 매력적인 아이폰5”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일 헤지펀드 전문가 더그 캐스 매니저의 말을 인용해 “삼성전자의 ‘갤럭시S3’나 HTC의 ‘원X’보다 매력적이지 않은 아이폰5가 다른 스마트폰과 어떻게 경쟁할지 의문”이라며 “애플은 영향력(mojo)과 인지도를 다소 잃었다”고 혹평했다. 그는 “애플이 마법(magical Walt Disney)을 상실할 위기에 처했다”고도 우려했다.

문제는 ‘마법’이 풀리면 공고한 애플의 팬덤 역시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이다. 아이폰이 출시될 때마다 매장에 줄을 서 구입한 저스틴 헨더슨(32)은 “흥분은 가라앉았다”며 “지난 5년간 가장 긴 줄은 아이폰4였는데 그때는 엄청났다”고 CNN에 말했다. 블로거 로이 최는 테크노버팔로에 ‘전(前) 애플 팬보이의 고백’이라는 글을 올려 “애플이 ‘잡스 시대’와 동일한 환상(fantasism)을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신뢰가 깨졌다”며 “아이폰5가 나쁘지는 않지만 애플이 혁신의 선봉에 계속 설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그가 살아있을 때 강력한 힘을 갖게 한 수식어 ‘잡스의 애플’은 이제 약점이 된 셈이다. 특히 이번 아이폰5의 실망감이 이 신화를 강화한 측면도 있다. 칼럼니스트 조 노세라는 뉴욕타임스 사설에서 “애플은 수년간 최고 기업으로 남아있을 것이지만 새로 나올 제품이 기존 아이폰, 아이패드만큼 변화가 있다면 놀랄 일”이라며 “잡스는 더 이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애플처럼 한 사람에게 의존한 기업은 드문 탓이다. 그는 “현 경영진이 혁신을 유지하려는 것은 의심하지 않으나 모두를 통솔할 사람 없이는 결과가 같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잡스가 애플 제품에 반드시 넣었던 ‘하나 더’(One more thing)는 어쩌면 그 자신이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