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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중동과 아프리카

이집트, 시민혁명 기념식장 유혈사태

by bomida 2014. 1. 26.

ㆍ카이로 등서 반군부 저항·폭탄테러 최소 49명 사망

ㆍ혁명 주도한 청년들 좌절 … ‘징벌적 침묵’ 분석도

호스니 무바라크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이집트 시민혁명 3주년인 25일, 수도 카이로에서 열린 혁명 기념식은 유혈사태로 번졌다.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 등지에서 이날 반군부 저항과 폭탄테러가 일어나 최소한 49명이 숨졌다. 혁명 이후 하루가 멀다하고 시위가 열리는 일상이 반복된 것이다.

눈에 띄는 것은 혁명의 주축이던 젊은이들은 3년 전과 달리 적극적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군부가 장악한 과도정부가 지난달 새 헌법을 국민투표에 부칠 때도 청년층의 반정부 시위는 열리지 않았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대대적인 반대 운동도 없었다. 2010년 경찰 진압 과정에서 숨진 20대 청년 칼리드 사이드를 추모하며 만든 페이스북 페이지는 지난해 7월 군부 쿠데타 이후 활동이 중단됐다. 368만여명이 등록한 이 페이지는 2011년 혁명에서 젊은이들의 활동 무대였다. 하지만 혁명 이후 군부와 형제단 간 권력싸움이 계속됐고 이 같은 정국을 비판하는 게시글은 이 공방에 대한 반응으로만 비춰지면서 운영자들이 활동을 중단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청년층의 침묵은 혁명 이후 권력은 군부에서 무슬림형제단, 다시 군부로 이동했지만 이들이 요구한 삶의 질 개선과 자유·사회적 정의는 이뤄지지 않음에 따라 젊은층의 좌절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반영한다. 경제사회권리를 위한 이집트센터의 말레크 아드리 변호사는 “이는 징벌적 무관심”이라며 “정치변화의 주역이 됐던 젊은이들이 (군부와 형제단 간) 보복전에서 빠지겠다는 것”이라고 알자지라에 말했다.

그렇다고 젊은층의 혁명이 멈춘 것은 아니다. 칼리드 사이드 추모 페이지를 만든 와엘 고님은 13~18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활동으로 초점을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국민투표에서 젊은층의 참여가 저조한 데는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대학가 시험기간과 겹쳤다거나 이집트 청년운동가 살마 사이드가 트위터에 올린 것처럼 “젊은층이 투옥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무바라크 축출 운동 선봉에 섰던 ‘4월6일 청년운동’의 아메드 마헤르와 무함마드 아델, 알라 압델 파타가 지난달 말 새 집시법으로 체포된 바 있다.

하지만 국민투표를 ‘보이콧’하기 위한 저항의 일환이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아메드 자말은 “대부분 젊은이들이 특별한 움직임 없이도 투표 보이콧 등으로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것은 작은 희망”이라고 말했다. 런던정경대 파와즈 게르게스 중동학 교수는 “이집트에서 대학은 반대 의견을 내놓는 선봉에 있다”며 “형제단이 거리나 광장 대신 최근 대학에서 시위 등 활동 근거지를 옮긴 이유도 시위 동력을 유지하고 비무슬림을 동참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에 말했다.

그러나 혁명운동은 이날 3주년에 맞춰 다시 대규모 반군부 시위를 준비하면서도 형제단과 함께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형제단과 청년조직 등 300명이 체포된 가운데 혁명운동은 조직원 한 명이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