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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중동과 아프리카

브레이크 없는 유혈사태 기로에 선 ‘이집트의 봄’

by bomida 2014. 1. 12.

군부의 가장 큰 탄압을 받는 형제단 진영과 경찰의 충돌 역시 날로 격해지는 양상이다.


이집트가 기로에 섰다. 새해는 밝았지만, 정국에는 어두운 불안감이 가득하다. 2011년 1월, 이집트는 아랍의 봄을 통해 30년을 이어온 호스니 무바라크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만 3년이 지난 지금, 혁명 후 첫 선거로 뽑힌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은 쿠데타로 축출됐고, 민주주의 희망을 싹 틔웠던 운동가들은 ‘국가 파괴자’로 낙인찍혀 투옥됐다.

이집트의 혁명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은 민주적 정권 이양을 약속했던 군부가 차기 정부 장악을 위한 사전 작업을 벌이면서다. 무르시의 지지기반이었던 이슬람 진영은 대대적으로 숙청됐고, 경찰은 군부와 임시정부에 저항하는 이들을 쉽게 제압할 수 있도록 힘을 얻었다. 

그리하여 이집트는 무바라크 때보다 더 강력한 권위주의 시대로 회귀했다. 나라는 분열됐고, 분절의 골은 깊어져 지난해 8월 반군부 시위 현장에서는 경찰의 무차별 진압으로 1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이집트 근대 역사상 최악의 참사다.

이집트에선 시위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지난해 11월 말에도 수도 카이로 의회 주변에 군부의 새 헌법안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진을 쳤다. 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강제 해산을 시도했다. 

당시 집회에 참가했던 나질 후세인(30)은 이날 다른 여성 20여명과 함께 경찰에게 구타를 당한 뒤, 한밤중에 사막 한가운데에 버려졌다. 나질은 “거칠고 폭력적인 공권력이 지배하는 세상이 됐다. 끔찍한 억압이 돌아왔다”고 파이낸셜타임스에 말했다. 헌법 개정안은 이슬람 정당의 정치 진출을 막고, 민간인도 군법정에 세울 수 있게 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돼 반발이 크지만, 이달 14~15일 실시될 국민투표에 부쳐질 예정이다. 과반 찬성을 받아 헌법이 개정되면 6개월 내 대선과 총선을 치러 새 정권이 들어서게 된다. 군부는 이 과정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려고 반대 여론을 막기 위한 고삐를 죄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29일 이집트 수도 카이로 알아즈하르대 인근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에서 경찰의 진압에 부상을 당한 남성을 시민들이 옮기고 있다. 카이로/AP연합뉴스


85년 역사를 가진 이슬람 최대 정치조직인 형제단을 ‘테러단체’로 지정하고 지도부 재산을 몰수해 정치·사회적 재갈을 물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위는 사전신고를 의무화하도록 집시법을 바꿨고, 경찰은 대학 교정과 모스크에서 열리는 시위까지 무력을 동원해 진압에 나서고 있는 상태다. 지난달 28일 카이로 알아즈하르대 시위에서는 학생 한 명이 사망했고, 다음날 경찰의 조준 사격에 부상당한 학생도 나왔다.

헌법개정안 국민투표에 부쳐
군부의 강압적인 태도에 대항하는 반발 역시 폭력성이 커졌다. 지난달 24일 카이로 북쪽 다칼리아주 안의 경찰본부에서는 폭발 테러가 발생해 고위급 간부를 포함한 16명이 숨지고 130명 이상이 다쳤다. 닷새 후 인근 또 다른 군정보기관 본부도 공격을 당해 4명이 다쳤고, 같은 날 시나이 반도에서는 산업 지대로 들어가는 수송관이 폭발하기도 했다.

카이로 투자은행 EFG 헤르메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이집트 내 모든 역학은 정치가 결정지을 것”이라며 “양극화는 커지고, 임시정부와 형제단의 화해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미래를 예측하기도 힘들어졌다”고 분석했다. 군부의 가장 큰 탄압을 받는 형제단 진영과 경찰의 충돌 역시 날로 격해지는 양상이다.

운신의 폭이 좁아진 형제단의 젊은 지지자들은 군부에 대한 반감을 비이슬람권으로 전파하기 위해 거리나 광장 대신 대학 안에서 시위를 여는 전술을 쓰고 있다. 미국 중동연구소 선임연구원인 칼릴 안나니는 “대다수가 투옥 중인 지도부와 젊은 형제단 소속원 간 소통이 줄어들면서 이들의 폭력성이 더 커질 수 있다”며 “유혈충돌이 계속되면 역풍을 맞을 수 있지만 군부가 고립시킨 형제단은 극단주의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집트 정치분석가 무함마드 다산은 “형제단과 군부 모두의 잘못된 생각 때문에 희생자가 늘고 있지만 이를 바로잡아줄 리더십이 없다”며 “쿠데타 이후 6개월간 서로 역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방식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차기대통령으로 현 국방장관 부상
극으로 치닫는 정국을 안정시키려면 현재 군부를 이끌고 있는 압델 파타 엘 시시 국방장관이 차기 대통령이 되는 게 대안이라는 의견도 있다. 1952년 쿠데타로 60여년간 정권을 잡았던 군부는 이집트 내 확고한 정치력을 갖고 있고, 국내 불안이 심해질 때 그 의존도는 더 커진다. 

지난해 무르시 정권이 강경한 이슬람 정책을 고수하면서 반정부 진영에서 군부와 사법부, 경찰의 역할을 요구하는 압력이 커졌고, 이게 결국 쿠데타의 빌미가 됐다. 특히 엘 시시는 현재 이집트 엘리트층과 산업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정치적 변혁,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는 일반 시민층의 지지율도 높다. 그가 직접 대통령직에 앉지 않으면 차기 대통령은 누구든 이 영향력에 가려 ‘2인자’에 머물 수밖에 없다. 다시 무슬림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막으려는 세속주의·기독교 진영도 엘 시시가 나서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이 때문에 두 집단은 최근 과도정부에 헌법 구성 뒤 대선을 먼저 치르고 그 후 총선을 치르자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이는 군부가 당초 계획한 정권 이양 로드맵을 뒤엎는 일정이다. 엘 시시를 대통령으로 세운 뒤 군부가 의회 구성에도 영향력을 발휘해 이슬람 정당이 세력을 키울 수 없도록 하려는 계산으로 보인다. 

엘 시시는 아직 출마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한 군부 관계자는 “그는 무바라크 이후 불안한 정국을 안정시킬 유일한 인물이다. 그의 지지층이 확고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면서도 “자신이 집권하면 직면할 심각한 경제 위기에 따른 득실을 따져보고 있을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엘 시시의 걱정대로 차기 대통령은 나락으로 떨어진 이집트 경제를 일으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3년간 정치적 불안감이 부른 경기침체로 인구 4분의 1이 절대빈곤선으로 떨어졌고, 경제성장률은 2%대로 내려앉았다. 바닥난 외환보유액과 투자도 회복시켜야 한다. 

이집트 경제에 큰 몫을 차지하는 관광 산업 정상화를 위해서 빠른 정세안정도 필요하다. 최대 난관은 보조금 축소다. 막대한 재정난을 부른 연료 등의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줄이고 부가세를 인상해 재정을 개혁해야 하지만 여론의 저항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한 서방 외교관은 “경제 문제가 다음 걱정거리인데 정치가 완벽해도 풀기가 어려운데 정치력이 자리잡지도 못한 상황에서 관리가 될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집트 분열을 돈으로 파고들어 이용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아랍에미리트·쿠웨이트 등은 쿠데타 이후 160억 달러어치의 재원과 차관·석유 지원을 약속한 것이 그 예다. 이웃한 이들 걸프국은 무르시를 축출한 이집트 군부가 형제단 재건을 막아주길 바라고 있다. 왕정을 고수하는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형제단이 주장하는 무슬림 민주주의가 확산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당장은 가뭄에 단비가 내린 셈이지만 이 같은 재정지원이 무한하게 이뤄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 국무부는 최근 국면에 대해 “이집트 국민들이 원하는 안정을 찾으려면 경제회복이 최우선”이라며 “또 다양한 집단의 정치참여와 대화가 전제돼야 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