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

[기자협회보] 필리핀 태풍 현장에서 빛난 스마트폰…타클로반 급파된 기자들 후일담

by bomida 2013. 11. 28.

2013년 11월 20일 (수) 12:02:08원성윤 기자  socool@journalist.or.kr

  
 
 ▲ 사상 최악의 태풍 ‘하이옌’으로 42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가운데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타클로반 현지에 우리나라 기자들이 급파됐다. 사진은 지난 17일(현지시각) 필리핀 바랑가이 99지역 커버드 코트에서 굿네이버스의 구호물자를 배분 받은 주민들이 물품을 옮기고 있다. (사진=굿네이버스) 
 
사상 최악의 태풍 ‘하이옌’으로 필리핀에 42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번 태풍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타클로반에서는 인구 22만 명 중 무려 1만 명 이상이 숨져 한국 취재진들이 이곳에 급파됐다. 해안에서 1km 이내에 남은 건축물이 거의 없을 정도로 타클로반 도시 전체가 쑥대밭이 됐다. 

필리핀 휴양지로 유명한 세부에서 미국군용기를 타고 타클로반에 급파된 기자들은 처참한 모습에 넋을 잃었다. 수습하지 못한 시신이 시내 곳곳에 널려 있었다. 물이 빠지지 않은 일부 지역에서는 시신이 물 위에 둥둥 떠다녔다. 악취가 진동했다. 쌀 포대 같은 비닐 팩에 실려 나온 시체들은 거리 곳곳에 버려져 있었다. 곳곳에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고, 약탈 현장도 심심찮게 목격됐다. 

김보미 경향신문 기자는 타클로반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시체 냄새에 코를 들지 못했다. 취재를 하느라 처음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갈수록 속이 메스껍고 코까지 얼얼해지는 두통이 찾아왔다. 두통제를 계속 먹어가며 이를 악물었다. 이튿날에는 선배기자가 챙겨준 마스크를 쓰고 취재했다. 김 기자는 “원래 냄새에 예민한 편이라 더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취재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도 만만찮았다. 취재 첫날에 타클로반에서 북쪽으로 96㎞ 떨어진 사마르섬의 서부 해안 도시 카트발로간까지 가는데 꼬박 4시간이 걸렸다. 25명에 달하는 취재진이 5인승 SUV 승용차 2대에 구겨서 탔다. 앞자리에 앉은 정세라 한겨레 기자와 김보미 경향신문 기자는 서로의 무릎에 번갈아 앉으며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기사를 쓰기 위해서였다. 노트북에 연결할 인터넷도 없었고, 전화는 제대로 되지 않았다. 통신기반시설이 망가진 가운데서도 3G 환경이 그나마 나았다. 물론 끊김 현상이 반복됐다. 좁은 의자에서 자그마한 화면에 자판을 꾹꾹 눌러 기사를 썼다. 한동안 뜨지 않던 3G가 잡히기라도 하면, 스마트폰 메신저 ‘카카오톡’에 얹어 놓은 기사 전문을 올려놓고 전송을 누르기에 바빴다. 

숙소에 가니 밤이 됐다. 호텔이라고는 하나 물도 잘 나오지 않았다. 1인용 침대에 바퀴벌레가 기어 다녔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수도꼭지로만 나오는 물도 형편없었다. 낮 기온 30도, 밤에도 25도까지 올라가는 후덥지근한 날씨. 잠을 청해보려도 창문도 없는 방이라 잠자리는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뒤척이다 다음 날, 차를 타고 타클로반 시내를 나왔다. 기자들은 다시 뿔뿔이 흩어져 취재를 시작했다. 

필리핀 공산 반군인 신인민군(NPA, New People's Army)은 불안한 치안을 틈타 시민들을 위협하는 일도 잦았다. 정세라 한겨레 기자는 “필리핀 정부가 이곳 지역 반군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해 치안공백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탈옥이 심심찮게 발생했지만 정부 고위관계자는 “다들 감옥에 잘 있다”고 발뺌했고, 중간 관계자는 “2명뿐”이라며 서로 다른 말을 했다.

1주일가량 취재하며 지난 17일 새벽 전후 한국으로 돌아온 기자들. 이들은 입을 모아 필리핀 재건에 힘을 보태야 한다고 말했다. 허진석 동아일보 기자는 “파킨슨병을 앓는 할머니를 눕히기 위해 모두 일어나 자리를 봐주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의 배려심을 느낄 수 있었다”며 “타클로반이 잘 일어설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김보미 경향신문 기자도 “기자들의 애로사항은 외국인의 사치스러운 투정이다. 타클로반에서 우리를 태우고 갈 대한민국 공군기가 도착했을 때 ‘여기서 탈출하겠구나’하고 기뻤지만 활주로에서 대기할 때 뒤통수가 얼마나 따가웠는지 모른다”며 “아기를 안은 엄마, 엄마 옷자락을 잡고 있던 아이들을 차마 볼 수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복구에는 지난한 과정이 남았다. 정세라 한겨레 기자는 “2~3주내에 전염병이 돌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나라도 잊지 않고 구호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구호·복지단체들도 필리핀 긴급구호 활동에 착수했다. 사랑의 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지난 12일 필리핀에 100만달러(한화 약 10억원)을 1차로 긴급지원하기로 했다. 대한적십자사는 긴급구호자금 10만달러(한화 약 1억원)를 전달하고 다음달 20일까지 국민과 기업을 대상으로 100억원 규모의 범국민 모금 캠페인을 전개하는 등 구호물품과 성금이 속속 필리핀에 도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