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아테네 올림픽 기간 수영 종목의 경기가 열렸던 공간이 올핌픽이 끝난지 10년이 지난 2014년 방치돼 먼지만 쌓여 있다. 그리스는 올림픽 유치에 90억유로를 투입했지만 금융위기 이후 정부 재정 악화로 경기장들은 방치됐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그리스 아테네에서 1896년 처음 열렸던 근대 올림픽에 참가한 국가는 14개국뿐이었다. 선수는 다 합쳐야 241명이었다. 120년이 지난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선 참여국이 200개가 넘었고, 선수는 1만1000여명에 달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더 큰 경기장, 더 많은 시설이 필요해진 올림픽. 전 세계에 나라를 알리는 기회였던 ‘세계인의 축제’는 이제 주최 도시에 엄청난 숙제를 남기는 덩치 큰 행사가 됐다.
미국 보스턴, 독일 함부르크가 2024년 올림픽 개최를 포기한 이유는 비용도 문제지만 시설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 부담이 결정적이다. 이미 막대한 돈을 투자한 경기장, 건물들이 값만 비싼 애물단지인 ‘흰 코끼리’가 되지 않게 하려면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지만 관건은 돈이다. 2004년 다시 올림픽이 열린 아테네는 그리스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제 불황의 늪에 빠지면서 경기장을 관리할 여력도 없어졌다. 공간은 방치됐고, 2015년 이후엔 지중해를 넘어온 난민들의 임시 거주지가 되기도 했다.
캐나다 몬트리올은 올림픽 때문에 도시가 얼마나 오랜 기간 비용을 치르는지 보여준다. 1976년 하계올림픽 때 ‘빅 오(Big O)’로 불린 주경기장은 야구장으로 쓰다 버려진 뒤 ‘빅 오(Big Owe·큰 빚)’가 됐다. 이따금씩 공연이나 견본주택 전시회가 열렸지만 지난해 스포츠 행사는 네 차례가 전부였다고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이곳도 올여름 미국 국경을 넘어온 망명 신청자들의 임시거처가 됐다.
퀘벡주의 최대 금융사 데자르댕이 내년 사옥 이전을 결정하면서 40여년 만에 ‘존재의 이유’를 찾았지만 주정부는 입주에 앞서 지붕 수리에 1억5600만달러, 리모델링에 3400만달러를 지원해야 한다. 또다시 막대한 세금 투입을 피할 수 없는 셈이다. 게다가 이 경기장은 지붕을 도르래로 걷어올리는 형태로 지어졌는데 처음부터 기계가 고장 나 제대로 작동한 적도 없다. 올림픽을 치른 지 19년 만에 천막으로 간신히 교체했지만 이마저 자주 찢겨 적지 않은 수리비용을 지불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기간 카누와 카약 종목의 경기가 열렸던 공간에 2014년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하키 경기장으로 사용됐던 장소에 지난 2016년 3월 임시 난민촌이 차려져 있다. 그리스 정부는 2015년부터 북아프리카와 중동을 떠나 유럽으로 밀려드는 난민들을 수용할 공간이 부족해지자 방치돼 있던 올림픽 경기장을 이들에게 개방했다. CNN
몬트리올 주경기장처럼 올림픽을 위한 건물들은 실험적인 설계, 방사형 구조를 적용했거나 기둥이 많아 구조변경이 힘든 경우도 있다. 스포츠 경기장·시설 전문 건축사무소 포퓰러스(Populous)의 건축가 니컬러스 레이놀즈는 “임시 건물은 정말로 임시적이어야 한다”며 “가장 작은 단위로 건물을 분해할 수 있다면 (다시 재료로) 공급할 수 있어 용도를 바꾸기도 편하다”고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말했다.
최근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주정부가 시드니의 올림픽공원 주경기장과 또 다른 경기장인 알리안츠 스타디움을 철거한 뒤 새로 짓기로 하면서 7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반대서명에 나선 것도 스포츠 등을 위한 대형 시설물에 막대한 세금을 쏟아붓는 데 대한 반감 때문이다. 두 경기장을 재건축하는 데 20억호주달러(약 1조7000억원)가 들어갈 예정이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 사용됐던 경기장들은 애초에 ‘흰 코끼리’를 만들지 않도록 설계부터 해체와 변형, 재조립을 구상에 넣었다. 수영 경기장은 8000개 객석을 물 위에 뜬 날개와 같은 구조로 만들어 올림픽 이후 떼어내 일반 수영장으로 개조했다. 올림픽을 상징하는 다리는 여러 개의 조각으로 쪼개 납땜하는 식으로 접합해 빠른 분해가 가능하게 만들었다. 또 하키 경기장의 경우 철거한 인조 바닥이 요크셔 셰필드 할람대의 경기장 자재로 투입됐다고 한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수영 종목 경기장 모습(위 사진)이다. 8000개 객석을 수영장 양쪽으로 날개처럼 생긴 구조물에 만들었다. 물 위에 띄워 놓은 이 부분은 올림픽 이후 제거하기 쉽게 설계한 것이다. 지금은 날개 부분을 떼어낸 뒤 일반 수영장(아래 사진)으로 사용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올림픽 경기장 단지는 현재 퀸 엘리자베스 올림픽 공원으로 바뀌었다. 낙후된 런던의 동부를 개발하기 위해 영국 정부가 지역을 특정해 올림픽을 유치한 덕분이다. 특히 경기장들이 들어선 곳은 쓰레기매립지가 있던 곳으로 런던의 다른 곳보다 기대수명이나 교육수준이 낮은 동네였다. 올림픽 이후 경기장들이 시민들이 쓸 수 있는 체육시설과 공연장으로 바뀌었고, 대규모 주택단지와 쇼핑몰도 생기면서 거주인구도 늘었다.
주경기장 건물은 4000억원 이상을 추가로 들여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으로 바꿨다. 올림픽 기간 전 세계 언론사들이 사용했던 미디어센터 등은 당초 철거하려 했지만 에너지 효율성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구조를 바꿔 전시공간으로 남겨 계속 사용 중이다. 지금은 런던대(UCL) 학생들이 지역 주민들과 함께 사용하는 작업공간도 조성돼 있다. 올해 2월 삼성전자가 미국과 영국에서 갤럭시S8 공개행사를 열었을 때 런던 개최지가 이곳이었다.
퀸 엘리자베스 올림픽 공원의 상징물이 된 런던 슬라이드(왼쪽). 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115m의 빨간 철제 구조물은 세계에서 가장 높이의 미끄럼틀이다. 올림픽 기간 전 세계 언론사들이 사용했던 미디어센터 등을 전시공간으로 바꾼 ‘히어 이스트(Here East)’까지는 쇼핑몰 웨스트필드가 있는 스트래트포드역에서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5분 정도 걸려 들어올 수 있다.
퀸 엘리자베스 올림픽 공원의 전시공간이 된 히어 이스트. 올림픽 기간 사용됐던 프레스 센터는 계획대로 철거하지 않고 내부 설계를 바꿔 사용 중이다.
시내에선 다소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이어서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사람들이 유입될 수 있는 장치를 만드는 것은 숙제였다. 그래서 전시공간으로 바꾼 ‘히어 이스트(Here East)’까지는 쇼핑몰 웨스트필드가 있는 스트래트포드역에서 무료 셔틀버스를 운행 중이다. 5분 정도 걸려 들어올 수 있다. 또 공원 전체에 와이파이를 설치해 어디서든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도록 했으며, 1.5도 이상 경사가 있는 곳은 모두 평지로 만들어 휠체어 이동도 편하게 만들었다.
공원을 관리하는 런던자산개발회사(LLDC)의 제니퍼 다오퉁은 “애초에 올림픽 이후에 맞춰 준비해야 한다”며 “(추가로 예산이 들어도) 지속해서 사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1억달러 이상을 투입해 세계 최대 규모의 수영 경기장 ‘워터큐브(Water Cube)’를 건설했다. 지금은 이를 아시아 최대 실내 워터파크로 만들었다.
소규모 경기장 중에는 운동과 아예 상관없는 공간이 되는 곳도 있다. 1980년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미국 레이크플래시드는 선수촌을 고민하다 교도소로 개조했다. 주택과 병원으로 쓰자는 제안도 나왔지만 3000명밖에 살지 않는 작은 도시에는 맞지 않았다. 대신 1970~80년대 범죄가 증가하면서 감옥 수요가 늘어난 데 착안해 교도소로 바꿨고 지금도 900명이 수용돼 있다.
핀란드 헬싱키의 테니시팔라시(Tennispalatsi)는 1940년 올림픽의 테니스 경기장으로 1938년 지어졌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으로 사용하지 못하다 1952년 15회 헬싱키 올림픽이 개최되면서 농구경기장이 됐다. 지금은 14개 극장 등이 있는 상업시설로 쓰인다.
중국 정부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준비하며 아시아 최대 규모로 지은 수영 종목 경기장은 올림픽이 끝난 뒤 아시아에서 가장 큰 실내 워터파크(오른쪽)로 바뀌어 다시 문을 열었다. 게티이미지코리아·AP연합뉴스
980년 동계 올림픽이 열렸던 미국 레이크플래시드의 선수촌은 현재 교도소로 개조돼 사용 중이다. 마국 연방교도소관리국
1940년 헬싱키 올림픽의 테니스 경기장으로 지어졌던 테니시팔라시(Tennispalatsi)는 2차대전으로 올림픽이 취소돼 사용되지 못하다가 1952년 다시 개최된 헬싱키 올림픽에서 농구 경기장으로 활용됐다. 지금은 영화관 등이 입점한 복합문화공간이 됐다. 위키피디아
러시아에서 열릴 예정인 2018년 소치 월드컵에 사용될 피시트 올림픽 경기장. 2014년 동계 올림픽에 쓰였던 경기장을 재활용하기로 했다. AP연합뉴스
차라리 이미 경기를 치렀던 도시에서 다시 올림픽을 열자는 의견도 있다. 가장 알뜰하게 예산을 쓴 올림픽으로 평가받았던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도 앞서 스페인이 유치한 바 있어 필요한 시설의 70%가 마련돼 있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는 2028년 3번째 올림픽을 연다. 특히 LA 메모리얼 경기장은 1932년과 1984년 하계올림픽뿐만 아니라 두 번의 슈퍼볼(미식축구)과 월드시리즈(야구)를 열며 꾸준히 수익을 내는 곳이다.
1950년대 옛 소련 운동선수들을 위한 공간이었던 모스크바 경기장은 1980년 올림픽을 치른 뒤 프로 축구팀들의 홈구장으로 사용돼 왔다. 2018년 월드컵에서도 메인 경기장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러시아는 월드컵 때 소치 올림픽에 썼던 피시트 올림픽 경기장을 포함해 12개 경기장 중 3곳을 재활용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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