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노르트홀란트주 크롬메니에 시내에 설치된 태양광 자전거 도로, 솔라 로드 위를 지난 21일(현지시간) 주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있다. 왼쪽길 도로 바닥 밑으로 보이는 어두운 청색 부분이 태양광에너지를 수집하는 패널이다. 크롬메니에_김보미 기자
굵은 빗줄기가 내리는 초겨울 추위에도 네덜란드 거리에선 자전거를 탄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지난 21일 오후(현지시간) 종일 내린 비로 살을 에는 날씨였지만 노르트홀란트주 크롬메니에 기찻길 옆 자전거 도로는 비옷을 입고 하굣길을 달리는 학생들, 우산도 쓰지 않은 채 페달을 밟는 주민들이 쉴 새 없이 오갔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길의 표면을 자세히 보니 투명한 바닥 밑으로 청색 기판이 깔려 있다. 태양광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패널이다. 3년 전 새로 포장된 첫 태양광 도로, ‘솔라 로드’(SolaRoad)다.
태양광 기술을 연구한 공학자이자 건축가인 스탄 클레르크스는 “흙이 튀고, 나뭇잎이 떨어져 표면이 더러워져 효율성만 보면 옥상에 패널을 설치할 때의 70% 수준”이라고 말했다. 겨울이면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이 대부분이고 해도 짧아지는 네덜란드에서 태양을 향해 각도를 조절할 수도 없는 도로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이유는 하나다. 세계 최대 ‘자전거 나라’이기 때문이다.
사람보다 자전거…네덜란드는 태양광도 지붕 대신 자전거길
인구 1700만명인 네덜란드에 자전거는 2500만대가 넘는다. 총리뿐 아니라 시민의 25%가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며 시민 1명이 자전거로 달리는 거리는 1년 평균 1000㎞에 이른다. 1970년대 교통사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도시의 구조를 자전거 중심으로 바꾸면서 자전거 전용도로 면적은 네덜란드 전역에 1000㎢에 달한다. 이 나라 모든 주택의 지붕 넓이(400㎢)보다 2배 이상 넓다.
2014년 노르트홀란트주가 이 점에 착안해, 낡은 자전거 도로를 70m를 뜯어내고 태양광 패널이 들어간 새 길을 처음으로 깔았다. 네덜란드의 비영리 응용과학연구소인 ‘TNO’에서 일하는 클레르크스는 “자전거 도로의 30%만 솔라 로드로 만들어도 네덜란드의 전기차 800만대에 필요한 전기를 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네덜란드 노르트홀란트주 크롬메니에 시내에서 지난 2014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솔라 로드를 자전거 도로 위에 설치하고 있다. SolaRoad Netherlands
솔라 로드 기술을 연구하고 있는 TNO는 처음엔 유리처럼 깨지는 일반 태양광 모듈(왼쪽)으로 자전거 길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후 일부 구간은 보수하면서 플렉서블 패널(왼쪽)을 넣어 내구성을 강화한 모듈로 대체해 성능을 실험 중이다.
솔라 로드(왼쪽)에는 온도를 측정하는 센서(오른쪽)도 붙어있다. 연구팀은 CCTV를 통해 통행량 등을 체크하며 시민들의 행동패턴과 자전거 도로의 상태를 점검한다.
수백년 전부터 풍차를 돌렸던 나라지만 화석 연료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네덜란드는 재생에너지 분야에선 유럽의 후발주자다. 특히 태양광(5.4%)은 쓰레기, 동물 배설물 등에서 얻는 바이오매스(63%·2016년)와 풍력(24%)에 비해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2008년 보조금 정책을 시작했지만 호응은 크지 않았다. 2011년 로테르담 중앙역 옥상에 대규모 태양광 발전소를 만든 것을 계기로 본격화돼 2015년에야 생산 용량이 연간 357㎿정도가 됐다. 그래도 주민 한 명이 사용은 태양광에너지는 평균 83.1㎿로 유럽 평균(186㎿)의 절반에도 못미쳤고, 이웃 벨기에(287㎿)의 3분의 1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TNO’의 키스 빌렘세 박사는 “전통적으로 가스·석유산업이 컸다. 북해 주변에 풍력 발전소가 많지만 국토 면적이 적어 확장엔 한계가 있다”며 “이제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하는 시점에 와 있고 태양광, 지열 등의 대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는 2030년까지 5개의 화력발전소를 모두 폐쇄해 재생에너지 비중을 23.9%까지 높이고, 온실가스 배출량도 1990년 대비 34% 줄일 방침이지만 이렇게 해도 유럽연합(EU)의 목
표치(각 27%·40%)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소비자들도 ‘착한 에너지’를 원하고 있다. 전력을 선택해서 구입할 수 있는 네덜란드에서 풍력·태양광 소비는 지난해 전년 대비 20%가 늘었다. 신차 중 전기차 비중도 2015년 기준 9.74%로 노르웨이에 이어 세계 2위다. 이 추세에 맞추기 위해 낙농업이 발달한 네덜란드는 자전거와 함께 젖소도 재생에너지원으로 개발 중이다. 갓 짜낸 따뜻한 원유가 식을 때 나오는 열에너지를 쓰는 것이다. 에너지원으로 규정도 돼있지 않고 전체 재생에너지의 0.3%(네덜란드 통계청)로 아주 적은 양이긴 우유 역시 세계 어디에도 없는 에너지원료로 쓰는 것이다.
노후도시 틈새에 자리잡는 ‘대안 발전소’
네덜란드가 이런 실험에 나선 데는 인구 밀도(1㎢당 404명)는 한국(1㎢당 487명)만큼 높아 공간이 부족한 점도 있다. 그래서 도시 노후 시설은 발전소를 설치할 ‘틈새’ 공간이기도 하다. 솔라 로드도 오래된 자전거 길을 교체하려는 자치정부가 도로를 수리하려던 비용으로 기술을 연구하던 비영리 연구소와 2010년 손을 잡고 투자에 나선 경우다.
크롬메니에 솔라 로드는 첫 1년간 9800㎾h의 에너지를 생산했고, 3년간 연구에서 10m마다 네덜란드의 한 가구가 쓸 수 있는 3600㎾h의 생산 가능성이 확인됐다. 시행착오를 수정하면서 유리처럼 깨지는 기존 패널 대신 구부러지는 플랙서블 패널을 깐 새로운 도로도 시험 중이고 내년엔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일반도로의 바닥에 패널을 넣어 볼 계획이다. 자전거가 운송수단의 60%를 차지하는 네덜란드의 북부 그로닝겐과 프랑스 도시 두 곳에서도 솔라 로드를 준비하고 있다.
남동부 도시 우덴에선 새로 교체하는 소음차단벽의 400m 구간에 태양광 패널이 들어간 5m짜리 벽 68개를 내년에 설치한다. 여기서 40~60가구가 쓸 수 있는 전기가 나올 것이라고 한다. 지난해 북해 아멜란드에는 네덜란드 최대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가 들어섰는데, 이 섬은 1인당 120㎿의 태양광 에너지를 쓸 수 있어 유럽연합(EU)에서 13번째로 태양광을 많이 사용할 정도로 높은 수준이 됐다. TNO는 카리브해의 네덜란드령 아루바도 2020년까지 5000시간의 풍력, 200시간의 태양광 발전이 가능하도록 하는 연구도 진행한다고 밝혔다. 섬 안에서 필요한 전력을 탄소 배출 없이 스스로 생산하는 게 목표다.
아직은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기가 월등히 비싸다는 점은 풀어야할 숙제다. 태양광을 받기 위한 최적의 각도로 패널을 기울일 수 없는 자전거 도로에서 생산된 전기의 원가는 지붕(90~125달러)보다 3~4배가 비싼 1㎡당 1000~1400 달러 수준이다. 풍력보다 4배(0.19달러)가 비싸다. 두께 1㎝의 강화유리가 덮여 있는 솔라 로드의 태양광 패널의 수명은 10년으로 지붕에 설치했을 때(20년)의 절반 수준으로 짧은 점도 단점이다. 하지만 자전거 바퀴가 표면에 붙은 흙이나 이물질을 밀어내 따로 청소할 필요가 없든 점은 장점이라고 한다.
유럽의 태양광 기술연구소인 솔라이언스(solliance)의 바렌드 베르묄런은 “아직 파일럿(실험) 단계여서 정확한 비용 산정은 어려우나 태양광 패널의 가격은 5년 만에 80%가 낮아졌다”며 “(석유 등) 전통 에너지는 많이 쓸수록 비용이 올라가지만 (원료가 필요 없는) 태양광은 수요가 늘어날수록 (단가가) 낮아져 비용 구조도 역전될 것”이라고 말했다.
솔라 로드와 같은 태양광을 비롯한 대체에너지의 원천 기술을 국가가 만든 독립적 비영리 기구에서 개발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국영이지만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TNO’는 1932년 설립된 기관으로 정부와 지자체뿐 아니라 민간 기업과 계약을 맺고 기술을 연구한다. 연간 매출도 5억2700만 유로에 달한다. 대학에서 이뤄지는 기초 연구가 시장에 거래되는 상용화된 기술로 발전하기까지 단계의 연구를 맡는다. 기반이 되는 기술을 현실에 적용될 수 있도록 키워내는 역할인 셈이다.
‘솔라이언스’도 TNO와 또 다른 태양광 PV패널 연구소인 ‘ECN’ 등이 함께 출자해 만든 기관으로 250개 연구소가 공동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기술 기업들이 몰려 있어 네덜란드의 ‘실리콘 밸리’로 불리는 아인트호벤 하이테크캠퍼스와 벨기에의 브뤼셀, 독일의 아헨 등 인근 다른 나라와 Thin Film PV 태양광 모듈과 관련한 R&D 연합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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