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허리케인 어마가 강타한 쿠바 아바나 시내의 한 빌딩 입구에 자동차가 찌그러진 채 내동댕이쳐져 있다. 아바나|AP연합뉴스
시속 252㎞ 이상으로 몰려온 초강력 허리케인 ‘어마’가 지난 10일(현지시간) 쿠바를 덮쳤다. 수도 아바나를 물에 잠기게 한 어마는 북부 해안 480㎞를 타고 올라가 바닷가에 줄지어 선 리조트들도 초토화시켰다. 1932년 이래 쿠바에 상륙한 허리케인 중 가장 강력했던 어마가 빼앗은 것은 강풍과 폭우로 숨진 10명의 목숨만이 아니었다. 이제 막 돛을 올린 아바나의 변화였다.
아바나 항구에서 구시가지까지 8㎞ 해안에 이어진 말레콘 방파제는 아바나의 명소이자 도시의 상징적 보호막이다. 하지만 어마가 일으킨 9m가 넘는 파도를 막아내지 못했다. 말레콘을 넘은 바닷물은 도심 건물 4200채 안으로 밀려들었다. 57년간 미국의 통상금지 조치로 유지와 보수가 어려워 처음 모습 그대로 낡아버린 아바나의 건물엔 치명적이다. 로이터통신은 “폭우와 바람이 건물에 타격을 준 직후 염분이 스며들면 부식이 빨라져 건물이 아예 붕괴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9일 허리케인 어마가 몰고 온 강력한 비바람 때문에 강한 파도가 쿠바 아바마의 말레콘 방파제를 덮치고 있다. 아바나|AP연합뉴스
아바나 시내 스페인 점령기 때 완성된 바로크 양식, 다르테코 장식의 아파트가 어마 상륙으로 무너지면서 7명의 시민이 매몰돼 2명이 사망했다. 피델 카스트로는 쿠바 혁명 이후 역사적 건물들을 국가 자산으로 귀속시켜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주택 등으로 공급했지만 열대 기후에서 주민들이 건물을 유지·보수하기는 쉽지 않았다. 쿠바 정부는 도시에선 보건·교육에 우선순위를 뒀고, 주택 등 부동산과 관련한 지원은 빈곤한 시골지역에 집중됐다. 쿠바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는 어마가 지나간 이후 아바나에서 주택 4400채가 피해를 입고 이 중 1200채는 건물 전체 혹은 일부가 파괴됐다고 14일 보도했다.
지난해 무주택자 3만명이 늘어 쿠바 전역엔 현재 주택이 90만채나 모자란다. 아바나에서만 20만채가 부족하다. 1990~2013년 정부가 31만6595채의 주택을 공급했지만 여전히 부족한 쿠바의 부동산 사정이 어마로 더 악화된 것이다.
게다가 쿠바 경제는 사회주의 ‘혈맹’ 국가였던 베네수엘라의 내정 불안이 현금 부족 위기를 불러 침체로 접어든 상황이다. 쿠바가 의료진과 의료서비스를 수출하면, 베네수엘라가 석유를 공급했던 양국의 무역은 2015년부터 줄어 지금까지 70%가 감소했다. 특히 석유는 40%가 줄었다. 의약품과 석유, 화장지와 버터까지 재고가 바닥이다.
한 쿠바인이 지난 10일 허리케인 어마로 부서진 아바나의 집을 둘러보고 있다. 아바나|EPA연합뉴스
지난 10일 쿠바 시민들이 허리케인 어마가 몰고 온 폭우로 물이 허리까지 찬 아바나 시내를 헤치며 지나고 있다. 아바나|AFP연합뉴스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은 내년 2월 은퇴를 앞두고 있다. 후계구도를 준비 중인 쿠바는 60년 만에 ‘카스트로 형제’ 통치의 막을 내리는 전환점에 서 있는 셈이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성사시켜놓은 쿠바와 미국 간 국교 정상화 폐기까지 거론하며 화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베네수엘라의 공백을 대신할 외부와의 교류 확대가 절실하고 그 기대감마저 위협받는 지금 찾아온 어마는 쿠바에 ‘이중고’다.
라울은 어마가 지나간 직후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엄청나지만 가장 중요한 전투, 재건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 13일 당 지도부, 정부 관료를 불러 복구 상황을 점검하는 회의를 열고 어마 사태를 “미래에 닥칠 자연재해를 대비하는 경험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쿠바는 복구를 위한 물자와 재정이 녹록지 않다. 쿠바의 재정 상황과 관련해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해 50억달러를 무역 분야 등의 채권자들에게 지불했지만 여전히 미지급금이 10억달러 이상 남아있고 이 역시 2년 이상 지불유예를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사망한 피델 카스트로에 이어 내년 2월 은퇴를 앞둔 동생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 그도 은퇴하면 쿠바에서는 ‘카스트로 형제’의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된다. |AP연합뉴스
어마로 인한 타격은 물리적 손상뿐 아니라 올 상반기 방문자가 23% 늘어나며 급성장 중이었던 관광 산업에도 큰 생채기를 냈다. 어마는 주요 관광지가 몰려 있는 북부를 ‘카테고리 5’의 강펀치로 휩쓸면서 4~5성급 호텔의 4분의 1을 부쉈다. 카요코코의 아코르 리조트는 겨울에나 다시 문을 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쿠바의 경제학자 오마르 에버레니는 “어마가 (올해 1% 성장률이 기대됐던)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며 “농업 지원은 줄이고 민간 분야를 더 개방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신호를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니켈을 채굴하는 캐나다 광산업체 셰리트나, ‘아바나 클럽 럼’을 생산하는 페르노리카 등 핵심 외국 투자자들이 “어마로 인한 영향은 크지 않다”고 밝힌 점은 희망적이다. 하지만 우기가 이어지고 있고 11월까지 또 다른 허리케인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은 아바나에 남아있는 ‘먹구름’이다.
'도시&이슈'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보미의 도시&이슈] ‘두바퀴 천국’ 네덜란드의 자전거 길 위 ‘대안 발전소’ (0) | 2017.11.30 |
---|---|
[김보미의 도시&이슈]대홍수를 막아라...방수 도시, 스펀지 도시, 수상 도시 (0) | 2017.10.29 |
[김보미의 도시&이슈] 독립을 꿈꾸는 카탈루냐가 이슬람 혐오를 거부한 이유 (0) | 2017.09.07 |
[김보미의 도시&이슈] 신나치즘 ‘무기’된 샬러츠빌의 차량테러 (0) | 2017.08.16 |
[김보미의 도시&이슈] 덩케르크 철수작전, 이 도시도 구할까 (0) | 2017.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