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차가 운전 중 돌발사고로 앞에 보이는 두 보행자 가운데 한사람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자동차의 방향을 어느 쪽으로 향하도록 알고리즘을 만들 것인가. 이 알고리즘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주체는 도시의 시민들인가, 정부인가.
암스테르담 시청사에서 만난 헤르 바론 최고기술경영자(CTO)가 했던 이 말은 많은 생각이 들게 했다. 미래도시나 스마트 시티하면 기술을 떠올리지만, 어떤 기술을 어떻게 얹힐 것인가는 결국 사람이 선택하는 문제다. 반대쪽에서 오는 행인이 보이지 않아 걸어가다 부딪혀 죽었다는 스모그 도시, 공장에서 흘러오는 폐수로 악취가 진동하는 샛강을 콘크리트를 부어 막아버린 산업화 도시. 지금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모두 당시를 살던 시민들이 가장 원했던 가치들이 공간에 반영됐을 뿐이다.
기술에 집중할수록 서울의 뿌연 대기,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문제가 더 미궁 속에 빠지는 것은 그래서다. 저소득층이 많은 곳을 ‘우범지대’로 표시하는 이 지도 애플리케이션 ‘Ghetto Tracker’이 개발됐던 것도 마찬가지다. 바르셀로나 Eada경영대 조셉 콜 교수의 말대로 “낙후된 지역을 피해서 다니기보다 ‘어떻게 변화시킬지 논의해야한다’는 공감대가 이뤄지는 곳이 스마트 시티”다.
후안 클로스 유엔헤비타트 사무총장은 ‘2017 스마트시티 엑스포’에서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본능적으로 합의와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도시를 만든다고 했다. 하지만 도시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본능적이지 않다고 했다. 그가 예시로 든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부른 재정·부동산 위기는 도시화가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탓이었다. 그래서 기술과 아이디어로 도시화에 대응하려면 강력한 시민 교육이 필요하고 조언했다. 무엇을 선택할지 시민들의 DNA가 관건이 때문이다.
대도시 런던은 자전거 인프라에 10억 파운드를 투자해 자전거 수송률을 5% 수준으로 올렸으며, 서울 도심에서도 ‘따릉이’가 지나다니고, 가장 복잡한 종로에도 중앙버스전용차선이 깔리게 된 배경엔 정책을 결장한 시장들이 있다. 런던정경대(LSE)의 리키 버데트 도시학 교수는 “사람들의 행동을 바꿔 DNA에 새기는 이런 정책 결정은 그래서 중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또 “시민들은 이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 시장은 다시 뽑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전문가들은 도시를 계획하는데 기술의 혜택을 받는 것이 ‘스마트’이긴 하나 도시 문제, 특히 불균형 해결에 사회적 측면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버데트 교수는 내년 런던에서 개통되는 새로운 지하철인 엘리자베스라인을 얘기했다. 230억 파운드가 투자된 신설 노선은 런던의 서부와 북동부가 이어진다는 것을 넘어 이곳의 저소득층, 교육과 일자리에서 소외됐던 이들에게 기회가 늘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교통이 연결되면 (런던 동부 신흥금융가 카나리 워프처럼) 새 지역들이 만들어진다. 나에게는 이것이 스마트 시티다.”
3일간 바르셀로나에서 참가했던 ‘스마트시티 엑스포 콩크레스’는 흥미로운 풍경이었다. 외출한 강아지를 길가에 잠시 맡겨두는 애견 상자처럼 소소한 제품부터 건물 전체가 에너지 손실이 ‘0’에 가깝도록 설계된 첨단 빌딩까지 있었다. 다양한 도시문제만큼 기술의 스펙트럼은 넓었고 ‘도시’의 이름을 달고 상업화될 수 있는 여지도 많다는 인상을 받았다.
공공정책으로 다뤄졌던 도시의 기술과 철학은 이제 사업가들의 이슈가 됐다.(콜 교수) 구글과 페이스북은 미국 오클랜드에서 기본소득을 연구 중이다. 기업이 자산을 투입해 복지를 실험한다. 국내총생산(GDP)가 무엇인가의 척도가 되는 때는 지났으며 성장을 통한 낙수효과도, 늘어나는 인구에 맞춘 일자리 확대도 없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정보기술 기업은 에너지와 은행, 여행 산업에도 뛰어든다. 예전엔 규제로 이를 통제하던 정부도 협업하는 구조가 됐다.(바론 CTO) 공개된 공공정보로 실시간 교통정보를 알려주는 앱은 시청에서 만든 것인지, 기업에서 만든 것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3주간의 연수는 서울뿐만 아니라 세계 도시들이 시민들과 잘 살아보기 위한 고민, 그리고 각자의 철학을 접할 수 있는 기회였다. 어디나 사람들 사는 곳은 비슷하지만 다양한 사람만큼 생각과 고민은 다양한 것 같다.
***2017년 한국언론재단 3차 연수 후기에 쓴 글임.
2017 Smart City Expo World Congress
11월14~16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Fira Barcelona
후안 클로스 유엔해비타트 사무총장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다. 도시를 본능적으로 만든다. 합의와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서다. 하지만 문제를 풀려면 교육이 필요하다. 이것은 본능적이지 않다. 기술과 스마트한 아이디어로 도시화에 대응하는 것은 그래서 도전이다. 서브프라임이 부른 위기는 도시화가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예다. 아랍의 봄도 도시 노동자들의 문제였다. 도시화의 질은 시민들의 상황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나빠지면 문제가 생긴다. 이주자, 테러리즘도 마찬가지다. 도시의 빈민들은 테러가담자 모집에 표적이 된다. 인구의 55%가 사는 도시는 기후변화 요인의 70%를 유발한다. 에너지를 더 소비하기 때문이다. 도시화는 복잡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가치를 만드는 도시공간의 역할이 커진다. 도시화는 성장의 도구다. 하지는 도구를 주의해서 다뤄야 한다. 도시를 다루는 방식이 정치인데 중앙정부는 하나의 문제에 하나의 답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잘못 대응하게 된다. 권한을 지방정부와 나눠야한다. 어바니즘은 패러다임의 변화다. physical design과, local finance, rules®ulation이 맞물려 조화를 이뤄야한다. 가장 취약한 것이 ‘룰’인데 보통 서방의 것을 모방에서 만들기 때문이다.”
Affordable Housing and Sustainable Living
파스칼 베런 스페인 IESE경영대 교수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곳이 ‘스마트시티’다. 기술의 적용 여부가 기준이 아니다. 교통정책에 주안점을 주고 있는 보코타 시장이 한 얘기를 빌리면 저소득층이 차를 사용하고 부자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곳이 스마트 시티다.”
알레한드로 로페즈 라미아 미주개발은행 전문가
“스마트 시티엔 스마트 시티즌이 있어야한다. 스마트 정부와 스마트 기구도. 강력한 교육 과정이 필요해진다. 기술이 적용되겠지만 우선 ‘왜 쓰레기가 문제인가’에 대한 이해가 먼저다. 간단해 보이지만 난관이 많은 과정이다. 적정한 값의 주택(affordable Housing) 공급도 일자리와 보건 등 먼저 이해해야할 주제들이 있다. 기술이 해결하지는 않는다. 콜롬비아 메데인은 (곤돌라 설치)교통적인 측면 뿐 아니라 (언덕 위 빈민촌에 집중돼 있는)저소득층에게 어떤 접근을 할 것이냐의 문제였다. 정책하는 시장과 기술가들의 경험은 다르지만 같은 수준의 문제를 고민하는 데는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Cities welcoming diversity and managing migratory flow
디오니시아 람비리 그리스 아테네 시 이민난민 정책 코디네이터
“2015년 정점이었던 난민 위기 이후 이민자의 증가 속도는 줄었지만 숫자는 계속 늘고 있다. 처음 위기보다 양상은 더 복잡해졌다. 임시적 난민, 통합적 이주자가 섞였다. 난민과 이민자 현상이 변화하고 있다는 이해가 필요하다. 다양한 인구 구성과 시너지, 통합을 생각해야 한다. 유럽의 시민단체들은 디지털 플랫폼을 만들어 물자와 서비스가 필요한 곳을 지도에 표시하고 난민들의 동선을 그린다.”
유니스 카르데나스 멕시코 이민·보안전문가
“멕시코에 2007년 이후 이민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이들이 연간 수백만명이다. 이들 중 16%가 범죄기록이 있다. 조국으로 돌아와도 국적을 증명할 수 없거나 교육이 단절된 경우도 있다. 자국을 떠나는 이민자와 함께 자국으로 돌아오는 이민자들이 생겼다는 것이 중요하다. 멕시코는 미국으로 가려는 중미 거주자들의 이민통로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증오 범죄도 있다. 남부에는 아이티 이주자들도 많지만 이들은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
킬리안 킬레인슈미트 Innovation&Plamming Agency CEO
“바르셀로나 등의 난민 위기의 해결은 리소스가 이니라 정치적 의지의 문제다. 유럽에 재원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두 도시 간 정책 결정을 통해 아테네에서 바르셀로나로 수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하지 않는다.”
Women leading tech innovation Enterpreneurship
이드나 파셔 이스라엘 스마트시티 인스티튜트 대표
“스마트 시티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안전이다. 많은 도시들이 긴축재정 때문에 최우선 아젠다가 되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도시의 소소한 기술들
초간단 강아지 임시보호소 ‘PAEKER’
애완견을 데리고 외출했다가 병원이나 식당 등 동물의 출입이 금지된 곳에 들어갈 경우 사용할 수 있는 보관소다. 비어있는 보관소에 강아지를 넣은 뒤 등록카드를 대면 문이 자동으로 잠긴다. 주인이 가진 카드를 다시 대면 문이 열린다. 곧 스마트폰으로 열고 닫을 수 있는 서비스도 준비한다고 한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 15곳 정도 설치돼 있다고 한다. 보통 건물이나 가게 주인들이 소비자들의 편의를 위해 구매해 설치하는데, 공공기관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유럽이나 미국보다 애완동물의 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한국에서도 활용도가 높아보였다.
소설자판기 ‘Short edition’
프랑스 파리 시와 출판사 쇼트 에디션이 제휴해 만들었다. 1분, 3분, 5분 중 선택해 버튼을 누르면 각 시간에 맞게 읽을 수 있는 길이의 단편소설과 에세이 등이 영수증처럼 출력된다. 시민들이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시간에 스마트폰을 보는 대신 문학을 접하는 기회를 주자는 취지에서 나온 서비스다. 버스정류장, 도서관, 시청 등에 설치돼 있다고 한다. 자판기에 들어가는 이야기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사람들이 올린 작품 중 선정된다.
‘올인원’ 가로등 ‘Shuffle’
1927년부터 조명사업을 해온 벨기에 Schreder가 만든 도심용 가로등에는 5가지 기능이 들어있다. LED 조명, CCTV, 스피커, 와이파이, 전기충전이다. 가로등은 중앙 서버에 연결돼 있어 모니터링할 수 있고 각 기능도 조정할 수 있다. 기능별 모듈은 모두 360도 회전이 가능해 위치를 정할 수 있고, 배선이나 설치를 위한 접촉점은 아랫부분에 배치돼 있다. 조명등 기둥에서 전기차 등을 충전할 수 있어 공간을 따로 만들지 않고도 충전소가 확보된다.
똑똑해진 유로 자전거 보관소 ‘Vadebike’
스페인 바르셀로나 에스파냐광장의 자전거 거치대에는 독특한 기계가 설치돼 있다. 스페인 기술기업인 Vadecity에서 만든 보관소다. 자전거의 앞, 뒤 바퀴를 모두 체인으로 감아서 채우고 안장은 헬멧처럼 생긴 보호대 안쪽에 넣어둘 수 있다. 더러워지거나 파손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연간 회원권을 끊을 수도 있고 시간당 비용을 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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