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돌진 테러가 일어난 미국 뉴욕 로워맨하튼에서 31일(현지시간) 한 시민이 사고 현장을 자전거를 끌고 지나가고 있다. 핼러윈 밤 자건거 도로 이용자들을 겨냥한 이번 테러로 8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뉴욕|UPI연합뉴스
미국의 축제 핼러윈인 31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에서 무방비 상태의 시민들을 향해 트럭을 돌진시킨 테러는 전형적인 ‘소프트 타깃’ 공격이었다. 근거지를 잃은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추종하는 각국의 ‘외로운 늑대’가 평범한 일상을 겨냥한 것도 최근 유럽에서 잇따른 테러 방식과 같았다.
뉴욕 경찰은 이날 사건 직후 체포한 용의자가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29세 남성 사이풀로 사이포프라고 밝혔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2010년 미국으로 건너와 플로리다주 탬파에 주소지를 뒀지만 최근 뉴저지에서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뉴저지주에서 픽업트럭을 빌린 그는 로어맨해튼 쪽으로 가 자전거도로를 지나는 이들을 향해 돌진했다. 이후 남쪽으로 다시 차를 운전해 한 고등학교 인근에서 학교버스를 들이받은 뒤 멈춰섰다. 용의자는 가짜 총을 가지고 트럭에서 도망치려 했으나 경찰의 총에 맞고 붙잡혔다. 그는 트럭에서 나오면서 “알라후 아크바르(알라신은 위대하다)”라고 외쳤으며 차량 주변에서 아랍어로 IS에 충성을 맹세하는 내용의 쪽지가 발견됐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테러는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오후 3시에 도심 한복판에서 일어났다. 사망자 중에는 뉴욕에 친구들과 관광을 왔던 아르헨티나 국적 5명과 벨기에 사람도 포함됐다.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은 이번 공격을 “테러 행위”로 규정하며 “무고한 시민들에 대한 비열한 행위”라고 밝혔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외로운 늑대’에 의한 테러를 언급하며 추가 위협이나 확대 범행의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수사 당국이 아직 배후로 IS를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사이포프가 테러조직과 연관됐는지 집중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그의 고향인 우즈베키스탄은 최근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지하디즘(무장공격) 문제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CNN은 사이포프가 미국에 온 이후 7년간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한 기록 등을 수사할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미국 영주권인 ‘그린카드’를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알려진 용의자가 9·11 테러의 악몽이 남아 있는 월드트레이드센터 부근에서 범행을 일으킨 데 대한 충격은 상당하다. 유럽에서 발생한 차량 돌진 테러가 미국의 심장부에서 그대로 통했다는 점도 새로운 공포다.
미국 싱크탱크 우드로윌슨센터의 부르스 호프만은 “뉴욕은 IS의 확고한 목표물”이라며 “군사적으로 패배했어도 여전히 분명한 IS의 전략”이라고 USA투데이에 말했다. 그는 “뉴욕이 뚫린다면 엄청난 심리적 타격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테러 직후 트위터를 통해 “뉴욕에서 병들고 정신적으로 정상이 아닌 자가 공격한 것 같다”며 “중동 등지에서 이슬람국가를 격퇴한 뒤 이들이 미국으로 들어오거나 다시 돌아오게 해서는 안 된다. 이미 충분하다”고 썼다. 국토안보부에 불법 이민자를 엄중 단속하는 극단적인 심사 프로그램의 강화도 지시했다.
이번 공격과 같은 ‘마이크로 테러’는 차량으로 시민을 들이받거나 돌진한 뒤 아수라장이 된 현장의 시민들을 흉기로 또 한 번 위협하는 공격이다. 이슬람극단주의 추종자들이 자신의 고향이나 뉴욕·파리 등 도심에서 벌이는 손쉬운 테러 전술이 됐다.
혼자서 범행을 준비하는 ‘외로운 늑대’나 폭발물·무기에 접근하기 힘든 테러리스트들이 사전에 훈련이나 계획 없이도 범행 기회를 만들 수 있다. 공격이 행해지는 장소도 무작위가 아니라 사상자가 극대화될 수 있는 곳이 선택된다. 이날 테러도 낮시간 자전거도로가 아닌 핼러윈 축제가 예정돼 있던 밤시간대 거리를 노렸다면 더 많은 사상자가 나왔을 가능성도 있다.
지난 8월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지에서 터진 연쇄 차량테러와 지난해 7월 86명이 목숨을 잃었던 프랑스 니스 트럭테러로 마찬가지였다. 영국에서도 런던브릿지에서 관광객, 시민들을 상대로 한 차량 돌진과 흉기공격에 이어 북부 핀스버리파크 모스크 인근에서 무슬림을 대상으로 한 차량 테러도 같은 방식이었다. 이날 공격도 낮시간 자전거 도로가 아닌 핼러윈 축제가 예정돼 있던 밤시간대 거리를 노렸다면 더 많은 사상자가 나왔을 가능성도 있다.
또 직접적 피해가 아니더라도 오는 5일 뉴욕마라톤대회나 이달 내내 진행되는 추수감사절 행사가 테러 위험을 가진 공포의 대상으로 바뀌는 효과도 노렸을 것으로 보인다.
차량 돌진과 흉기 테러를 막기 위해 대도시에선 곳곳에 볼라드를 설치해 공격 위험을 막고 있다. 그러나 최근 자동차 통행을 줄이는 대신 인도를 넓히고, 보행자 전용 도로를 확대하는 도시들이 늘어나면서 ‘표적 공간’이 많아진 것은 딜레마이기도 하다.
지난 5월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술에 취한 운전자가 보행로로 차량을 몰아 1명이 숨진 사건처럼 테러가 아닌 ‘묻지마 공격’에도 노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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