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 ‘어마’로 전력 공급이 끊긴 미국 플로리다 네이플스의 한 슈퍼마켓에서 13일(현지시간) 상점을 찾은 소비자가 핸드폰 불빛으로 진열된 물건을 비춰 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을 잇따라 휩쓴 허리케인 ‘하비’와 ‘어마’는 사그라들었으나 폭풍이 지나간 자리는 정전과 연료 부족 탓에 고통받고 있다. 휴스턴과 플로리다 등 풍요로움으로 대표되는 미국 남부 도시들도 기후변화가 부른 ‘역대 최대급 폭풍’ 앞에선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AP통신 등은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북부 할리우드힐에 위치한 한 요양원에서 8명이 숨졌다고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사망자는 70~90대 노인들로 3명은 숨진 채로 발견됐고, 5명은 어마가 지나간 뒤 환자들을 병원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할리우드힐 경찰 당국은 “건물이 봉쇄돼 있었고 2층은 매우 더웠다”고 밝혔다. 이 양로원은 어마가 도시를 강타하며 전기가 끊겼고, 비상발전기마저 작동하지 않아 에어컨이 꺼지면서 실내 온도가 섭씨 30도를 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은 이런 정황과 사인의 관련성을 수사 중이다.
양로원에 전력을 공급하는 플로리다파워앤드라이트(FPL)는 이 시설이 우선 복구 대상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500만곳이 가입한 플로리다 최대 전기 공급업체인 FPL은 지난 10일 어마가 상륙하면서 440만곳의 전력 공급을 차단했다. 이틀 뒤 병원 등 필수시설을 중심으로 절반 가까이 전기가 복구됐지만 여전히 200만곳 이상이 정전 상태다. 전부 회복되려면 앞으로 일주일 이상 걸릴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어마로 600만곳 이상 정전 피해를 입었는데 이 중 480만곳이 플로리다에 집중됐으며 조지아(93만곳)·사우스캐롤라이나(14만곳)도 영향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카테고리 4등급의 세력이었던 어마가 강타한 플로리다는 정전뿐 아니라 가솔린 부족도 심각하다. USA투데이는 가장 심각한 게인즈빌의 경우 이날 현재 주유소 63%가 기름이 바닥났다고 전했다. 마이애미도 62%의 주유소에 재고가 없다. 피난을 떠났다가 이번 주말부터 속속 집으로 돌아올 것으로 보이는 주민들의 2차 피해가 우려되는 부분이다.
플로리다주는 어마가 접근하자 6개 이상의 카운티에 소개령을 내렸다. 600만명의 ‘엑소더스(대탈출)’가 시작되면서 주유소가 북새통을 이뤘고 가솔린 재고는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업체들은 이미 일주일 전부터 추가 물량 확보에 나섰지만 반도 지형인 플로리다는 연료의 97%를 멕시코만을 통해 들여온다. 특히 물량의 대부분을 텍사스 정유공장에서 받는다.
그러나 이 단지는 보름 전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컸던 허리케인 하비가 휩쓸고 간 상태였다. 플로리다 석유·편의점협회는 “뉴욕, 필라델피아,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등 물량을 보낼 수 있다고 한 곳에선 모두 받았지만 하비와 어마의 상륙 시기가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비로 통제력을 상실한 휴스턴 일대 석유화학공단이 회복될 때까지 플로리다의 연료 수급도 완전히 정상화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허리케인 피해에 대해 “미국의 4번째 도시로 성장하며 ‘무한한 도시’로 상징됐던 휴스턴의 성장 모델의 한계를 보여줬다”고 보도했다.
이 단지 내 화학물질을 임시보관한 컨테이너가 냉장시설에 전기 공급이 끊겨 폭발하면서 독성물질 유출 우려도 커졌다. 하비와 어마 앞에서 무력해진 도시 상황은 기후변화로 거대 폭풍이 일상화될 것이라는 경고와 맞물려 석유 등 에너지 공급에 있어 국가 역할의 취약성, 제한된 자원에 대한 의존성을 보여준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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