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쿠르드와 아랍계가 주축이 된 시리아민주군(SDF)이 17일(현지시간) 탈환에 성공한 시리아 락까 시내 모습. 이슬람국가(IS)가 2014년부터 장악한 이 도시는 3년여만에 폐허로 변했다.AFP연합뉴스
이슬람국가(IS)의 상징적 수도였던 시리아 락까는 ‘시리아의 교차로’로 불렸던 도시다. 그리스, 로마, 비잔틴시대를 거쳐 오스만 제국의 무역기지였고, 현대에 들어와선 면화 산업의 중심지였다.
특히 IS가 이곳을 수도로 삼은 데는 압바스왕조의 역사가 있다.
<아라비안 나이트>에도 일화가 다수 전해지는 아바스 왕조의 5대 칼리프(왕)인 하룬 알 라시드는 바그다드에서 락까로 건너와 10여년을 통치하며 이슬람 문화의 황금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북아프리아에서 동아시아로 전진하기 위해 바그다드에서 락까로 옮겨와 796~809년까지 통치했다.
현대 이슬람 전성기의 부활을 목표로 한 IS가 과거의 영광을 꿈꾸며 락까를 선택한 것이다. IS의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는 2014년 락까를 점령하고 몇 달 뒤 이라크 모술에서 칼리프 국가 선언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게릴라전을 벌여왔던 IS가 영토 점령 전술을 쓰기 시작한 것도 락까 함락 이후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370㎞ 떨어진 락까는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시아파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에 맞선 수니파 반정부 시위의 전략적인 거점이 됐다. 2012년 말부터 정부 장악력이 약화됐고, 이슬람 근본주의 반군 아흐라르 알샴과 수니파 반정부 자유시리아군(FSA) 등이 세를 키웠다. 2013년 알카에다 지부 알누스라전선이 사실상 도시를 통제했고, 2014년 IS 장악지가 됐다.
IS의 강력한 샤리아(이슬람율법) 통치를 받은 지난 3년간 락까의 삶은 ‘공포’ 그 자체였다. 남성은 너무 긴바지를 입거나 수염이 짧으면, 여성들은 얼굴을 완전히 덮지 않으면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 전쟁 포로는 어린이를 포함해 성노예로 팔기도 했다. 인질 참수 동영상을 찍었던 ‘악마의 교차로’ 등 공개 처형이 의도적으로 이뤄진 곳도 락까다. 세금을 걷고 화폐를 찍어내며 여권을 발행하는 행정의 중심지였으나 파리·브뤼셀 테러를 계획하고, 지하드 전사를 모집하는 IS 활동의 중추였다.
지난 7월 이라크 모술 함락에 이어 17일(현지시간) 시리아쿠르드와 아랍계가 주축이 된 시리아민주군(SDF)이 락까를 탈환하면서 IS의 칼리프 국가 영토는 종말을 맞았다.
문제는 IS가 쫓겨난 지금부터다. 수니파 쿠르드, 시아파 무슬림, 기독교 등 다양한 민족 약 30만명이 모여 살던 시리아 6번째 도시 락까는 7년째 접어든 내전과 3년이 넘는 IS 점령을 겪으며 완전히 무너진 상태다. 주민들 대부분은 도시를 탈출해 난민캠프 등지에서 국제기구의 지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시아파의 우와이스 알 카라니 모스크, 아르메니아 정교회 등은 수니파 종교시설을 제외한 유적지는 전부 파괴됐다.
탈환에 주도적 역할을 한 SDF가 임시 통치에 들어갈 것으로 보이지만 락까의 정상화는 요원하다.
시리아 정부군이 지난해 말 수복에 성공한 알레포는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도시 기능이 마비 상태다. 정부가 재건 작업을 시작했지만 100만명이 일하던 공장들 대부분은 파괴됐고 남아있던 곳들도 약탈당했다. 전력망도 일부 복구됐지만 전기는 턱없이 부족하다.
주민들은 비싼 디젤 발전에 의존 중이다. 특히 식수는 전기로 펌프를 돌려야만 구할 수 있다. 로이터는 알레포에서 방직기 5대를 일주일 돌리려면 25만 시리아 파운드(약 54만원이)가 든다고 보도했다. 내전이 일어나기 전엔 방직기 30대를 운영하는데 주 10만 파운드면 충분했다.
지방 정부의 기반도 붕괴상태다. 산업 기반을 되살릴 공무원도 부족한데다 국경을 넘으려면 검문소 군인들이 뇌물을 요구하기도 한다.
정부가 통제하는 알레포의 상황이 답보 상태인데,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SDF의 통치는 불확실성이 더 크다.
미군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쿠르드민병대(YPG)가 주축이 된 SDF는 2015년 10월 ‘세속적이고 민주적인 연방국 시리아’를 표방하며 조직됐다. 미 국무부에 따르면 쿠르드계가 40%, 수니파 중심의 아랍계가 60%이며 투르크멘·아르메니아·체첸 출신까지 포함돼있다. 터키 국영방송 TRT는 SDF “락까 (함락)작전을 위해 꾸려진 조직”이라며 “미국은 (IS 격퇴에 큰 역할을 한) YPG의 자치권을 약속한 상태이나 YPG는 더 확실하고 영구적인 영토 지배를 보장받기 원한다”고 전했다. SDF가 락까에 이어 동부 데이르에조르에서 IS 격퇴 작전을 준비하는 것도 이런 취지라는 것이다.
하지만 YPG의 영향력을 미국이 공식화할 경우 자국 내 쿠르드의 세력 확대를 경계하는 터키의 반발이 예상된다. 터키 정부는 YPG가 미국뿐 아니라 유럽연합(EU)·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도 테러단체로 지정한 터키 무장조직 쿠르드노동자당(PKK)의 시리아 지부라고 주장하고 있다.
CNN은 “러시아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 시아파 시리아 정권 하에서 미국 지원을 받는 수니파 (지방)정부의 성공은 비현실적”이라며 당분간은 SDF가 통제하겠지만 “락까는 시리아 정부, 쿠르드, 원주민 세력 등 2~3개 경쟁 주체들 사이에 둘러싸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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