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석달 만에 지지율이 추락하며 ‘허니문’이 끝나버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부인의 역할 논란으로 싸늘한 민심을 확인하고 있다. 부인의 공식지위 부여와 관련, 합의 없는 권위주의적 국정 추진으로 가뜩이나 악화된 여론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된 셈이다.
2주 전 청원사이트(Change.com)에 올라온 프랑스 퍼스트레이디 공식지위 반대 청원은 7일 현재(현지시간) 19만명이 서명해 목표치(20만명) 달성을 앞두고 있다.
프랑스는 미국과 같은 공식적인 ‘퍼스트레이디’ 지위가 없다. 대통령의 부인(Premiere Dame)으로 외국 일정 등의 공식석상에 함께 참석하는 수준이다. 적극적인 퍼스트레이디 역할에 대한 저항감은 관행에 맞지 않는다는 정서적 이유도 있지만 추가로 들어갈 막대한 세금이 원인이다. 브리지트 트로뉴가 공식 직함을 갖게 되면 사무실과 직원, 경호인력 등을 위해 연 45만유로(약 6억원)의 별도 예산이 필요하다.
올해 대선에서 프랑수아 피용 공화당 후보의 부인 보좌관 채용 논란 후 마크롱 정부는 공약대로 지난달 말 상·하원 의원과 장관 등의 배우자나 자녀의 보좌관 채용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대통령은 이 법의 대상이 아니지만 부인을 등용하는 모양새는 반부패 움직임에 역행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고 도이체벨레가 보도했다.
마크롱은 선거 유세 때 “당선된다면 브리지트 트로뉴가 역할과 자리를 갖고 함께할 것”이라며 지금까지의 대통령 부인과는 다를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전직 교사였던 만큼 교육이나 청년과 관련한 영역에서 일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이번 논란으로 여론이 악화되면 석달간 급락한 마크롱의 지지율 하락은 더 속도가 붙을 수 있다. 지난 5월 대선에서 66%의 지지율로 당선된 그에 대한 기대감은 지난주 입소스(Ifop)와 유고브(YouGov) 등의 여론조사에서 36~54% 수준에 그쳤다.
현지 언론들은 1995년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 이후 22년 만에 가장 빠른 급락세라고 전했다.
퍼스트레이디 지위 부여에 반대하는 여론에는 마크롱이 복지예산 대폭 삭감, 노동규제 완화, 부유층 감세 등의 정책을 밀어붙인 데 대한 반감이 깔려 있다. 마크롱은 프랑스 사회의 구조개혁을 천명하며 지방정부 교부금 3억유로를 감액하고, 학생들의 주거비와 고등교육·연구분야 지원도 대폭 감축해 반발을 샀다.
에마뉴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거만한 모습을 풍자해 로마 신화의 ‘주피터’(제우스)로 그린 리베라시옹의 7월3일자 1면.
‘태양왕’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권위주의적 성향도 문제다. 대기업과 부유층의 세금을 줄이고 은퇴자의 부담을 늘린 조세개선안과 노동을 자유시장에 넘기는 노동개혁도 사회적 합의 없이 이뤄졌다는 비판을 낳았다. 특히 국방예산 삭감 과정에서의 논란으로 ‘경험은 없고 권력욕만 있는’ 지도자라는 이미지가 더 굳어졌다.
폴리티코유럽은 최근 마크롱을 ‘자유주의 독재자(liberal strongman)’라고 비판했다. 거만한 모습을 풍자해 로마 신화의 ‘주피터’(제우스)에서 따온 ‘베르사유의 마뉘피테르(ManuJupiter·마크롱+주피터)’라는 별명도 붙었다. 이달 휴가가 끝나는 대로 노동총동맹(CGT) 등 노동계에선 9월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마크롱이 이번 파업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국정운영 방향과 동력 확보에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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