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만 따면 한끼 반찬이 되는 통조림의 대명사 스팸이 5일(현지시간) 80주년을 맞았다. 1937년 미국에서 출시된 이후 전 세계에서 80억개가 판매됐고, 지금도 하루에 스팸으로 소비되는 돼지가 2만 마리에 달한다. 나트륨과 보존제, 방부제 문제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지만 오랜 세월 식탁에 올라온 역사만큼이나 식생활뿐 아니라 문화에도 녹아든 식품이 됐다.
사진 The Register
스팸을 낳은 것은 미국의 대공황이다. 가공육 생산업체인 호멜은 미국인들이 잘 먹지 않는 돼지 목심을 처리하기 위해서 고기와 햄에 소금과 설탕, 전분과 아질산나트륨을 버무려 통에 넣은 스팸을 발명했다. 시사주간 타임은 “스팸은 ‘원치 않는 이메일’을 나타내는 단어로 쓰이기 전에 이미 ‘원치 않는 고기’를 성공적으로 다시 포장한 단어였다”고 보도했다.
미네소타주 오스틴에 있는 호멜의 스팸박물관에는 ‘스팸’의 어원이 적혀있다. 제품 이름 공모전에서 경영진 가족이 ‘양념된 햄(spiced ham)’을 조합한 ‘스팸(Spam)’을 응모해 뽑혔다고 한다. 그러나 ‘남은 고기(spare meat)’나 ‘목심과 햄(shoulders of pork and ham)’의 약자라는 해석도 있다.
미네소타주 오스틴의 스팸박물관. Hormel Foods Corporation _ SPAM Museum
출시 직후 회사 측은 ‘조리할 필요가 없고 저렴한 고기’라며 대대적으로 광고했지만 냉장하지 않은 고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저항은 컸다. 이를 반전시킨 것은 전쟁이다. 캔에 넣은 고기는 보관과 수송이 쉬웠고, 2차 세계대전 기간에만 1억개 이상이 미군 식량으로 투입됐다. 또한 군대를 통해 세계로 퍼져나갔다.
하와이와 괌, 필리핀에서 스팸 소비가 많은 것은 미군이 주둔하면서 확산됐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스팸을 가장 많이 먹는 하와이에선 밥 위에 구운 스팸을 얹고 김으로 두른 스팸초밥(스팸무스비)이 유명하다. 전쟁 중 어업이 금지되자 하와이에 살던 일본인들이 고기 대신 보급품인 스팸으로 초밥을 만든 것에서 유래한다.
하와이의 스팸무스비. spam.com
미국이 연합군 원조를 시작하면서 1941년 영국에도 스팸이 들어갔고, 1차 대전 때부터 전쟁식량을 대표해온 ‘콘비프’의 자리까지 위협했다. 연합군을 통해 러시아에도 스팸이 흘러갔다. 당시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스팸이 없었으면 우리 군에 식량을 대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도 훗날 스팸이 “전쟁 별미였다”고 말했다. 전쟁을 통해 아시아에도 공급된 스팸은 쌀밥과 함께 먹는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스팸을 가장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나라다.
2차 대전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후 폭발적으로 생산이 늘어난 스팸은 1950년대 온갖 냉동식품의 등장 속에서도 살아남았고, 1959년 10억번째 제품을 생산했다. 1963년부턴 미국 전역의 학교 급식 메뉴가 됐다. 지금까지 6개 대륙 100여개국에 진출했지만 돼지고기를 먹지않는 이슬람 문화권인 중동과 북아프리카만큼은 뚫지 못하고 있다.
사진 Amazon.com
근래에는 지방과 나트륨, 방부제 함량에 대한 우려 때문에 ‘저소득층 식품’이라는 인상이 짙어졌다. 스코틀랜드에선 빈곤층 지역을 ‘스팸 마을’이라 부른다. 영국 유명한 희극단 ‘몬티 파이톤’은 1967년 뮤지컬에서 무엇을 주문하든 스팸만 나오는 식당을 등장시켜 “끔찍하지만 불가피한 음식”으로 묘사했다. 이런 이미지는 무차별 전송되는 광고성 이메일을 통칭하는 ‘스팸 메일’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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