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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에서 무기로 ‘천연가스 패권’ 시대

by bomida 2017. 7. 7.

주변국들의 잇단 단교로 봉쇄된 카타르가 고립 국면에서 ‘천연가스 카드’를 꺼냈다. 배경엔 가스관의 복잡한 구도만큼이나 얽힌 지정학적 역학이 숨어 있다. 온실가스 배출이 적어 대체연료로 떠오른 천연가스는 국가의 수입뿐 아니라 안보를 위한 중요한 전략무기다. 

카타르 국영석유회사 카타르페트롤리엄(QP)의 사드 알카비 최고경영자(CEO)는 4일(현지시간) 빠르면 5년 내 천연가스 생산량을 현재 연간 7700만t에서 1억t으로 증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며 “천연가스 시장에서 주도권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알자지라 등이 보도했다.


천연가스 생산단가가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카타르의 증산 결정은 단순한 사업 확대를 넘어서는 의미를 갖는다. 특히 북부 연안의 세계 최대 가스전인 노스돔(이란 쪽은 사우스파르) 생산도 20% 늘릴 계획인데, 이란과 공유하는 이 가스전의 추가 개발은 양국 합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는 이란과의 관계 단절을 요구한 걸프국들에 보내는 메시지인 셈이다. 카타르는 단교를 선언한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계약에 따라 천연가스 공급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알카비 CEO는 “(주변 정세 악화로) 생산이 절대 중단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지만 봉쇄에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카타르가 유럽, 아시아와 가깝다는 점에서 최근 가스 생산량 증가에 속도를 내고 있는 미국, 호주 등 경쟁국에 미치는 파장도 있다. 걸프 지역 내 소국인 카타르의 속셈은 국제사회에서 독자적 역할을 할 수 있게 한 천연가스 주도권을 강화해 영향력을 더 키우겠다는 것이다. 

천연가스는 개발에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데다 가스관을 통해 공급하는 특징 때문에 생산국이 수입국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는다. 이 때문에 대부분 수입국의 저장능력과 상관없이 의무적인 수입물량을 정하거나 수입국의 재판매를 금지하는 조건으로 계약이 이뤄진다. 수입가격 역시 국가별로 천차만별이다.

이를 ‘에너지 패권’으로 사용하는 나라가 세계 최대 천연가스 매장량(47조㎥)을 보유한 러시아다. 특히 국영기업 가스프롬이 세계 생산량의 17%를 담당하며 가스프롬의 가스관은 유라시아 전역을 관통한다. 인접국 폴란드·슬로바키아 등은 자국에서 쓰는 가스의 80% 이상을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유럽 역시 수요의 30%를 러시아에서 조달한다. 러시아는 주변국들과 갈등이 생길 때마다 가스관 ‘밸브’를 무기로 사용해왔다. 하지만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한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유럽연합(EU)이 경제 제재와 함께 북미산 셰일가스 수입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러시아 가스 의존도를 낮추고 신재생에너지를 적극 도입하면서 상황은 역전됐다. 

러시아가 중국 등 아시아로 눈을 돌린 것도 이와 맞물려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한 후 양국의 경협을 언급하며 가스관 건설이 계획대로 진행 중임을 강조했다. 러시아는 30년간 연 300억㎥의 천연가스를 공급하기 위해 3000㎞에 달하는 가스관 ‘시베리아의 힘’에 550억달러를 투자할 예정이다. 또 서부 시베리아와 중국 서부 지역을 잇는 가스관 건설도 증국과 조율 중이다. 독일에 이어 두 번째 가스 ‘큰손’으로 떠오를 중국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것이다.

천연가스 대국 러시아가 견제하는 또 다른 곳은 미국이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7일부터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동유럽 국가들을 상대로 천연가스 ‘세일즈’를 시작한다. G20 직전 폴란드를 찾아 아드리아해와 발트해, 흑해 연안국의 ‘3개 바다(Three Seas)’ 정상회의에 참석해 가스 수입시설, 가스관을 확대하는 계획을 지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는 “트럼프의 행보는 미국산 천연가스를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려는 것”이라며 “에너지를 무기나 협상카드로 사용해왔던 러시아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40년간 대부분의 생산량을 자국 내 소비만 해왔던 미국은 셰일가스 개발 기술이 발달하면서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2014년 수출량을 늘리기 시작했다. 수입망 다각화에 나선 유럽은 2020년이면 미국산 천연가스 소비비중이 러시아산의 절반 수준까지 따라잡을 것으로 보인다.

천연가스를 두고 치열한 경쟁구조가 형성되면서 안보 중심의 시장이 점차 가격 중심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카타르에 앞서 호주와 미국이 주도한 공급 증가는 수요 확대를 훨씬 앞서는 상황이다. 아시아의 천연가스 값은 회복세를 보였던 2014년의 절반 수준이 됐고 올 들어서만 30% 가까이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이미 생산업체들이 구매 국가들에 재판매가 가능하고 최종 목적지도 제한하지 않는 계약을 제안하고 있다며 자유로운 거래가 가능해질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