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의 악명 높았던 독재자 마누엘 안토니오 노리에가가 83세로 사망했다. 파나마 정부는 올 1월 양성 뇌종양 판정을 받고 가택연금 상태로 지내왔던 노리에가가 전날 숨졌다고 30일(현지시간) 밝혔다. 후안 카를로스 바렐라 파나마 대통령은 트위터에 “노리에가의 죽음으로 우리 역사의 한 장이 막을 내렸다”는 글을 올렸다.
1934년 회계사와 가사도우미 사이의 혼외자식으로 태어난 노리에가는 파나마시티에서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페루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파나마 군에 들어가 고속 진급을 했으며 오마르 토리호스 장군의 핵심 참모가 됐다. 1968년 토리호스가 쿠데타에 성공하자 군 정보부 사령관이 되면서 권력자로 급부상했다.
1981년 토리호스가 비행기 추락사고로 숨지자 대장으로 진급했고, 1983년부터 군 최고사령관에 올랐다. 이때부터 사실상 파나마의 최고 권력자가 됐다. 토리호스의 사고 역시 노리에가의 음모였다는 설도 있다.
노리에가는 영욕이 극명하게 엇갈린 극적인 인생을 살았다. 권력을 쥐고 있는 동안 그는 미국을 등에 업고 반대세력을 억압하면서 독재권력을 휘둘렀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노리에가 정권을 통해 남미 좌파들과 민족주의 진영의 정보들을 입수하며 밀월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미국으로 마약을 밀수출한 데다 부정부패가 극심해 결국 미국마저 등을 돌렸다.
1988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마이클 듀카키스 후보는 조지 H W 부시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와 노리에가의 커넥션을 맹공격했고, 미국의 부도덕한 파나마 개입이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그해 노리에가는 마약밀매 혐의로 미국 법원에 제소됐으며 이듬해 파나마를 침공한 미군에 붙잡혀 미국으로 압송됐다. 외국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마약밀매, 돈 세탁 등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아 2010년까지 감옥에서 17년을 보냈다.
그 후에는 프랑스로 인도돼 마약 카르텔 자금세탁 혐의로 6년형을 받았다. 2011년 파나마에 돌아왔으나 이미 자국 법원에서 궐석재판을 통해 살인·횡령·부패 등의 혐의로 징역 60년형이 내려진 후였다. 그는 뇌종양 판정 전까지 엘 레나세르 교도소에 수감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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