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선이 중도 ‘앙마르슈(전진)!’의 에마뉘엘 마크롱(39)과 극우 민족전선(FN)의 마린 르펜(48)의 대결로 압축됐다.
사회당과 공화당 후보가 자취를 감추고 ‘비주류’ 정당 후보 중에서 대통령이 나오게 되면서 40여년간 이어온 프랑스의 좌우 사회당과 공화당의 양당 체제는 저물게 됐다. 사실상 ‘정당이 사라진 대선’으로 치러지게 된 셈이다. 영국 브렉시트,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과 맥을 같이하는 기성 정치권의 몰락이 이번에도 두드러졌다.
23일(현지시간) 프랑스 내무부에 따르면 대선 1차 투표에서 마크롱이 23.8%, 르펜이 21.4%로 1·2위를 차지해 결선투표에 진출하게 됐다.
공화당의 프랑수아 피용과 좌파연합전선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프랑스 앵수미즈)’의 장 뤼크 멜랑숑은 각 19.9%, 19.6%를 차지했다. 1위와 4위의 득표율 차이가 4.2%포인트에 불과했다. 사회당의 브누아 아몽은 6.3%에 그쳤다.
마크롱과 르펜은 오는 5월7일 치르는 결선투표에서 유럽연합(EU) 가입 유지와 탈퇴, 자유무역과 보호주의, 개방과 폐쇄 등 사안별로 대립된 쟁점을 두고 맞붙는다. 현재로선 마크롱이 우세하다. 1차 투표에선 두드러진 후보 없이 중도, 극우, 극좌 진영이 표를 나눠 가졌으나 결선에선 상황이 다르다.
양대 정당을 등에 업고 출마했으나 군소후보로 전락해버린 피용과 아몽을 비롯해 현 사회당 정부의 베르나르 카즈뇌브 총리와 공화당 소속 알랭 쥐페 전 총리 등이 잇따라 마크롱 지지를 선언하며 극우파 르펜을 막기 위한 움직임에 나섰다.
그동안 두 사람이 결선투표에 오르는 것을 가정한 여론조사에서는 마크롱이 60% 이상 득표하며 승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지만 ‘엘리트 정치’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막판에 르펜 쪽으로 결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마크롱은 결선 진출이 확정된 뒤 지지자 집회에서 “국가주의자들의 위협에 맞서 애국자들의 대통령이 되겠다”며 “프랑스와 유럽의 희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ㆍ보수·사회당, 제5공화국 출범 후 처음으로 결선자 못 내
ㆍ마크롱으로 결집 분위기…‘멜랑숑 표심’이 변수 될 수도
프랑스 대선은 ‘중도’와 ‘극우’의 맞대결이 됐다. 여론조사에서도 예상됐던 결과지만 1959년 제5공화국 체제가 출범한 이후 처음으로 주류 양대 정당이 결선투표자를 내지 못한 꼴이 됐다. 누가 당선되든 프랑스의 새 정치구조가 시작되는 것이다.
23일(현지시간) 프랑스 내무부가 발표한 대선 1차 투표 결과를 보면 ‘앙마르슈(전진)!’의 에마뉘엘 마크롱(39)과 극우 민족전선(FN)의 마린 르펜, 공화당의 프랑수아 피용, 좌파연합전선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프랑스 앵수미즈)’의 장 뤼크 멜랑숑은 모두 득표율이 20% 안팎이었다. 중도와 극우, 우파, 극좌가 비슷하게 표를 나눠가진 셈이다.
선거 직전인 20일 파리 샹젤리제 한복판에서 일어난 총격 테러가 르펜에게 유리한 변수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으나 큰 영향을 미치진 못했다.
■‘극좌’ 멜랑숑 지지자들은 어디로
결선 후보가 정해지자 보수 우파부터 사회주의 좌파까지 모두 중도 마크롱을 중심으로 결집하고 있다. ‘1차 투표에서 선택하고 결선에서 제거한다’는 프랑스 선거답게 르펜을 막기 위해 중도 후보를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등 유럽 정치인들도 ‘프렉시트’를 막기 위해 일제히 마크롱에게 힘을 실어줬다. 독일 총리실은 “마크롱이 강한 EU와 사회적 시장경제 공약으로 성공한 것은 바람직하다”며 결선투표까지 2주간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고 응원했다. 그동안 마크롱과 르펜의 양자 대결을 가정한 여론조사에서는 마크롱이 우세했다. 23일 입소스 조사에서는 마크롱의 지지율이 62%로 르펜의 38%를 압도했다. 해리스인터랙티브 조사에서도 마크롱이 64%로, 36%를 얻은 르펜을 크게 앞섰다.
관건은 멜랑숑에게 향했던 20% 가까운 표심의 방향이다. 멜랑숑은 1차에서 탈락한 다른 후보들과 달리 아직 마크롱 지지를 선언하지 않았다. 시장경제를 중시하고 유럽통합을 외치는 마크롱과는 가치관이 다른 까닭이다. 표면적으로 ‘극좌’ 멜랑숑과 ‘극우’ 르펜은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오히려 공유하는 가치가 많다. 두 사람 모두 러시아와의 극한 대립을 피하자고 말한다. EU와 유로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탈퇴를 주장하는 것도 공통점이다. 보호무역을 지지하는 점도 마찬가지다.
멜랑숑 지지자들이 결선에서 르펜을 찍을 경우 마크롱을 흔들 수도 있다.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버니 샌더스가 민주당 후보에서 탈락하자 그의 지지자들이 힐러리 클린턴 대신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지지로 갈아탔던 것과 같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 양대 정당 ‘사망선고’
영국 브렉시트 투표 때나 미국 대선 때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대선에서도 좌우 대립이 아니라 개방을 지지하는 중도주의와 반세계화·국가주의 진영으로 나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세계대전 이후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준 합의 체제가 붕괴된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번 프랑스 대선은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기존 양대 정당에는 ‘사망선고’가 아닐 수 없다. 영국 가디언은 “극우 르펜이 결선투표에 올랐다는 것보다도 1958년 ‘드골 체제’ 이후 보수당(공화당)과 사회당에서 대통령이 나오지 않게 됐다는 것이 충격”이라고 보도했다.
1차 투표에서 사회당 브누아 아몽의 지지율은 6%대에 머물렀다. 1969년 가스통 드페르 후보가 기록했던 5.01% 이후 최악의 성적이다. 후보의 카리스마가 부족한 탓도 있지만 프랑수아 올랑드의 현 정권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 선거 경험은 전무한 데다 당을 창당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마크롱의 ‘엘리제궁 입성’이 점쳐지고 극단주의자로 치부됐던 르펜이 결선투표에 오른 것은 기존 정당들이 설 자리가 없어졌음을 보여준다. AP통신은 “마크롱은 이름을 알린 지 고작 3년 된 정치 신인”이라며 “그는 (대통령이 되면) 기업부터 시민사회까지 새로운 인물들로 정부를 꾸려 정치 지형을 바꿔놓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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