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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이슈/서울이야기

덕수궁 수문장 교대의식 18년째…외국인 관광객 인기 코스

by bomida 2014. 10. 25.



“입취위”,  “행순”… 18세기 한양 궁문으로 시간 여행
<모두모여>      <앞으로 가>


조선의 도성인 한양에 28번 종각 타종소리가 울린다. 통금이 시작되는 인정(人定·오후 10시쯤)이다. 순라군(巡邏軍)들이 궁궐 밖으로 나가 인적이 끊긴 도성 구석구석을 살핀다. 어렴풋이 동이 트는 파루(罷漏·오전 4시쯤), 통금 종료를 알리는 종이 33번 울리면 백성들은 새로운 하루를 열고, 밤새 순찰을 떠난 금군들은 다시 궁으로 향한다.

순라대가 궁 앞에 도착하자 승정원 주서(注書)가 왕의 승낙을 받은 군호(암호)를 수문장과 수문군에게 일러준다. 수문군이 문 앞으로 나가 신원을 확인하는 암호를 묻는다. 암호가 맞으면, 개문·폐문으로 쪼개진 부신(符信)을 서로 맞춰보고 신분을 나타내는 순장패를 꺼내 임금의 군대인 것을 확인한다.

모든 절차가 끝나면 궁문 열쇠를 가지고 있는 사약이 약시함을 열어 자물쇠를 수문장에게 건네 궁문을 열고 순찰을 마친 순라군이 입궐한다. 밤새 문을 지켰던 수문군은 다음 순번 군대와 교대를 하는데 확인 절차는 순라군과 동일하다.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지난 16일 열린 수문장 교대의식에서 조선시대 군사복과 기수복을 입고 궁시를 찬 출연진들이 월도와 수문장기를 받쳐들고 교대 행렬을 만들고 있다. 뒤쪽의 구군복을 입은 수문장들은 환도를 거꾸로 차고 있는데, 임금이 있는 궁에서 칼을 다루는 예법이었다고 한다. | 서성일 기자


■ 조선 후기 영·정조 때 고증에 상상력 더해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이뤄지는 왕궁수문장 교대의식은 조선시대에 궁문 앞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인 팩션(Faction·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임)이다. 실제 조선의 의식을 그대로 재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시절 매일 반복됐을 교대절차에 실존 관직과 인물을 끌어들여 재구성한 것이다.

대한문 앞에서 18년째 열리는 수문장 교대식은 서울의 대표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다. 비나 눈이 퍼붓지 않는 이상 하루 세 차례 진행된다. 삼십분 남짓 진행되는 교대식을 보려고 지난해 116만5000명이 다녀갔다. 이중 외국인(49만7000명)이 40%가 넘는다. 연간 1000번 넘게 이뤄지는 교대식에 들어가는 21억원 정도의 비용으로 관광객 유입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수문장 교대식은 1996년 서울시가 서울의 볼거리를 마련한다는 취지에서 기획했다. 전통문화 전문 업체인 예문관이 첫 사업을 따냈고 역사학자, 박물관장 등 전문가 7명이 고증에 들어갔다. 1925년부터 2년간 창덕궁 수위를 맡았던 노유상씨(1996년 당시 94세)가 기억하는 조선 보병대의 교대 대형과 의식도 채록했다.


수문장이 처음 생긴 것은 조선 예종 1년(1463년)으로 추정된다. 그 전에는 중앙군인 오위의 호군이 궁궐을 지키는 일을 담당했다. 서울시는 두 차례 전란 이후 수문장 제도가 완비되는 18세기 조선 후기 영·정조 시대를 수문장 행사의 배경으로 잡았다.이때 작성된 <경국대전>과 <속대전>, <대전통편>, <대전회통>의 병전 항목과 <민기요람>에서 성문을 맡은 금군 관련 내용을 찾아 교대식의 틀을 잡았다.

교대식에 사용되는 말과 구호들을 보자. “입취위(立就位)”는 ‘모두 모여’, 나각을 길게 불면 정렬하라는 뜻이다. “행순(行巡)”은 ‘앞으로 가’. “향우전(向右前)”을 외치며 깃발로 지시를 하면 오른쪽으로 향한 뒤 앞으로 행진한다. “향좌우립(向左右立)”은 양측 수문군이 서로 마주보라는 의미다. 수문장팀이 새롭게 만든 말도 있다. “출(出)”이라고 외치면 발을 구르면서 “하나, 둘, 셋, 넷”이라고 구령을 붙인다. 걸어가는 군대의 간격과 발을 맞추기 위한 것이다.


지난 16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수문장 복장을 갖춰 입은 일본인 관광객 야마모토 마사유키씨(왼쪽)가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서성일 기자


■ 수문장 체험만 3번째 일본인 “이젠 익숙”

지난 17일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한쪽에 마련된 수문장팀 대기실 앞에 일본 오사카에서 온 야마모토 마사유키(51)가 환도를 들고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다. 실제 수문장 역할을 맡은 출연자가 교대식 순서를 설명하면 일본어 통역을 맡은 직원이 해설을 해준다. 수문장끼리 마주보고 차고 있던 칼을 머리높이로 올려 인사한 뒤 다시 옆구리로 내리고 임무 인수인계 설명을 듣는다. 부신을 꺼내 상대방이 가진 반쪽 패와 맞춰보고 오른쪽 주머니에 넣고는 수문장패를 건네 받아 관객들을 향해 내보이면 끝이다. 칼을 어깨에 올리는 각도도 몇 번 따라해 본다.

야마모토는 많은 설명 없이도 곧잘 따라했는데 알고 보니 이미 두 번이나 수문장 체험을 했다고 한다.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역사에 빠져 수시로 한국을 찾는다. 지난해 한국 여행책자에서 일반인도 수문장이 될 수 있다는 안내를 보고 인터넷으로 신청을 했다. 지난해 9월 첫 체험이었다. 3일 일정으로 온 이번 여행에서도 이틀간 체험을 했다. 야마모토는 “경험을 많이 쌓아 아예 수문장으로 취업하고 싶지만 키 때문에 안될 것 같다”며 웃었다.

교대식의 절차나 취타대 연주 등 큰 틀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바뀌는 부분도 있다. 복식은 그동안 세 차례 수정됐는데 행사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색채가 화려해지고 붉은 계열이 강조되는 식으로 변했다. 시행 초기 군인들은 창을 하는 식으로 발성을 했지만 ‘어색하다’는 지적이 있어 일반적인 구호 발성으로 하고 있다. 식이 진행될 때 각 순서의 의미는 한국어와 일본어로 설명이 되지만 현장에는 일본어·중국어·영어로 통역해 주는 진행요원들이 배치돼 있다.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이 장기간 호응을 얻으면서 각지에서 비슷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

시민도 매일 2명씩 행사 참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리는 왕궁수문장 교대의식은 매일 하루 3번(오전 11시, 오후 2시, 오후 3시30분) 열린다. 하루 2번(오전 11시25분, 오후 3시45분) 순라의식도 진행된다. 오전에는 덕수궁에서 청계천을 거쳐 보신각까지, 오후에는 덕수궁에서 광화문광장까지 왕복한다. 덕수궁이 문을 닫는 월요일에는 교대식과 순라의식이 없지만 수문장은 서 있다. 일반 시민도 매일 2명씩 참여할 수 있다.
수문장 교대의식 홈페이지(www.royalguard.or.kr) ‘나도 수문장이다’ 코너에 수문장 역할과 교대 시작을 알리는 북을 치는 체험 중에서 선택해 신청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