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년 만에 ‘대서양 노예무역’ 법의 심판대
ㆍ카리브해 14개국, 영국·프랑스·네덜란드 상대 소송
ㆍ“과거사 아니라 현재에도 빈곤 등 고통… 보상 받아야”
유럽 제국들은 17세기 이래로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을 실어다 ‘신대륙’에 이식했다. 미주 대륙에 옮겨진 흑인 노예들이 설탕과 커피 등을 재배하면 제국들은 이 상품들을 가져다 유럽에 팔았다. 이른바 ‘대서양 삼각무역’의 시대에, 카리브해에 끌려간 아프리카 출신들과 그곳의 원주민들은 서양인들의 노예로 수탈당했다.
설탕을 판 돈으로 서방은 산업화를 일궈냈지만 노예들이 일했던 카리브해 지역은 지금도 굶주리고 있다. 이들에게 식민지배와 노예무역은 과거의 일이 아닌 ‘남겨진 유산(lingering legacy)’이다. 이 작은 섬나라들이 300여년 만에 과거사를 청산하기 위한 수순을 밟기로 했다.
카리브해 국가들로 구성된 카리브해공동체(카리콤) 14개국이 17~19세기 노예제와 원주민 대량 학살의 과거를 묻기 위해 영국·프랑스·네덜란드 3개국 정부를 상대로 싸움에 나섰다. 초국가적 위원회를 만들어 보상을 받기 위한 법적 절차를 밟기로 한 것이다. 이들이 청산할 ‘유산’에는 노예해방 뒤에도 계속되고 있는 고질적인 가난과 경제적 정체도 포함된다. 노예의 역사는 아픈 과거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고통으로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카리콤이 강대국들에 맞설 준비를 해온 지는 10년이 넘었다. 가장 많은 노예가 거주했던 자메이카와 앤티가바부다가 각기 자국 내 보상위원회를 구성해 준비작업을 했고, 이달 초 회원국 대표들이 트리니다드토바고에 모여 힘을 합치기로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이들은 자신들을 주로 지배했던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네덜란드를 상대로 정했다. 영국은 카리브해 여러 섬들에 노예를 이리저리 이식했다. 프랑스는 생도밍그(현재의 아이티)를 차지하고 영국과 식민지 경쟁을 벌였다. 네덜란드는 남미 북동쪽 끝의 수리남을 식민지로 삼았다.
카리브 국가들은 영국의 법률회사 ‘리데이’를 법적 대리인으로 선정했다. 1950~1960년대 영국 식민지였던 케냐에서 케냐인들이 ‘마우마우 봉기’라 불리는 봉기를 일으켰다가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최근 영국 정부는 케냐 피해자들에게 2000만파운드(약 340억원)를 배상해주기로 합의했는데, 이 협상의 중재역을 맡은 것이 리데이다. 리데이의 마틴 데이 변호사는 영·프·네덜란드 3국과 카리브 국가들 간의 협상도 마우마우 합의모델을 따르게 될 것이라면서 “우리를 고용한 것은 진정으로 (서방과) 맞부딪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메이카 보상위원회를 이끄는 베레네 세퍼트는 “영국은 1834년 카리브 식민지들에 2000만파운드 지불을 약속했고 이는 현재 2000억파운드의 가치”라며 “우리 선조들은 자유는 얻었지만 ‘스스로 일어서라’는 말 이외에는 받은 것이 없다”고 말했다. 사과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얘기다. 그러나 영국의 자메이카 고등판무관 데이비드 피톤은 “마우마우 방식을 선례로 삼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ㆍ카리브해국가 흑인 노예 사망률, 출생률보다 높아
ㆍ강대국들 무역이익 줄자 노예제 폐지, 보상은 외면
카리브해는 대서양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다. 영국과 프랑스 등은 카리브해의 비옥한 땅에서 사탕수수를 키우고, 그걸로 설탕을 만들어 유럽에 가져가 팔았다. 이 돈으로 옷가지와 술 따위를 사서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와 맞바꾼다. 노예를 채운 배는 다시 카리브해에 도착해 새 노예들을 내려놓는다. 이런 ‘삼각무역’은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무한 반복됐다.
현재 앙골라·나이지리아·세네갈 등이 있는 서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은 이 시기 대서양을 따라 900만명 이상이 카리브해로 온 것으로 추정된다. 인구 28만명의 바베이도스, 면적 260㎢의 세인트키츠네비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발견했다는 앤티가바부다, 아직도 프랑스령으로 남아 있는 과들루프와 마르티니크. 이름도 생소한 이 나라들은 카리브해의 주요 노예 이주지였다.
18세기 중반 영국은 설탕 대국의 야심을 품고 자메이카를 중심으로 노예 농장을 대거 설립해 1680년 7만6000명 수준이던 노예 수가 1750년 29만5000명까지 늘어난다. 흑인 노예가 끊임없이 들어오면서 자메이카 원주민 비율은 19세기 초 23%까지 떨어졌다. 프랑스는 생도밍그(현재 아이티)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영국과 치열한 경쟁을 시작한다. 당시 이 지역 인구의 사망률은 출생률보다 높았다. 자메이카는 연평균 3% 인구가 줄었다. 이보다 작은 섬들은 4%씩 감소했다. 과로와 영양실조 탓이다. 노예들이 일하는 시간은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였다.
자메이카로 건너온 영국인 지주 토머스 시슬우드는 1756년 7월30일 일기장에 도망갔다 잡혀 온 노예에 대해 썼다. “펀치(노예 이름)를 솔트강에서 잡아 집으로 데려왔다. 채찍질을 하고 씻긴 다음 소금에 절인 피클과 라임주스, 후추에 문질렀다.” 그의 이날 일기는 1786년 죽을 때까지 쓴 ‘잔혹사’의 일부일 뿐이다. 대부분 흑인인 138명의 여성을 희롱했고 당시 돈으로 3000파운드를 모았다. 이는 영국의 중산층 정도였다.
식민지를 운영했던 국가들이 얼마를 벌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동에 드는 비용이 많아 수익성은 낮았기 때문에 당시 영국 내 투자금의 1% 수준이라는 분석도 있다. 프랑스 국내 상업 수입률이 5% 수준인 데 반해 노예무역은 6%의 이윤을 보장했다는 연구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이윤을 남겼다는 점이다. 설탕 무역의 수익률이 떨어지기 시작한 뒤에야 이곳에서 노예 폐지 주장이 고개를 들었다.
1800년대 후반 카리브해 국가들은 해방을 맞았지만 황폐해진 땅 위에 아무것도 없이 던져진 꼴이었다. 이주와 착취는 이 지역에 가난만 남겼을 뿐, 발전의 씨앗은 심지 않았다. 아이티는 독재와 폭력, 재난과 빈곤이 결합된 지구상 최악의 고통을 겪고 있다.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수리남은 네덜란드 축구리그로 향하는 젊은 선수들이 유일한 ‘상품’인 빈국이다. 카리브해공동체(카리콤) 국가들의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8116달러에 불과하다.
2010년 1월 아이티 대지진 때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5600만유로의 채무를 탕감해주고 4000만유로를 지원했다. 하지만 노예제 보상 요구에는 고개를 돌렸다. 내년 1월 카리콤 대표직에 오르는 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의 랄프 곤살베스 총리는 “회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보상이 있어야 한다”며 “과거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이 물건처럼 사고 팔리고, 태어나자마자 누군가의 소유물이 되던 시대가 있었다.
유네스코는 대서양 노예무역의 부끄러운 역사를 기억하고 노예제 폐지의 역사적 중요성을 상기하기 위해 매년 8월23일을 기념일로 정했다. 1998년 시작된 ‘국제 노예무역과 철폐를 기리는 날’이다. 기념일의 유래는 프랑스 식민지 생도밍그(현재의 아이티)에서 일어난 ‘노예 혁명’이다. 1791년 8월22~23일 밤 아프리카 출신 노예 봉기가 일어났으며, 이 사건은 대서양을 넘나드는 노예무역이 철폐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들의 투쟁으로 노예들이 세운 최초의 독립국가인 아이티가 건국됐다.
유럽 열강이 노예제 폐지를 공식 선언한 것은 18세기 말~19세기 초반이었지만 그 후 200년이 넘도록 희생자들에 대한 사과나 배상은 별로 이뤄지지 않았다. 1999년 영국 무역항 리버풀 의회는 3세기에 걸친 노예무역을 뒤늦게 공식 사과했다. 2001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아프리카연합 회원국들이 노예무역에 연루된 국가들에 공식 사과를 요구했지만 영국,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미국은 배상 요구가 봇물처럼 터질 것을 우려해 명시적인 사과를 거부했다.
2006년 당시 프랑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노예제 희생자를 추모하는 기념일을 계속 지켜나가겠다고 말했고, 같은 해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도 아프리카 노예무역에 대해 부분적으로 사과했다. 하지만 블레어의 발언은 잘못을 확실하게 밝히지 않아 ‘공허한 수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미국 정부는 사과를 거부했으나, 2007년 버지니아 주의회와 앨라배마 주지사가 노예무역을 공식 사과했다. 연방 하원은 2008년 노예제를 반성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으며 이듬해 상원도 사과성명을 냈다.
아프리카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있었다. 2009년 나이지리아 의회는 모든 아프리카 부족장들에게 대서양 노예무역에 아프리카 지배자들도 한 축을 맡았음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는 공개 서한을 보냈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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