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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중동·북아프리카 보조금 정책 철수…깨진 ‘사회적 계약’

by bomida 2013. 10. 6.

ㆍ북아프리카 독재정권·중동 석유국가 경제 안정 도움
ㆍ수십년 만에 깎거나 없애자 물가 폭등·국민 반발 거세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다시 불안이 찾아왔다. 이 지역 전반에 퍼진 보조금 정책을 각국 정부가 없애기로 하면서다. 지난 수십 년간 암묵적으로 존재하던 이 기형적 ‘사회적 계약’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수단에서는 오마르 알바시르 대통령이 집권한 이래 최악의 반정부 시위가 시작됐다.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시위를 정부가 무력으로 맞서면서 210명 이상이 숨졌다. 시위를 부른 것은 정부의 연료 보조금 삭감이다. 연료 값은 순식간에 두 배로 뛰었고 빵과 부탄가스, 버스 요금도 연쇄적으로 올랐다. 거리에서 과자와 차를 팔아 7살짜리 아이를 키우는 한 엄마는 “요리를 할 때 부탄가스 대신 석탄을 쓰기 시작했지만 생활은 점점 유지하기가 어렵다”고 AP통신에 말했다.

요르단에서도 지난해 모든 연료와 가스에 대한 보조금을 없앤 뒤 국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국민 전체가 대상인 보조금 대신 가장 필요한 계층에게만 지원금을 현금으로 지급하도록 바꾼 것이다. 밀가루와 사료, 물, 전기 보조금은 지속되지만 국왕 퇴출까지 요구하는 이례적인 시위를 촉발시켰다. 요르단 정부는 나머지 보조금을 깎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모로코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연료 보조금 삭감 뒤 수도 라바트에서는 수천명이 쏟아져 나와 항의를 이어갔고, 운송노조는 72시간 총파업에 들어가기도 했다. 수단 시민사회연합 아민 메키 메다니는 “빵 값이 같더라도 양이 30% 이상 줄었으니 같은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보조금은 가난한 이 대륙에서 공통의 문제다. 특히 보조금의 80%가 연료다. 이는 실질적으로 생필품 전반의 가격을 낮춰 물가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여기에 빵과 전기 보조금이 추가로 지급되면서 값을 더 내렸다.

이는 독재 정권이 정치적 자유, 개인의 경제적 기회를 막아도 사회적 안정을 담보할 수 있던 ‘사회적 계약’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에 비해 일자리 창출은 더뎠고, 결국 2011년 ‘아랍의 봄’을 불렀다. 하지만 개혁의 바람은 부실한 정부시스템과 함께 무너졌다. 국고는 비어 연료와 식료품 보조금을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특히 정부 부채가 늘면서 돈을 빌려 준 국제기구들은 정부 지출 감소를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연쇄적 효과는 아랍권 정부의 경제 운용이 실패한 탓에 기인한다. 이 지역 석유 부국들도 교육·의료·농업 등에 대한 투자는 미미하다. 여기에 들어가야 할 공공자금이 보조금으로 쓰이면서 빈곤층보다 부유층에게 혜택이 돌아갔다는 비판도 높다.

국제통화기금은 중동 19개국에서 쓴 연료 보조금을 약 2400억달러(2011년 세전 기준)로 집계했다. 이들 국가 국내총생산(GDP)의 8%에 이른다. 인구가 가장 많은 이집트의 경우 보조금은 전체 예산의 3분의 1이나 된다. 연료에 대한 정부 지출은 교육보다 3배가 많다. 그러나 국제식량정책연구소는 식료품 보조금이 없어지면 이집트 빈곤율은 현재 25%에서 34%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봤다. 40%가 넘을 것이라는 연구도 있다.

아랍 지역 블로그인 ‘레벨(반란) 경제’를 운영하는 파라 할리메는 “아랍 전반에 퍼진 보조금 중독은 개별 정부 차원에서 말하기는 쉽지가 않다. 가장 도움이 시급한 이들에게 집중적으로 이득을 준다고 하더라도 국민들을 설득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