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가 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도쿄에서의 생활이 정말 시작됐다.
잊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야겠다. 9월 출국하기까지, 반년이나 걸릴 줄 몰랐던 지난했던 시간. 인증 서류를 준비한 3월부터 피드백을 기다리고, 기다리며, 기다리면서 의식의 흐름은 띠용이고 멘탈은 너덜너덜. 멘탈 쫄보가 되고 나서야 끝나버린 과정들은, 지금 다시 하라면 참, 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두 번 다시 못함. 절대. 네버.
한 가지 희망은 '되긴 된다'는 것. 비자는 나오고 집은 구해지며 계약은 완료되고 출국 날은 온다.
일본 장기체류를 위한 첫 단계는 재류자격인정증명서다.
흰 부분을 포함한 사진 전체가 A4용지 크다. 이 작은 용지를 받으려다 몸에서 사리가 나올 뻔 했다. 재류자격은 소속될 학교에 어떤 신분으로 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와세다 지역지역간 연구기구에 방문학자(Visiting scholar)로 가게되면서 취로비자(就労ビザ)가 발급됐다. 받았을 때는 몰랐는데, 문화활동(文化活動)이나 유학(留学) 비자보다 집을 구할 때 선택의 폭이 커진다. 일을 하러 오는 사람이기 때문에 학생보다 큰 집, 비싼집에 심사를 넣어볼 수 있다. 물론 심사를 넣었다고 다가 아니지만. 이 지긋지긋한 이야기는 따로 쓰겠다.
'재류자격인정증명서'(在留資格認定証明書, COE)를 받아보자. 비자 신청을 학교에서 도와줬기 때문에 이 서류 기준은 와세다에만 적용될 수 있다.
1.증명사진(3x4cm 사이즈)
2.대학졸업증명서
3.재직증명서
4.経費支弁証明書
5.受入申請書(受入申請要項)
受入申請書의 경우 학교마다 申請要項이 다를 것으로 보이는데 와세다 국제과 소속 석사과정생들의 기준에 맞춰 자기소개와 학습계획서를 일본어로 작성했다. 이밖에 회사 사장명의로 학교에 보내는 추천서도 냈다. 소속 학교 기준에 맞춰 준비하면 될 거 같다.
서류 준비가 끝나면 학교에서 입국관리국에 재류자격을 신청한다. 아무 때나 신청하는 것은 아니고, 입국 예정일 3개월 전에 신청을 한다. 이유가 있다. 재류자격증명서의 유효기간은 3개월. 1월1일자로 발급됐으면 3월31일까지만 효력이 있다. 이 기간 내 서류를 들고 주한국일본대사관에 가서 비자를 신청하는 것이다. 빨리 받아봤자 입국날이 3개월 넘게 남았다면 소용이 없는 것. 그래서 준비한 서류들을 3월 말 미리 학교 쪽에 넘겼는데, 학교에선 9월 입국에 맞춰 6월 초, 도쿄입국관리국에 재류자격을 신청했다.
비자는 또 다시 발급받은 날부터 1년간 효력이 있는데 이건 뒤에서 다시 설명. 재류자격증명서가 없어도 한국에서 비자를 받을 수 있다고는 하는데 절차가 너무너무너무 복잡하다고 들었다.
학교에서 재류자격을 신청하면서 최소 한 달 반에서 두달 걸릴거라고 했다. 초록창에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후기마다 자격증이 한국으로 오는데 걸리는 기간은 제각각이다. 한 달 만에 나오기도 하고 3개월 넘게 걸리기도 한다.
이유는? 모른다. 학교에서도 문의해 볼 방법이 없다. 그냥 입국관리국에서 나올 때 까지 기다려야 한다. 하여간 나온다. 안 나오지는 않는데, 문제는 재류자격이 나오지 않으면 항공편을 미리 끊기도, 집을 구하기도 어렵다. 특히 재류자격과 함께 재류기간이 확인이 돼야 부동산 문의하기가 편하다. 재류기간이 길게 나오면 집구하기가 한결 편해지는데, 일본도 2년 단위로 세입기간을 갱신하기 때문. 재류자격증명서가 없는 상태로 집을 구할 수는 있다. 하지만 페이퍼로 된 증명서가 없는 상태에서 일본의 부동산 심사를 넣는 건... 너무나 불확실성의 연속인 것.
하여간 재류자격증명서는 신청날 기준으로 한 달하고도 보름이 지나서 한국에 도착했다. 일하다보면 금방 지나가는 시간이지만 기다리다보면 정말 길고 길다. 서류가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다. 그래도 도를 닦는 심정으로 일단 기다리면 온다. 집에 국제 우편이 와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냥 “꺅” 소리가 나오고, 깨춤을 추게 될 것이다.
이제 재류자격증명서를 들고 주한일본대사관으로 간다. 두 번째, 비자를 받는 단계.
미리 대사관 홈페이지에서 신청서를 내려받아 작성해서 가면 몇 분 안에 끝나는 비자 신청 절차. 대기자가 없어서 줄서지 않으면 2분도 안 걸린다. 게다가! 비자가 발급돼 여권에 붙는 것은 단 하루면 된다. 신청한 다음 날 저 여권인수증을 갖고 찾으러 가면 되는 것. 그러니까 재류자격인정증명서가 나왔다는 것은 비자가 확정됐다는 것이나 마찬가지. 이 비자도 유효기간이 있다. 1년 내 일본에 도착해 장기체류를 시작해야 한다. 비자를 받아놓은 워홀 준비생들이 '간당간당하게 출발한다'고 하는 이야기가 이 유효기간 때문이다.
비자까지 받았으면 한국에서 할 것은 거의 다 끝났다. 본격적으로 집을 알아보면 된다. 대망의 집구하기 후기는 따로 쓰겠다. 다시 피토하면서 쓸 것 같다.
세번째 단계. 입국과 동시에 이뤄지는 재류카드 발급이다.
여권에는 비자 사증도 붙어있지만 재류자격증명서도 스테이플러로 붙어 있다. 공항에서 외국국적 입국자 줄에 같이 선 뒤, 안내를 받을 때 장기체류자라며 재류자격증명서를 보여주면 된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입국 전날 태풍 제비가 간사이 공항을 초토화시킨 역사적인 자연재해가 일어났다. 간사이로 내려야 하는 항공편이 도쿄로 온 것... 하네다 공항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줄선 것은 정말 처음 보는 장면..
모든 창구에서 재류카드를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고, 기계가 설치된 곳만 가능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대기. 그래도 2시간 안걸려서 나왔으니 다행이다. 재류카드에는 재류자격과 재류기간, 영문 이름, 생년월일, 사진 정보만 들어가 있다. 정확하게 써있는지 확인하고 가지고 오면 된다.
네번째, 재류카드에 '미정'으로 돼있는 주소를 등록해야 한다. 사는 지역 구청区役所를 찾아가보자. 주소등록하러 왔다고 하면 직원이 서류 한 장을 준다.
이름은 재류카드에 써있는대로 영어로, 생년월일과 자신이 계약한 집의 주소를 적는다. 출생지는 한국만 적어도 된다. 전화번호도 적어야 하는 주소를 등록할 때는 당연히 일본 전번이 없다. 주소가 적힌 재류카드+주민표가 있어야 통신사에 가입할 수 있으니까. 첫 주소등록에는 어쩔 수 없다. 한국 전화번호를 쓴다. 그래도 된다고 했다.
번호표를 뽑고 서류를 직원이 가져가 기입한 정보의 확인 절차를 거치는 동안 친절하게도 일본생활을 위한 꾸러미를 준다. 한글로 써놨지만 발음만은 일본식으로 '가이도'인건 무엇? ㅎㅎ
분리수거하는 방법, 구내 다양한 시설들, 간단한 일본어 회화 교재까지 수록돼 있다. 우리도 주민등록을 하는 외국인에게 이런걸 주겠지만 받아볼 방법이 없군; 절차가 끝나면 5~10분 정도 있다가 재류카드 뒷면에 주소가 적혀서 나온다. 뿌듯.
구청을 나가기 전에 할 일 두 가지. 학교에서 가입하라고 한 보험이 없을 경우 일본 국민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구청 직원에게 이야기하면 해당 창구로 가라고 할 것이다. 거기서 간단한 신상정보를 적어내면 보험증이 나온다. 월말에 보험료가 계산돼서 집으로 청구서가 온다고. 취로비자라 얼마가 나올지 모르겠지만 일단 기다려보기로 한다. 너무 많이 나오면 구약쇼 다시 소명을 해야할 거 같다. 병원 갈 때 필요하고 이걸 신분증으로 받아주는 경우도 있으니 잘 보관하자. 근데 너무 작은 종이 한 장이라 어디다 끼워놓으면 잊어버릴거 같다. ㄷㄷ
보험 가입이 끝났다면 이제 마지막 주민표 발급만 남았다. 신청 양식을 써서 창구에 가져다주면 정보 확인을 하고 발급하는 절차에 들어간다.
미나토구 구약소가 커서 그런지, 다른 구약소도 그런지 몰라도 접수받는 직원, 실무 처리하는 직원, 마지막 설명해주며 서류 발급하는 직원이 다 달랐다. 분업화 돼있는 듯.
신청서 낼 때 받는 대기표 번호 불리면 가서 받아오면 된다. 주민표는 장당 300엔. 문서는 우리나라 등본하고 똑같이 생겼다. 통신사 가입용, 은행용, 학교용, 부동산용으로 4장이나 만들었는데 휴대폰은 가입할 땐 확인만하고 돌려주고 은행에선 보지도 않았다. 2장만 뽑아도 될 뻔했다...
여기까지하면 재류자격증명서 신청부터 주소등록까지 일본 장기체류자로서 해야 하는 초기 행정처리가 마무리된다. 이런 글을 쓰게 될 날이 정말 오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여러분, 힘내세요. 그날은 꼭 옵니다,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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