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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미주

미국 최대 화학공단, 허리케인 하비로 통제력 상실···'시한폭탄' 되나

by bomida 2017. 9. 1.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북동쪽으로 40㎞ 떨어진 크로즈비의 아케마 화학공장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허리케인 하비가 몰고 온 폭우로 물에 잠겨있다. 이튿날 이 공장에선 화학물질을 싣고 있던 냉동 컨테이너가 온도 조절 장치 고장으로 폭발했다.AP연합뉴스


 허리케인 하비가 휩쓸고 간 뒤 힘겨운 복구가 시작된 미국 텍사스주 남부에 또 다른 위험 적신호가 켜졌다. 넘쳐난 물이 수도와 전기를 끊고 이 지역에 들어선 미국 최대 석유화학공단 역시 통제력을 상실한 탓이다. 폭발 가능성이 큰 독성물질이 가득찬 공단은 ‘시한폭탄’이 됐다.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북동쪽으로 40㎞ 떨어진 크로즈비의 아케마 화학공장에선 지난달 31일 오전 2시쯤(현지시간) 2차례 폭발이 일어나 높이가 9~12m에 이르는 불꽃과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프랑스 업체가 소유한 이 공장은 유기과산화물을 이용해 플라스틱과 건설자재 등을 생산하는 곳이다. 


 지난달 29일 하비가 몰고 온 폭풍과 홍수로 전기 시설과 보조 발전기까지 망가지면서 저온 유지를 위한 온도조절 장치도 작동을 멈췄다. 공장 측은 임시 방편으로 9개의 냉장 컨테이너에 화학물질을 옮겨 담았지만 1대가 고장나면서 폭발이 일어났다. 아케마의 임원인 리처드 레너드는 “화학물질이 든 컨테이너 9대 중 1대에 불이 붙었고, 나머지 8대도 폭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이 공장은 빗물이 1.8m 높이까지 차올라 안전장치가 무력화되면서 폭발이 예고돼 왔다. 안전 당국은 반경 2.4㎞ 내 주민 5000여명과 공장 직원 60여명을 대피시켰다. 하지만 현장에 남아있던 안전요원 15명은 폭발 이후 연기를 들이마셔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텍사스A&M대 샘  화학공학 교수는 “아케마는 텍사스주에서 가장 위험성이 큰 공장”이라며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방편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이 공장이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강화된 안전 규정을 가장 많이 위반한 화학업체 중 한 곳이라고 보도했다. 기업의 규정위반을 추적하는 업체인 바이올레이션 트래커(Violation Tracker)에 따르면 아케마 공장은 2010년 이후 직장 안전·건강·환경 등과 관련한 위반으로 120만 달러(13억원)의 벌금이 부과됐다. 


 텍사스주는 지난 2013년 비료공장 폭발로 15명이 사망한 뒤 규제 조항을 확대해왔다. 그러나 지난 6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규제 적용을 최소 오는 2019년 이후로 늦춰 시행하도록 연기했다. 비용 부담이 늘어난다는 화학업계의 로비 때문이다.


 미 환경보호청(EPA)은 현장을 항공 조사한 결과 이 공장에서 유독성 물질이 방출된 흔적은 없으며 텍사스 내 다른 화학 공장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보고도 없다고 밝혔지만 우려는 커지고 있다.


휴스턴 외곽에 있는 TPC의 석유화학 공장. 저 멀리 휴스턴 도심의 스카이 라인이 보인다. 텍사스만의 석유가 산업 기반인 휴스턴은 외곽에 이런 석유화학 공장이 400~500개가 밀집해 있다. 휴스턴|AP연합뉴스 


 휴스턴 도심 외곽에는 미국의 최대 석유화학 공단이 자리잡고 있다. 사고 공장 인근 일대에 아케마와 같은 화학물질을 다루는 공장이 3곳이 더 있고 500개의 크고 작은 화학물 공장이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물난리가 수습된 이후 폐쇄됐던 시설이 다시 가동되면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물에 잠겼던 장비들의 안전 상태를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엑손모빌과 셸 등 주요 정유사들의 석유 정제시설이 모여있는 걸프 연안에서도 약 900t규모의 화학물이 공기 중으로 유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독가스뿐 아니라 홍수에 휩쓸린 독성 물질이 상수도를 오염시켜 수해를 더욱 악화시키는 2차 피해 위험성도 커진 상황이다. 미 연방항공청(FAA)은 화재 또는 폭발 우려에 이 지역의 항공기 운항을 일시 금지했다.


 다음주 멕시코만 서부에서 또 다른 열대성 폭풍이 형성될 수 있다는 징후도 있다. 아직 위력을 예측하기는 이르지만 이미 큰 타격을 입은 이 지역에 비가 더 내리면 추가 범람의 위험성도 있다.


 텍사스주 보몬트 지역의 11만8000여명의 거주지엔 이날부터 식수 공급이 중단됐다. 이 지역 월마트는 매장 출입 인원을 1회에 20명씩, 물은 1인당 3명만 구매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병원도 폐쇄된 상태다. CNN은 “닷새 동안 폭풍을 겪은 후 물과 전기를 잃어버린 것은 (이번 사태의) ‘게임 체인저’”라며 “이는 누구에게든 재앙”이라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