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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미주

다양성의 실리콘 밸리에서 거부당한 ‘트럼프 가치’ 문화전쟁 부르다

by bomida 2017. 8. 9.

매년 전 세계에서 열리는 성소수자 퍼레이드인 ‘크리스토퍼 스트리트 데이’에 참석한 사람들이 지난달 독일 베를린 거리에서 구글이 적힌 현수막을 들고 행진을 하고 있다. 베를린|AFP연합뉴스


   ‘기술직에 여성 직원이 적은 것은 (남녀의) 타고난 심리적 차이 때문이다.’ ‘남녀의 임금 차이를 성차별이라 하지 말아야 한다.’


 구글의 중견 기술자 제임스 다모레가 지난 6일(현지시간) IT(정보기술) 블로그에 남긴 글이다. 발언의 핵심은 인종과 성별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방식 자체가 불공정하며, 사업 측면에서도 좋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유로운 시장과 이념, 다양성의 상징인 실리콘 밸리에선 금기어와 같은 발언이다.


 결국 이 글이 문제가 돼 그는 8일 해고됐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미국 사회 전반에 퍼지고 있는 좌우의 문화전쟁(culture war)이 다모레를 둘러싼 논쟁을 계기로 실리콘 밸리에 옮겨붙었다고 보도했다.


 다모레의 발언이 차별 논란이 아닌 문화 충돌로 번진 이유는 그에게 동조하는 직원들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업별 게시판에 익명으로 글을 올리는 블라인드앱에는 다모레의 해고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올라와 있다. 한 직원은 “진짜 끔직한 일”이라며 “이념적으로 다수에 따르지 않는 경우 ‘문화적 적합성’이 부족하다는 평가와 함께 고용이나 승진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썼다. 또 다른 직원은 “이런 광기(좌편향)에 맞서는 용기있는 사람이 더 나와야 한다”며 “다양성과 포용이 회사를 망칠 것”이라고 적었다.


 미국의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결합돼 탄생한 실리콘 밸리에서 이 같은 ‘문화전쟁’이 일어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으로 인한 정치적 강박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는 다양성을 배제한 백인 중심의 미국을 주장했다. 여성을 향해 거친 언어를 쏟아냈으며 이민 제한을 천명하고, 기후변화는 부정했다. 모두 실리콘밸리와 IT 업계가 이상으로 여긴 가치들을 위협하는 것들이다. 트럼프의 위협에 맞선 이들은 자신들의 가치에 대한 도덕적 우월성을 강조하며 트럼프 지지자들을 다양성과 기회의 가치를 무시하는 사람으로 치부했고, 발언의 기회도 차단했다.


 실제 트럼프의 열성적 지지자로 알려진 페이팔의 공동창업자 피터 틸은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에게 경고를 받았고, 가상현실(VR) 전문기업 오큘러스의 공동설립자 팔머 러키는 트럼프 후원단체 지원 사실이 알려진 뒤 페이스북 이사 사퇴 압박을 받아 물러났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으로 정부의 정책들이 달라지고, 이는 ‘반(反)실리콘밸리적’ 가치관에 자신감을 갖게 했다.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교수 애덤 갈린스키는 “트럼프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평가받는 이들에게 말할 자격을 부여했다. 그의 정책은 IT 기업들이 지지해온 이상을 반대하는 데 힘을 실어줬다”고 말했다.


 여기에 구글이 다모레를 해고하면서 문화 충돌을 심화되는 양상이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그가 글을 남긴 다음날 “내용의 일부가 구글의 행동강령을 어겼다”며 유해한 성 고정관념 조성을 들어 그를 해고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실리콘밸리에서 이념의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는 편협함의 상징이 됐다”고 보도했고, 하버드대 인지과학자 스티븐 핑커는 “구글의 조치가 기술 분야의 트럼프 지지율을 높일 수 있다”고 트위터에 글을 남겼다. 다모레는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들어 “해고가 부당하다”며 노동관계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하는 등 법적 대응에 나섰다.


 미 온라인매체 쿼츠는 조너선 체이트가 쓴 <오바마의 담대함>의 내용을 소개하며 실리콘밸리가 주장하는 다양성의 한계점을 지적했다. 체이트는 책에서 “자유주의자들은 표현의 자유의 이점을 말하지만, 반대 진영에선 표현의 권리는 결국 억압받고 억압하는 이들의 제로섬 갈등으로 본다”며 “필연적으로 한쪽의 팽창은 다른 한쪽의 희생이 따르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