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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이슈/서울이야기

‘도시 없는 도시화’ 대신 ‘사람 번영의 도시’로…서울은 ‘진보도시’인가

by bomida 2015. 10. 15.




“도시없는 도시화가 이뤄졌다. 도시가 없다는 것은 정치·사회적 중심지가 없다는 의미다. 경제적 기능만 가진 섬이 된 것이다.”

마이크 더글라스 싱가포르대 교수는 불평등이 커지고 슬럼 인구가 증가하는 문제점을 안은 도시를 이 같이 설명했다.

“현실적 내용(컨텐츠) 대신 시뮬레이션만 있죠. 인류는 늘 살기좋은 도시를 생각해왔지만 2차대전 후 개발주의가 부상하면서 이 부분을 놓친 것 아닌가 싶어요. GDP(국민총생산)이 많으면 좋다는, 성장 중심의 판단은 최근까지 목도했던 현상입니다. 도시들이 경쟁은 하지만 사회와 관계는 없었어요.”

서울과 런던, 싱가포르의 도시학자들이 15일 서울시청에 모여 진보도시(Progressive City)에 대해 논의했다. 서울연구원이 15~16일 양일간 진행하는 ‘진보도시 국제심포지엄’에서 나온 이야기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이성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게 18세기 계몽주의의 진보라면 도시의 진보주의는 과거 지배적 체제에서 불가능했던 다양한 가치 구현”이라고 설명했다. 도시 산업화 과정에서 겪은 격차 심화, 사람과 시민·공동체의 부재, 환경의 악화에 대한 저항이라는 것이다.

더글라스 교수는 “지속가능한 개발은 실패했다”며 가치관의 재조명을 진보로 봤다. 그동안 ‘인간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자연을 이용할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에 오류가 있고, 환경을 이산화탄소 배출이 관점에서만 보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환경을 보호하는 시민정신은 도시의 식량 생산, 식량 주권까지 확대될 수 있다.

필립 로스 전 레치워스 가든 시장은 이날 기존과 다른 사회적 원칙을 바탕으로 만든 자신의 도시에 대해 소개했다. 3만50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런던 외곽의 레치워스는 영국의 첫 정원도시(Garden City)다.

영국의 도시계획가 에버니저 하워드는 1898년 쓴 <내일의 전원도시>에서 도시가 재화·상품의 생산기능만 있는 공간이 아니라 노동자의 삶을 위한 휴직도 가능한 전원도 공존하는 곳이라고 했다. 100년 전 산업화로 도시의 오염이 악화되고 임대료가 치솟아 빈곤문제가 대두하던 현상에 반동으로 나온 것이다.

영국 런던 외곽에 위치한 레치워스(Letchworth) 전경. Letchworth.com


로스 전 시장은 “시민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도시의 부도 주민들이 가져가는 진보적인 설계에서 나왔다”며 “특히 식량 재배공간을 위한 토지접근권이 가장 강력한 원칙이었고 토지는 공동의 자산이라는 인식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전 세계 많은 도시가 전원도시의 설계를 부분적으로 따라하고 있지만 이 같은 사회적 원칙은 빠진 곳이 많다고도 했다. 우리나라의 그린벨트 역시 도시주변을 녹지로 만드는 개념만 따온 정책이다.


서울과 같이 그동안 성장을 좇았던 도시가 가진 모순을 해결하는데 권력이양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브 카바네스 런던대 명예교수는 스스로 선택한 동네에서 계속 살 수 있는 권리는 주장하는 시민들의 움직임이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을 소개했다.

“도시화는 사회적비용을 치뤄야 하죠. 개발을 명분으로 (원주민이) 터전을 잃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시장원리만 적용해 임대료를 못내는 세입자는 쫓겨나는 상황이죠. 그래서 지자체의 도움을 받거나 스스로 본인의 집을 지키려는 노력이 일어나고 있어요. 특히 단순히 시위만 하는게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내놓는 시위(protests with proposals)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박인권 서울시립대 교수는 “사회 전체로 보면 구성원들은 고정돼 있지만 도시 단위로 보면 재개발과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면 특정인은 특정 공간에서 배제된다”고 했다.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 입안의 주체로 국가가 부각됐던 때와 달리 도시 주도로 전환된 것도 시민의 참여 필요성이 커진 이유이기도 하다.

필립 로스는 “도시에서 거주하는 주체보다 의미있는 권한가진 개개인을 인정하는게 프랑스 혁명 이후 시민권의 정의였다”며 “최근 연구를 하면서 드는 생각은 도시의 번영은 시민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가에 대한 측면에서도 다뤄져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더글라스 교수도 “사회에서 제 기능을 한다고 느끼는 것이 사람이 번영할 수 있는 도시”라며 “도시를 바꾸는데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소외계층까지 교육을 받고, 권한을 확보해야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경제성장 둔화와 급속한 고령화가 동시에 맞물린 서울은 사회·공간적 격차도 점점 커지고 있다. 양재섭 서울연구원 연구위원 “1970년대 이후 서울을 변화시킨 가장 큰 동력은 개발이익에 근거한 재개발 사업이었지만 이제 인구 구조와 도시상황은 다른 정책적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며 “그러나 여전히 과거 정책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시대적 부조화를 극복해야하는 과제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