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도심 속 버려진 ‘섬’을 ‘열정도’로 바꾸는 사람들
서울에서 장사꾼으로 살아남기는 녹록지 않다. 한 번 세를 얻은 자리에서 가게가 유지되는 기간이 1.7년인 도시. 평균적으로 임대차계약 한 텀인 2년도 채우지 못하는 곳이다.
청년이라면 현실은 더 혹독하다. 당장 가진 것이 없는 이들에게 좋은 가게 자리를 선택할 여유는 없다. 목이 좋은 곳은 비켜나 외진 골목에나 문을 열 수 있다. 아직 상권이 없거나 인적이 뜸하고 ‘핫(hot)’하지 않아야 월세를 감당할 만하다. 용산구 남영동 효창공원역과 삼각지역 사이, 주상복합건물로 둘러싸인 동네도 그런 곳이었다.
주변에 초고층 빌딩이 올라가면서 땅값이 치솟았지만 삼각형 모양의 이 땅만 재개발이 지연돼 섬처럼 남았다. 이미 값을 치른 부동산 비용을 만회할
수익은 기대할 수 없게 됐고, 부수고 새로 지으려 했던 건물들도 방치됐다. 임대료도 예전 그대로였다. 오래된 인쇄공장, 식당 몇 개만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장사를 이어갔다. 지난달 24일 오후 찾은 골목에는 기계에 종이가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만 가득했다. 조용한 길을 따라 안쪽 골목으로
들어서니 공장들 사이로 장난스러운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치킨사우나’ ‘철인28호’ ‘열정도 고깃집’ ‘아지트’ ‘열정도 쭈꾸미’ 등 이름도
기발한 간판들이 여기저기 건물에 걸려 있었다. 그중 한 가게인 ‘감자집’에서 이들 가게를 만든 김연석 청년장사꾼 대표(33)를
만났다.
“돈이 없어서 선택한 것이죠. 악조건을 극복하는 방법은 딱 하나예요. 지역을 문화적으로 가공해서 이슈를 만들면 돼요. 그럼 이런 활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아오죠. 이들을 우리 가게 손님으로 끌어오면 되는 겁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이렇게 순환의 고리를 만드는 것밖에는 장사할 길이 없었어요.”
청년장사꾼들에게 작은 섬처럼 버려진 이 골목은 최상의 목 좋은 곳이었다. 골목에 ‘열정도(熱情島)’라는 이름을 붙여 지난해 11월 음식점 7개를 한꺼번에 열었다. 임대료가 워낙 싸 다른 곳에서 가게 하나 얻는 정도의 돈으로 가능했다. 이제 공간은 구했으니, 손님은 부르면 된다. 젊은이들은 소셜미디어로 가게를 홍보했다. 가게 앞 골목에는 또래들의 놀거리도 준비했다. 한 달에 한 번 야시장을 열었다. 소품과 옷 등을 파는 또 다른 젊은 장사꾼들, 예술가들이 아기자기한 것들을 가지고 열정도로 왔다. 40~50개팀이 물건을 팔고 4000~5000명이 구경을 왔다. 재미있는 골목으로 입소문이 나자 주민들과 주변 직장인들이 모이면서 가게도 북적였다. 청년들의 가게는 3개월 만에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열정도가 생긴 지 9개월여가 지난 지금은 새로운 옷집과 음식점들이 골목을 채우고 있다.
이태원 우사단길과 경복궁 옆 서촌에서 유명한 ‘감자집’ 역시 청년들의 이런 장사법이 제대로 들어맞은 곳이다. 첫 감자집인 우사단마을 1호점도
똑같은 방식으로 시작했다. 인적이 없는 마을에 터를 잡고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이곳저곳 꽃을 심고 마을투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마을 한쪽
계단에서는 장을 열었다. 이태원의 명물이 된 ‘계단장’이다.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장이 서면 동네에 구경꾼 2만명이
몰렸다.
“매력적인 상권은 먹을 것만 있는 장소가 아니에요. 문화가 중요하죠. 가게의 문화일 수도 있고 거리나 밤의 문화일 수도 있어요. 놀거리죠. 그런데 이런 행사가 생기면 정작 주변에 사는 주민은 잘 안 와요. 대부분 외부인인데, 지역에서 장사를 하려면 주민들과 가까워져야 해요. 그래서 마을활동을 하기로 한 거예요.”
젊은이들의 활기는 변화를 촉진한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던 동네를 서울에서 가장 주목받는 상권으로 바꿔놓은 데는 장사를 해야 하는 청년들의 절박함이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동네의 변화는 청년들이 스스로 일궈낸 상권에서 쫓겨나는 모순을 만들었다.
‘서촌 열풍’에 한몫했던 감자집 경복궁점은 최근 건물주가 바뀌었다. 2012년부터 3년째 장사를 해온 곳인데 새 주인은 곧 가게를 빼달라고 할 분위기다. 같은 처지의 다른 가게 주인들과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지만 기대가 크지는 않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곧 가게를 비워야 할 수도 있다.
“열정도 구상을 끝낸 뒤 입주를 확정할 때까지 철저히 비밀로 했어요. 부동산과 말을 맞춰 7개 건물을 하루에 전부 계약을 끝냈죠. 청년장사꾼이 이미 많이 알려졌기 때문에 미리 소문이 나면 임대료가 아주 조금이라도 오를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한 거죠.” 그런데 딱 한 곳만 권리금을 줬다고 했다. 석 달간 장사도 안 하고 문이 닫혀 있던 곳이지만 먼저 주인이 골목에서 청년장사꾼 로고가 붙은 자동차를 본 것이다. 그때부터 가게를 원하는 쪽이 약자가 된다. 지역과 상권이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생태계, 서울의 부동산은 그만큼 예민하다.
“매력적인 상권은 먹을 것만 있는 장소가 아니에요. 문화가 중요하죠. 가게의 문화일 수도 있고 거리나 밤의 문화일 수도 있어요. 놀거리죠. 그런데 이런 행사가 생기면 정작 주변에 사는 주민은 잘 안 와요. 대부분 외부인인데, 지역에서 장사를 하려면 주민들과 가까워져야 해요. 그래서 마을활동을 하기로 한 거예요.”
젊은이들의 활기는 변화를 촉진한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던 동네를 서울에서 가장 주목받는 상권으로 바꿔놓은 데는 장사를 해야 하는 청년들의 절박함이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동네의 변화는 청년들이 스스로 일궈낸 상권에서 쫓겨나는 모순을 만들었다.
‘서촌 열풍’에 한몫했던 감자집 경복궁점은 최근 건물주가 바뀌었다. 2012년부터 3년째 장사를 해온 곳인데 새 주인은 곧 가게를 빼달라고 할 분위기다. 같은 처지의 다른 가게 주인들과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지만 기대가 크지는 않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곧 가게를 비워야 할 수도 있다.
“열정도 구상을 끝낸 뒤 입주를 확정할 때까지 철저히 비밀로 했어요. 부동산과 말을 맞춰 7개 건물을 하루에 전부 계약을 끝냈죠. 청년장사꾼이 이미 많이 알려졌기 때문에 미리 소문이 나면 임대료가 아주 조금이라도 오를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한 거죠.” 그런데 딱 한 곳만 권리금을 줬다고 했다. 석 달간 장사도 안 하고 문이 닫혀 있던 곳이지만 먼저 주인이 골목에서 청년장사꾼 로고가 붙은 자동차를 본 것이다. 그때부터 가게를 원하는 쪽이 약자가 된다. 지역과 상권이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생태계, 서울의 부동산은 그만큼 예민하다.
청년장사꾼처럼 지역의 가치를 높인 주체들의 노력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자신의 자리를 잃게 되는 현상이 계속되면서 서울시와 자치구도 머리를 맞대고
있지만 뾰족한 수는 없다. 일종의 ‘알박기’처럼, 아직 뜨지 않은 지역의 건물을 공공에서 사들이는 방식이 거론되기도 한다. 중요 지점마다 이
같은 건물을 확보해 임대료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면 주변 시세를 어느 정도 낮출 수 있다는 기대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신호탄을 민간에서 당기느냐, 정부나 지자체에서 쏘느냐의 차이밖에 안돼요. 건물 한 채라도 매입이 이뤄지면 그때부터 옆 가게도 오르거든요. 특히 공공에서 사는 건 부동산 시장에 더 확실한 신호가 될 수도 있어요. 분명히 지역이 개선될 이유가 있다는 확신을 주는 거예요. 그때부터 ‘안 팔아도 그만’이라고 자세가 바뀔 수 있죠. 이 문제는 사회의 공동가치가 변하지 않으면 풀리지 않아요. 프로젝트성으로 개발하거나 단기로 대응하면 한계가 있어요.”
최근 건물주들이 협약을 맺어 적정 임대료를 유지하려는 시도도 있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썩 좋지 않다. 월세를 지금의 절반으로 내려도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이미 비정상이 돼버린 상권에서 협약은 다시 동네를 살리는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50년 이상 된 가게의 95% 이상이 자가건물에서 장사한 경우라고 하더라고요. 아니면 한자리에서 50년 하면 그 건물이 자기 것이 되거나. 아마 전자가 훨씬 많지 않을까요. 상권이 정점을 찍는 시점보다 권리금이 최고치를 찍는 것이 더 빠르게 마련이죠. 문제는 이 정점을 찍는 텀이 너무 빨라졌어요.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 전에도 장사가 잘되면 한 번 계약을 연장해서 두 텀을 돌면 최소 4년은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이제 그 단위가 최근에는 6개월까지 줄었어요.”
특히 임대료 상승을 바라보는 이중적인 시각도 딜레마다. 땅값이나 건물값이 올라 임대료가 비싸지면 권리금도 함께 상승한다. 임대료 부담으로 가게를 비워도 권리금을 받고 나가면 가게 주인들을 ‘피해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런 서울에서도 수십, 수백년씩 이어가는 가게들이 생기고 자리를 잡아 손님들이 대를 거듭해 단골이 될 수 있을지 물어봤다. “지역을 띄우는 것은 ‘앞으로 조금만 버티면 장사가 잘되겠지’ 하는 게 아니에요. 장사꾼은 ‘그럼 뜰 때까지는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나’를 걱정하죠. 그런데 서울은 대부분 ‘조금만 참으면 (건물값·임대료·권리금 등이) 오를 거야’라고 생각해요. 폭발적인 인기보다 우리에게는 꾸준히 장사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지금 이 가게에서 오래 장사하는 것이죠.”
“신호탄을 민간에서 당기느냐, 정부나 지자체에서 쏘느냐의 차이밖에 안돼요. 건물 한 채라도 매입이 이뤄지면 그때부터 옆 가게도 오르거든요. 특히 공공에서 사는 건 부동산 시장에 더 확실한 신호가 될 수도 있어요. 분명히 지역이 개선될 이유가 있다는 확신을 주는 거예요. 그때부터 ‘안 팔아도 그만’이라고 자세가 바뀔 수 있죠. 이 문제는 사회의 공동가치가 변하지 않으면 풀리지 않아요. 프로젝트성으로 개발하거나 단기로 대응하면 한계가 있어요.”
최근 건물주들이 협약을 맺어 적정 임대료를 유지하려는 시도도 있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썩 좋지 않다. 월세를 지금의 절반으로 내려도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이미 비정상이 돼버린 상권에서 협약은 다시 동네를 살리는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50년 이상 된 가게의 95% 이상이 자가건물에서 장사한 경우라고 하더라고요. 아니면 한자리에서 50년 하면 그 건물이 자기 것이 되거나. 아마 전자가 훨씬 많지 않을까요. 상권이 정점을 찍는 시점보다 권리금이 최고치를 찍는 것이 더 빠르게 마련이죠. 문제는 이 정점을 찍는 텀이 너무 빨라졌어요.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 전에도 장사가 잘되면 한 번 계약을 연장해서 두 텀을 돌면 최소 4년은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이제 그 단위가 최근에는 6개월까지 줄었어요.”
특히 임대료 상승을 바라보는 이중적인 시각도 딜레마다. 땅값이나 건물값이 올라 임대료가 비싸지면 권리금도 함께 상승한다. 임대료 부담으로 가게를 비워도 권리금을 받고 나가면 가게 주인들을 ‘피해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런 서울에서도 수십, 수백년씩 이어가는 가게들이 생기고 자리를 잡아 손님들이 대를 거듭해 단골이 될 수 있을지 물어봤다. “지역을 띄우는 것은 ‘앞으로 조금만 버티면 장사가 잘되겠지’ 하는 게 아니에요. 장사꾼은 ‘그럼 뜰 때까지는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나’를 걱정하죠. 그런데 서울은 대부분 ‘조금만 참으면 (건물값·임대료·권리금 등이) 오를 거야’라고 생각해요. 폭발적인 인기보다 우리에게는 꾸준히 장사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지금 이 가게에서 오래 장사하는 것이죠.”
각 점포의 직원을 뽑을 때 청년장사꾼의 자격에서 으뜸으로 치는 것을 꼽아달라고 했더니 ‘의지’라고 했다.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장사를 배우는지, 열중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학벌이나 나이, 지금까지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청년장사꾼으로 2년간 열심히 일한 직원은 새로 문을 여는 가게에 투자할 수 있는 권리를 얻는다. 본인이 지분을 가진 가게에서 일하면서 주인이 되는 연습도 하는 셈이다.
“장사로 성공해야 하는 친구들이에요. 목숨 걸었죠. 장사는 치열함이 없으면 남는 게 없거든요. 골목길 안쪽에 숨어 있는 가게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스스로 나가서 손님들도 직접 모으고 그래요. 이런 마음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없죠. 열심히 일하면 장사꾼도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만큼 잘살 수 있는 사회가 돼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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