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적 인구증가로 지하수 고갈… 180㎞ 거리 강물 끌어와 식수 사용
아스테카 제국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은 테스코코 호수에 떠 있는 섬이었다. 스페인은 물 위에 떠 있는 이 도시의 아름다운 풍경이 너무도 탐나 정복을 했다.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의 이런 ‘과거사’는 마치 지어낸 동화 같은 느낌이다.
지난 5월 방문한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의 중심부 소나로사, 폴랑코 상업지구는 하루에 두 차례만 물이 나왔다. 오전 11시에서 오후 1시, 오후 3시에서 5시까지다. 이 시간대에 물을 받아놓지 못하면 ‘피페’(pipe·물차)를 불러서 물을 사야 한다. 중산층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도 정기적으로 단수가 된다. 과거엔 몇 년 만에 이따금씩 일어난 일이지만 최근에는 한 달에 한 번씩 물이 끊긴다. 단수는 엔리케 페냐 니에토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양상이 바뀌었다. 정권이 바뀌기 전까지만 해도 도심 빈민촌에서나 일어나던 일이었다.
부유층에까지 물 공급을 제한하는 데 대해 여권의 ‘포퓰리즘’이라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제 이 도시의 물 부족은 특정 집단을 봐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것 같다. 멕시코시티는 서반구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다. 더 나은 삶과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사람들은 역설적이게도 열악한 생활환경을 만든 장본인이다. 특히 물 부족은 경고를 넘어 위기 상태에 이르렀다. 정부는 주민들이 쓸 물을 끌어오기 위해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경제성장의 과정에서 농민들이 대거 도시로 몰려들면서 멕시코시티처럼 엄청난 인구를 껴안게 된 초거대도시(메가시티)들이 신흥경제국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멕시코시티는 그런 준비되지 않은 거대도시의 실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 대수층 붕괴로 지반 10m 내려가
멕시코시티는 해발 2240m에 위치한 고산도시다. 높은 지형에 평지는 30%뿐이어서 강이 거의 없다. 물이 고일 곳도 없다. 강수량의 80%는 증발되고 11%만이 땅 밑으로 들어가 담수가 된다. 그래서 멕시코시티는 툴라(Tula) 지역 등을 포함한 멕시코주 안팎의 대수층에서 퍼올린 지하수로 생활용수와 농업·공업용수의 70%를 조달한다. 대수층은 암석 등으로 막혀 지표면에 물을 빼앗기지 않은 채 지하수를 대량 보관하고 있는 지층을 말한다. 지표면에서 쉽게 끌어올릴 지하수가 부족한 멕시코시티는 대수층을 파내 물을 쓰고 있다. 멕시코의 도시들은 대부분 이와 비슷하게 대수층에 의존한다.
문제는 이 물이 다시 채워지는 속도가 쓰는 속도를 맞추지 못한다는 데 있다. 멕시코시티에 지하수를 공급하는 대수층에는 1초에 31.6㎥씩 물이 공급되지만 추출량은 1초에 59.5㎥나 된다. 초당 28㎥씩 대수층의 물이 줄어드는 것이다. 가장 많은 물을 대는 멕시코밸리의 14개 대수층 가운데 4곳이 과잉 개발된 상태다. 남부 막달레나강 부근 지하수층은 물이 빠진 자리의 지반이 약해서 땅이 가라앉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도시의 지층은 10m나 내려갔다.
대수층 수위가 낮아지기 시작한다는 사실은 1983년 수자원 조사 때부터 드러났다. 당시 조사에선 대수층 수위는 연평균 0.1~1.5m씩 낮아졌다. 전국의 대수층 653곳 가운데 101곳이 심각한 고갈 상태로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는 지하수를 얻기 위해 2000m를 파내려가야 하는 곳도 있다. 이 같은 고갈 속도라면 매년 물을 빼내 쓰는 양이 보충되는 지하수량의 200~350배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도 멕시코시티의 인구는 계속 늘고 있다. 멕시코시티의 공식 명칭은 ‘멕시코시티 연방지구(Distrito Federal)’다. 현지인들이 줄여서 DF라고 부르는 멕시코시티의 인구는 884만명이지만, 인근 지역을 포괄하는 ‘메트로폴리타나(Area Metropolitana de la Ciudad de Mexico)’ 전체의 인구는 2120만명에 이른다. 서반구에서는 가장 인구가 많고, 세계에서도 인구 밀집도 3위의 도시가 됐다. 척박한 변경에서 밀려들어오는 사람들 때문에 메트로폴리타나의 인구는 갈수록 늘고 있고, 그들의 수요를 맞추려면 어디서든 물을 끌어와야 한다.
연방수자원청은 그래서 ‘쿠사말라 상수도’(Sistema Cutzamala)를 계획했다. 멕시코시티 외곽 톨루카 지역의 쿠사말라강 등지에서 물을 퍼다 정수한 뒤 강이 없는 도시에 관으로 연결해 물을 보낸다는 것이다. 듣기엔 간단하지만 그 과정은 험난하다.
쿠사말라에는 물 저장고 7곳이 있다. 3곳에는 강물이나 빗물을 담아두고 4곳에는 상수처리한 물을 저장한다. 지난 5월20일(현지시간) 멕시코시티 남부 이스타팔라파에 있는 상수처리장의 한 곳인 ‘계곡수원관리소’를 찾았다. 이곳은 과거 테스코코 호수의 흔적이 남아 있는 소치밀코와 가까워 지하수가 많다고 한다. 단계별 정수 처리장들 외에는 대부분이 녹지여서, 40만㎡(약 12만평) 부지 안은 조용한 리조트 같았다. “평화로운 이곳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은 없겠다”고 하자 헤로니모 뉴네스 에스칼란데 소장은 손사래를 쳤다. 그는 “요즘 상수 공급량을 맞추기가 너무 힘들다”며 “저장 수량이 계속 줄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우기가 시작되기 한 달 전인 그 무렵이 가장 가물 때라고 했다. 멕시코는 6월 말부터 10월까지가 우기다.
쿠사말라에서 확보해야 하는 물은 초당 2만4000ℓt(24㎥)이다. 멕시코시티에서 소비하는 물의 4분의 1, 인구로 따지면 500만명이 쓰고 일부는 멕시코주 북부 공업단지로도 보낼 수 있는 양이다. 상수 규모로는 미국 시카고(초당 32㎥)와 브라질 상파울루(초당 28㎥)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크다.
에스칼란데 소장을 비롯해 쿠사말라의 수원 관리담당자들에게는 물을 충분히 끌어와 정화하는 것 말고도 중요한 역할이 하나 더 있다. 도심까지 보낼 수 있도록 해발 2700m에 위치한 최종 저장소로 물을 끌어올리는 일이다. 물이 시작되는 지점을 도시보다 높게 만들어 그 낙차로 물을 쏘기 위해 ‘장전’을 하는 것이다. 이날 방문한 계곡관리소는 해발 2500m가 조금 넘기 때문에 200m 정도만 올리면 된다. 그러나 가장 낮은 지역인 톨루카 콜로리네스의 저장소는 물을 1000m나 끌어올려야 한다.
■ 상수도 증축 땐 국가전력 5% 소모
상수를 끌어올려 평균 해발 2200m인 멕시코시티 도심으로 흘러내려 보내는 데는 전기 펌프가 활용된다. 계곡관리소 부근에는 6개의 발전소가 있다. 발전 펌프들은 최대 7400㎾ 용량, 3800V 전압의 전기를 만든다. 연간 소비하는 전력이 1.3~1.8테라와트로, 멕시코 전체 전력의 0.6%나 된다. 연간 100만명이 생활에 쓰는 전기량이기도 하다. 쿠사말라 상수도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 1억3000만달러 가운데 전기료만 6500만달러다. 멕시코 연방수자원청의 에밀리아노 로드리게스 브리세뇨 부청장은 “쿠사말라 상수도는 경제적으로 효율적인 것은 아니다. 지하수를 뽑아 쓰는 것보다 훨씬 비싼 방법”이라며 “멕시코시티에 물을 공급하던 대수층이 비어가면서 지반이 약한 쪽이 가라앉는 현상이 나타나 대안을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비싼 돈을 들인 펌프로 이제 물을 쏴 준다. 물은 콘크리트 수로를 따라 109㎞, 철 수로관으로 11.5㎞, 터널 21㎞, 땅 위로 놓여 있는 노지 20.5㎞를 지나 총 180㎞를 이동한다. 직선으로 서울~평양 거리를 가는 셈이다. 에스칼란데 소장은 “수원에서 끌어오는 것까지 하면 총 220㎞다. 세계에서 관을 통해 가장 멀리 옮겨지는 물”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최근 직면한 고민은 이런 상수도를 더 지을 때가 됐다는 것이다. 쿠사말라는 운용하는 데도 많은 돈이 들지만 짓는 과정에서도 엄청난 자금과 시간이 들어갔다. 1978년 계획이 추진된 후 상수·펌프 시설과 수로 연결에 30년이 넘게 걸려 지난해 겨우 완성이 됐다. 현재 수로관이 2개 설치돼 있는데, 하나를 추가하는 작업에만 5억달러(약 6000억원)가 든다.
일단 수자원청은 쿠사말라 4단계 증축 공사로 지금보다 10% 정도 상수 공급량을 늘릴 계획을 잡고 있다. 1970년대 쿠사말라와 함께 상수도 후보지였던 아마쿠삭강과 테코루틀라강 개발도 검토하고 있다. 이 강들에서 멕시코시티에 물을 대려면 적어도 1800m를 끌어올린 뒤 160㎞ 정도 물길을 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어림잡아도 40억달러 이상이 들어간다. 전력도 멕시코의 연간 전력의 5%를 써야 할 것이다. 그래도 이 방법을 택하면 쿠사말라에서 생산되는 물의 양의 두 배인 지하수(초당 50㎥)를 보존할 수 있다.
멕시코시티가 원래부터 물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다. 1325년 이곳에 처음 들어선 도시 테노치티틀란을 1521년 스페인이 정복한 뒤 호수를 메워 땅을 만들기는 했으나 여전히 물은 풍부했다. 이때 거주 인구가 20만~25만명, 같은 시대 영국 런던 인구의 4배 규모였다. 이미 거대도시의 면모를 갖췄지만 1824년 독립 때까지도 도시 내 수로는 인근 강줄기를 시내로 끌어들이기 위해 돌담을 쌓아 만든 물길만으로도 충분했다. 사정이 달라진 것은 20세기에 들어서다. 1900년대 인구가 50만명까지 늘더니 1960년대 도시를 둘러싼 멕시코주에서 주민들이 대거 들어와 인구 폭발이 일어났다. 1980년 일자리를 찾아 노동자들이 끊임없이 유입됐고, 수도기반시설로는 버텨내기 힘들어졌다.
물기근에 시달리는 멕시코시티는 전 세계 거대도시들이 직면하게 될 문제의 단면을 보여준다. 인구 1000만명이 넘는 메가시티인 서울 역시 외면해서는 안될 부분이기도 하다. 면적 605.52㎢에 1019만5000명(2012년 기준)이 살고 있는 서울의 인구 밀집도는 세계 어느 도시에도 뒤지지 않기 때문이다.
■ 2030년 도시인구 50억명 위기감
거대도시에서 물 부족은 갑자기 찾아온다. 대비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난관이다. 1800년대 도시 인구는 3%에 불과했지만 20세기 말에는 47%로 늘었다. 1950년대 100만명이 넘는 도시는 세계 83개로 불었고 2007년에는 468개로 늘었다. 2011년에는 이미 20곳이 넘는 메가시티가 형성됐다. 인도의 뭄바이, 파키스탄 카라치, 일본 도쿄, 미국 뉴욕,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는 20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주한다.
유엔은 현재 32억명인 도시 인구가 2030년이면 50억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한다. 전 세계 인구 5명 가운데 3명은 도시에 살게 되는 것이다. 메가시티의 물 문제를 방관하면 단순히 ‘목이 마른 문제’를 넘는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도시 인구가 50억명을 넘어서는 2030년에는 20억명 이상이 도시 슬럼에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이들이 모이는 거대도시의 상하수도 관리가 붕괴되면 질병률은 걷잡을 수 없이 높아질 것이다.
특히 최근 인구 집중이 가속화되고 있는 곳은 빈부격차가 심하고 사회기반시설이 완벽하지 않은 아시아·아프리카 지역들이다. 홍콩 주간지 ‘파이스턴이코노믹리뷰’에 따르면 2025년에는 뭄바이에 3300만명, 중국 상하이에 2700만명, 카라치에 2650만명, 방글라데시 다카에는 2600만명, 자카르타에는 2490만명이 살게 된다. 나이지리아 라고스의 인구는 1950년 30만명에서 현재 1250만명을 넘었고, 2015년이면 25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지금도 수도시설이 모자라는 판에, 지금의 2배 가까운 인구를 버텨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메가시티 대부분은 상수도 확보에 얼마 안되는 투자를 집중하느라 하수처리 시설은 사실상 방기하고 있다. 위생뿐 아니라 물 재활용률도 떨어뜨려 수원 부족 문제를 키우기 쉽다. 멕시코시티의 경우도 하수시설이 상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 5월21일 멕시코주 톨루카 북부 레르마강 상류지역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악취가 났다. 물은 시커멓게 썩어 있고 강기슭은 쓰레기로 뒤덮였다. 사방에 버려진 개들이 남긴 오물이 널려 있다. 이 강은 멕시코주와 멕시코시티를 포함해 5개주에 거쳐 흐른다. 생태학적으로도 멕시코시티 주변 지역의 빗물받이 역할을 하는 중요한 수원이지만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 멕시코의 상수도 기술 수준은 한국과 비슷하지만 하수관리는 뒤처져 있다.
■ 시설 낡아 하수 재사용률 1% 그쳐
메테펙 지역에 있는 ‘톨루카 노르테’ 하수처리장은 레르마강으로 흘러가는 오염수 10만ℓt 을 정화한다. 그러나 이 물의 재사용률은 1%에 그친다. 극히 소량의 정화수를 저장했다가 가뭄 때 풀기도 하지만, 재사용되는 물은 대부분 상·하수처리장에서 소비되는 수준이다. 한국은 법정 기준으로 15%를 재사용하게 규정하고 있다.
인구 폭발에 대비해 기반시설을 제때 손보지 못하는 것은 앞선 수자원 확보 노력을 허사로 만들기도 한다. 멕시코시티로 오는 물은 초당 6000ℓ씩 도시에 닿기도 전에 노후 수도관에서 소실된다. 2009년 정부조사에 따르면 쿠사말라에서 그토록 어렵게 모은 물의 40%가 내관 누수로 새나간다. 에스칼린데 소장은 “멕시코는 지반이 약하고 지진이 잦아 관이 파손되거나 부서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멕시코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몬테레이 역시 최근 물길을 확보하기 위해 대대적인 투자에 들어갔다. 멕시코시티 동쪽에 위치한 이곳은 1970년대 120만명 수준이었던 거주자가 20년마다 배로 늘어 2010년 현재 400만명을 넘어섰다. 이 때문에 인근 베라크루스 강줄기를 도시로 돌려 식수를 조달하는 계획을 세웠다. 500㎞ 달하는 새 물길을 만들면 향후 50년간 몬테레이의 물 수요를 충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5년 후 완공될 이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돈은 총 1조6000억원이다.
에밀리아노 부청장에게 멕시코시티와 같은 거대도시의 물 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묻자 “도시로 사람들을 오지 못하게 막는 것”이라며 웃었다. 뾰족한 수가 있었다면 물줄기를 바꾸고 수원을 끌어오는 데 이처럼 막대한 돈을 쏟아붓겠냐는 허탈함이 배어 있었다. 이 취재는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으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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