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집도 학교도 꿈도 빼앗긴 ‘시리아의 미래’
시리아와 국경을 접한 레바논 동부의 베카 계곡 난민촌. 지난 13일 중동 전역에 불어닥친 눈폭풍으로 곳곳에 눈이 쌓였고, 기온은 영하로 떨어졌다. 열 살 소녀 마리암은 뜨거운 물 한 바가지를 이웃으로부터 얻어와 진창이 된 길을 걸어다니느라 흙범벅이 된 엄마의 샌들에 붓는다. 이어 동생을 업은 채 동네로 나가 아이들 몇 명을 자신이 살고 있는 건물 안으로 불러들였다. 예전 양파공장이던 집 건물은 지붕도 없이 플라스틱으로 벽만 대충 세워놓은 난민들의 거처다.
마리암은 자칭 꼬마들의 선생님이다. 8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유엔의 임시학교가 있지만 눈과 추위 때문에 가기가 힘들어지자 스스로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기로 한 것이다. 며칠 전 난민촌 소년이 그 길을 가다 차에 치여 숨진 것도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건물 밖에는 철부지 아이들이
눈싸움을 하고 있다. 두 살 아이는 맨발로 뛰며 놀고 있다. 발등에는 불에 데인 자국이 선명하다. 여자아이들이 태울 만한 것을 골라내기 위해
눈덮인 쓰레기 더미를 뒤진다. 마리암의 엄마 나디아 카르보(26)는 “아파도 학교에 빠지지 않던 아이들이 미래를 잃었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2011년 3월 시작된 시리아 내전은 석 달만 지나면 만 3년을 꽉 채운다. 어른들의 싸움은 이 땅의 희망, 아이들의 꿈을
삼켜버렸다. 수백만명의 또 다른 ‘마리암’들이 시리아 안팎에서 세 번째 추운 겨울을 맞고 있다. 내전으로 열일곱 살이 안된 시리아 어린이·청소년
1만1420명(영국 옥스퍼드연구그룹 조사)이 총격과 고문 등으로 숨졌다. 지난 8월 수도 다마스쿠스 인근에서 자행된 화학무기 공격으로도 수많은
아이들이 희생됐다. 1300여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당시 공격 현장에서는 핏기 없이 허옇게 변한 얼굴로 자는 듯 죽어 있는 아이들의 참상이
공개돼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총탄을 피해 레바논과 요르단, 터키, 이집트 등으로 빠져나온 시리아인은 지금까지 220만명이 넘고, 이 가운데
절반이 어린이다. 이들 중 7만명은 아버지를, 3700명은 부모 모두를 잃었다.
전쟁은 아이들로부터 배움의 기회를 앗아갔다.
시리아 내 학교 4000여곳은 파괴되거나 난민대피소로 바뀌었다. 취학연령 480만명의 절반이 학교에 가지 못한다. 중동에서도 높은 교육열을
보이던 시리아였지만 내전 탓에 10년 이상 교육이 후퇴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다시 문을 연 학교들도 있지만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북부
도시 마디야에 사는 열두 살 소년 압도 알피크리는 지난 10월1일 다시 등교를 했다. 정부군과 반정부 간 교전이 격해지면서 학교를 다니지 못한
지 1년 만이다. 알피크리는 책을 꼭 쥐고 교실로 가면서 “학교엔 다니지만 아직은 두려움이 남아 있다”고 AP통신에 말했다. 인구가 밀집된
요충지를 차지하려는 교전이 심해지면서 학교나 병원도 공격을 받고 있다. 정부군이 지난 9월 말리카 지역 고등학교를 공격해 학생 5명이 희생됐다.
알피크리가 다시 수업을 들은 첫날에도 시리아 학교에서는 아이 12명이 숨졌다. 알피크리의 아버지 아메드는 총을 들고 아들의 등하굣길을 지킨다.
그는 “펜과 책을 사줘야 하는데 가게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유엔난민기구는 연말이면 난민촌에 거주하는 시리아 아이들 가운데
교육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된 인원이 50만명을 넘길 것으로 보고 있다. 난민촌 아이들은 일곱 살만 넘으면 등교 대신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 레바논에서는 구두닦이로 나선 시리아 아이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요르단 자타리 난민촌 안 대부분 가게들은 시리아 난민 아이들을
싼값에 고용해 쓰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1일 다마스쿠스 교외의 폐허를 서성이던 앳된 소녀의 이야기를 전했다. 소녀는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 위를 돌아다니다 무언가를 발견하고 주머니 칼을 꺼냈다. 그러곤 튀어나온 전선을 잘랐다. 하루 종일 모은 구리선은
1㎏. 길 모퉁이 시장에서 소녀가 받은 돈은 500시리아파운드(약 4600원)다. 학교를 다녀야 할 나이에 전쟁 청소부가 된 이 소녀가 다시
꿈을 꿀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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