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정예 병력인 혁명수비대 보유…미 일자리 1만8000개 걸린 ‘거래’…미, 혼자선 중동문제 못 풀어
“이란을 고립시켜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1일(현지시간) 첫 해외 방문지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시종일관 이란을 ‘적’으로 규정하며 맹비난했다. 하지만 바로 전날 재선에 성공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실용적, 정치적 가치가 없는 쇼”라며 간결하고 ‘쿨한’ 반응을 내놨다.
트럼프에 “놀라운 평정심”을 보인 이란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이란과 미국 지도자들이 공방을 벌여도 빅딜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28일 분석했다. 트럼프는 이번 순방길에 사우디와 1100억달러 규모의 무기계약을 맺었다.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이 거래를 두고 “바보들(사우디)이 이슬람의 적에게 돈을 주고 우정을 사려 한다”고 말했다. 사우디를 젖소에 비유하면서 “젖을 다 짜내면 도축될 것”이라는 말도 했다.
이란은 트럼프가 취임 이래 한결같이 비난해온 유일한 국가였다. 트럼프는 시리아의 알아사드 정권이나 북한 김정은 정권보다도 이란에 더 거부감을 보였고, 시종일관 이란 핵합의를 비난했다. 그런데도 이란이 느긋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사우디는 이란을 견제하겠다며 미국 무기를 사들이지만 군사력은 형편없이 취약하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시아파 반군을 몇년째 폭격하고 있으나 민간인들을 살상해 국제사회의 지탄만 받고 있다. 값비싼 미국산 무기를 사들여도 보수관리조차 힘든 처지이며 최정예부대 혁명수비대를 보유한 이란에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혁명수비대는 최고지도자의 명령을 받는 12만5000여명의 정예 병력이다. 이 군대의 대외전략 부대인 ‘알쿠즈’ 1만5000명이 시리아와 이라크 내전에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외교협회(CFR)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혁명수비대는 몇년 안에 이란 국내뿐 아니라 중동 정치에서도 힘을 갖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경제 회복이 기대보다 느리다지만 핵합의 이후 이란과 각국의 굵직한 거래들은 예정대로 추진되고 있다. 미국 항공기 제조회사 보잉은 이란 항공사와 220억달러어치의 계약을 앞두고 있다. 미국인들의 일자리 1만8000개가 달린 거래다. 이란 사만은행은 조만간 이탈리아 로마에 첫 지점을 낼 계획이다. 대선 기간 핵합의를 ‘최악의 협상’이라고 핏대를 세웠지만 트럼프는 지난달에 이어 이달에도 이란 제재를 해제하는 추가 조치에 ‘조용히’ 서명했다. 트럼프가 사우디에서 이란을 비방하는 연설을 하는 시간에, 동행한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과 통화를 했다.
트럼프의 거친 수사에는 중동에서 세를 확대한 이란에 대한 우려가 들어 있다. 역으로 그 때문에 미국은 이란의 협력 없인 중동 문제를 풀기 어렵다.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 시리아 아사드 정권, 이라크의 시아파 민병대 모두 이란의 영향력하에 있다. 게다가 이란은 중동에서 거의 유일하게 선거를 통해 정통성이 확보된 정권이기도 하다. 트럼프 행정부 아래에서 오히려 미국과 이란 간 민간 교류가 늘고 추가 협상이 속도를 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란의 정치분석가 마샬라 샴솔바에진은 “이번 미 행정부 인사들은 사업가들로, 싸움 아닌 거래로 문제를 해결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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