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지난 19일(현지시간) 치러진 선거에서 재선이 확정되자, 트위터에 파르시(이란어)로 글을 올렸다(사진). “이번 선거의 승리는 국민의 것이다. 겸허히 머리를 숙인다. 국민들에게 한 약속을 충실히 지키겠다.” 이란 정부는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미디어 접속을 규제하고 있다. 그럼에도 로하니는 2013년 취임한 이래 ‘트위터 정치’를 계속하고 있고, 이번 선거 뒤에도 공식 승리 연설을 하기 전에 먼저 트위터로 국민들에게 인사를 했다. 개혁과 개방, 국제사회와의 교류를 강화하겠다는 뜻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보였다.
개혁세력의 지지를 받는 온건파 로하니의 재선은 이란에서 개혁의 흐름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서방과의 핵합의 이후에도 경제 회복은 더디고, 실업률과 빈부격차만 심화됐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국민들은 4년 전의 50.9%보다 더 높은 57.1%의 지지율로 그에게 힘을 실어줬다. 과반 이상의 표를 얻어 2차 결선 투표 없이 연임이 확정된 로하니의 2기 정부는 제재를 풀기 위한 미국 등 서방과의 협상에서 강한 추진력을 갖게 됐다. 그는 국영방송에 중계된 승리 연설에서는 “이란 국민들은 극단주의를 멀리하고 국제사회와 교류하는 길을 택했음을 분명히 보여줬다”며 “과거로의 회귀를 거부한 것”이라고 선언했다.
로하니를 전폭적으로 지지한 젊은층과 여성들은 선거 결과를 자축했다. 20일 테헤란에서는 젊은이들이 거리로 나와 큰 소리로 음악을 틀고 당선을 축하했고, 느슨하게 히잡을 쓴 여성들은 로하니의 기호 2번을 나타내는 ‘V’자를 그리며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고 국영 IRNA통신 등이 보도했다.
강경보수파들은 에브라힘 라이시를 단일후보로 내세워 정권 탈환을 노렸지만 오히려 자유가 후퇴할 수 있다고 우려한 개혁세력이 로하니에게 몰표를 던지는 효과를 가져왔다. 저소득층과 농촌 표심을 공략한 라이시는 38.3% 득표에 그쳤다. 이미 인구의 80%가 도시에 살고 있고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보다도 높은 이란에서, 더 투명한 정부와 경제발전을 바라는 유권자들이 개혁의 속도를 늦추려는 보수파들을 막아낸 것이다.
벨기에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ICG)의 이란 전문가 알리 바에즈는 “적절한 경제 운영, 온건한 국제관계가 이란 문제의 해법임을 국민들은 이해하고 있다”고 AFP에 말했다. 이란외교전문가 카베 아프라시아비는 유권자들이 “집단적 의지”를 보여줬다면서 이번 선거는 “앞으로 4년 동안 이란이 어떻게 움직일지를 보여주는 신호”라고 프레스TV에 말했다.
로하니 정부는 앞으로 제재를 풀기 위해 서방과 외교협상에 나서겠지만, 동시에 중동 역내에서 영향력을 강화하려 나설 가능성도 점쳐진다. 영국의 중동전문가 디나 에스판디아리는 워싱턴포스트 기고에서 “로하니는 이제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정책을 추진할 것이며, 걸프 아랍국들과 대화에 나설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이란에 적대적인 것, 미국 정치의 불안정성이 커진 것은 복병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등은 축하 인사를 보냈고 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도 “핵합의를 이행하기 위해 로하니와 계속 협력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트럼프와 함께 사우디를 방문 중인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중동 테러 지원과 미사일 개발을 중단하라”며 축하 대신 경고부터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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