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황학동 중앙시장의 입구에 있는 ‘내 고향 반찬가게’에 지난달 28일 커다란 광고판이 내걸렸다. 주인 아주머니의 사진과 함께 손글씨로 ‘안 먹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먹은 사람은 없다’라고 써놨다. ‘40년을 지켜온 푸근한 인상, 손님에게는 푸짐함’이라는 문구도 곁들여져 있다.
시장 터줏대감 허완순씨(68) 가게에 첫 광고 카피를 만들어 준 주인공은 인근 청구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다. 지난 봄 가게를 찾았던 6명의
아이들은 김치와 젓갈 등 30여가지 반찬의 이름은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고 파는지 등을 꼼꼼히 취재했다. 서로 머리를 맞대 선전할 문구를 정하고
직접 찍어온 사진도 편집했다.
이날 허씨는 “너희들 덕분에 처음 광고도 해본다”며 아이들의 등을
두들겼다.
청구초등학교 6학년 3반 학생들이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황학동 중앙시장에서 시장 상인들과 함께 자신들이 만든 광고를 들고 웃고 있다.
서울 중구 제공
초등학생들이 기획한 광고는 중앙시장뿐 아니라 인근의 남대문시장과 신중부시장에도 있다. 전문적이지는 않지만 저마다 가게를
알리려는 재치 있는 문구들이 눈길을 끈다.
덕수초 6학년 아이들은 남대문의 ‘중앙갈치’에 갔다가 가게 입구에서 “다이어트 하는
언니들도 들어와”라며 호객하는 것을 듣고 이를 문구로 썼다.
갈치전문점 ‘중앙식당’ 광고는 생선 조림을 건강하게 먹는 법이 그려져
있다. ‘손가락으로 양쪽 가시를 발라내고, 큰 가시는 젓가락으로 발라 먹는다’고 한다. 주방기구를 파는 ‘일광주방’에는 ‘결혼하시는 분, 새로운
살림을 준비하시는 분, 요리사가 되고 싶으신 분들은 오시라’는 선전이다.
신중부시장에서 3대째 멸치를 파는 ‘충무건해’의 장수
비결은 ‘한 번 쪄서 비린내가 없고 방부제도 없으며, 칼슘이 일반보다 4배’라는 문구로 설명이 돼 있다.
중구청이 관내 6개
공립초교 6학년 중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은 아이들에게 광고를 만들어볼 기회를 마련했고, 시장 3곳의 51개 가게가 협조를 해줬다. 평소 엄마
심부름거리만 가끔 사러왔던 아이들은 상인들과 처음 긴 이야기를 나누며 친숙해졌고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쏟아내며 두 달간 596명의 학생들이 일일
광고주가 됐다. 중구는 한국광고협회 등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받아 높은 점수를 받은 15개 광고를 추려 상을 주고 책으로도 엮었다.
반찬가게 광고를 만들었던 조서현양(13)은 “시장을 구경하고 친구들과 여기서 놀기도 해서 재밌었다”고 했다. 같은 반
전가람양(13)은 “먹어 보지 못한 반찬도 있어 취재하고 문구도 생각해 보니 시장이 친근하게 느껴졌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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