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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중동과 아프리카

로하니 이기려 ‘가부장제’ 양보한 이란 보수파 라이시

by bomida 2017. 5. 3.

ㆍ“여자는 집에 있어야” → “아내의 일, 국가에 도움”
ㆍ검찰총장 출신 ‘강경 보수’… 이란 대선 앞두고 승부수


“나는 집에 갔을 때 부인이 없어도 상관없다. 밥이 없어도 상관없다. 진심으로 부인이 하는 일이 국가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이란 검찰총장 출신인 고위성직자가 선거운동을 위해 찍은 동영상에서 대학교수인 자신의 부인을 극찬했다. 보수적인 이슬람국가에서 기득권층 고위직 남성이 공개적으로 이런 말을 하기는 쉽지 않지만, 강경보수파 성직자 에브라힘 라이시(56·사진)에게는 더 이례적인 일이다. 그는 평소 “여성은 주부나 엄마로서 집에 있어야 한다”고 해왔기 때문이다. 

한 달도 남지 않은 대선에 출마하기로 한 라이시가 강경파 보수 지지층을 넘어 다양한 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전통’에 맞섰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 20일 헌법수호위원회가 최종 대통령 후보자격을 부여한 6명 중 한 명인 그는 재선에 도전하는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68)의 가장 강력한 맞수로 꼽힌다. 

라이시는 1981년 이후 줄곧 검찰에 몸담았다. 정치경력이 전무한 그는 지난해 최대 종교자선단체 의장으로 임명되더니 최근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의 지지를 받으며 보수·강경파 내에서 급부상했다. 검찰총장을 지낸 경력 외에 거물급 성직자인 장인의 지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중 인지도는 여전히 떨어진다. 여론조사기관 이란폴의 최근 조사를 보면 이란 국민의 46%가 라이시를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짧은 시간에 자신을 알려야 하는 라이시는 선거운동의 ‘무기’로 부인과 함께 포퓰리즘도 내세웠다. 부패 척결, 국가보조금 3배 인상, 일자리 100만개 창출을 공약으로 선언해 중산층과 개혁 찬성자들, 성직자를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지지를 얻어내려는 것이다. 이란 개혁·강경파와 모두 친분이 있는 한 관계자는 파이낸셜타임스에 “라이시처럼 인지도가 없는 인물에 기대는 것은 강경파 내부의 위기를 반영한다”며 “보수 지지도가 강한 저소득층만으로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부인을 (운동에) 참여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달 19일 치러지는 대선은 로하니와 라이시가 맞붙는 구도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강경파 내부에서 후보 단일화가 성사될지가 막판 변수다. 특히 2013년에 이어 두 번째 대선에 도전하는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테헤란시장(55)은 라이시의 막강한 경쟁자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란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며 핵협상 폐기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과 답보 상태인 경제도 관건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란 경제가 지난해 7% 성장했다고 밝혔으나 국민의 72%는 “경제가 나아지지 않았다”고 느꼈다. 경제개방과 핵협상에 대한 기대로 2015년 88%까지 올라갔던 로하니에 대한 선호도는 지난해 75%로 떨어졌다. 하메네이는 최근 대선 후보들에게 “외세에 의존하지 않는 이란의 경제적 번영을 국민에게 약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