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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중동과 아프리카

[시리아 내전 3년, 끝이 안 보이는 분쟁] 정부군·반정부군, 도시 잇단 봉쇄… “굶주림을 무기화” 비판

by bomida 2014. 3. 12.


ㆍ(1) 키워드로 본 내전

2011년 3월, 다른 중동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시리아에도 ‘아랍의 봄’ 바람이 부는 줄 알았다. 담벼락에 정부를 비난하는 낙서를 썼다는 이유로 소년들이 붙잡혀가자 시민들은 들불처럼 일어났다. 뜻이 하나로 모이면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독재가 무너질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정권은 무력을 동원해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했고, 수많은 이들이 죽어갔다. 성난 시위대 일부는 탈취한 무기로 무장한 반정부군이 돼 총부리를 맞댔다. 15일이면 그렇게 시리아에서 내전이 시작된 지 만 3년이 된다. 그간의 시리아 내전을 키워드로 풀어봤다.

■ 죽음의 도시, 야르무크… 난민 보호국서 난민국으로

야르무크는 수도 다마스쿠스 중심에서 남쪽으로 8㎞ 떨어진 외곽 마을이다. 시리아 내 최대 팔레스타인 난민촌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내전 전 이스라엘과 분쟁을 겪는 고국을 떠나 정착한 17만명이 살았다. 그러나 시리아 내전이 시작되면서 15만명은 다시 피란길에 올랐다. 수도로 들어가는 요충지에 있는 탓에 2012년부터 다마스쿠스를 방어하려는 정부군과 이를 뚫으려는 반정부군 간 교전이 마을 주변에서도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여름 반정부군이 이곳을 장악하게 되자 정부군은 마을 주변을 포위하고 물자와 사람의 이동을 막아버렸다. 안에 있던 주민들이 몰래 빠져나가다가 들키면 다시 끌려왔다.

그 후 반 년 넘게 주민들은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먹을거리와 물은 물론 아파도 먹을 약마저 떨어졌다. 주민의 60% 이상이 영양실조에 걸렸고, 못 먹은 노인과 아이들은 병이 들었다. 식료품을 싣고 야르무크로 들어가는 유엔 트럭을 겨냥한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외부 지원이 막혀 손을 쓰지 못하는 사이에 128명이 굶어죽는 등 200여명이 사망했다. 

정부군과 반정부군은 싸움이 길어지면서 인구밀집 도시를 장악하기 위해 이 같은 봉쇄 전략을 쓰고 있다. 다마스쿠스와 알레포, 홈스 등 대도시가 주요 표적이 됐다. 국제앰네스티는 “시민들의 굶주림을 무기로 사용한다”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피터 마우러 국제적십자위원회 총재도 “시리아 주민 100만명 이상이 포위된 도시 안에서 극한의 폐쇄 상황에 처해 있다”고 전했다. 현재 유엔난민기구 등 국제기구의 손길이 닿지 않는 주민은 300만명 수준인데, 이 가운데 3분의 1이 전쟁을 위한 전략상 고립돼 있다. 

난민촌 마을 야르무크의 비극은 3년 내전이 뒤바꿔버린 시리아의 아픔이기도 하다. 내전 전 시리아는 파키스탄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은 난민들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지금은 전체 국민 2250만명의 절반 가까이가 국내외에서 집을 잃은 처지가 됐다. 최대 난민국인 아프가니스탄을 넘어섰다. 650만명은 국내에서 피할 곳을 찾고 있고, 250만명은 레바논과 터키, 요르단, 이집트, 이라크 등지로 떠났다.

인구 430만명인 레바논에 가장 많은 100만명 가까운 시리아인이 몰리면서 난민촌은 하나의 거대도시가 됐다. 요르단 역시 자국민의 10%에 이르는 약 60만명의 시리아인이 넘어왔다. 이들 국가는 국제사회에 난민지원 부담을 나눠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 혼란의 늪을 만든 알카에다… 종파분쟁 겹쳐 내전 확산

내전은 시간이 갈수록 치열해졌다. 시아파 계열의 알라위파 시리아 정부와 수니파 반정부군 싸움에 외부 지원군이 각각 붙으면서 이슬람 종파갈등으로 번졌다. 특히 사태는 반정부군 용병으로 알카에다 계열의 이라크시리아이슬람국가(ISIS) 소속원들이 대거 합류하면서 더 악화됐다. 이들은 자신의 뜻에 반하는 다른 반정부군과도 전투를 벌였다. ISIS는 아사드 정권 전복을 넘어 시리아를 이슬람 율법(샤리아)이 지배하는 이슬람 국가로 만들려고 한다. 이들은 장악한 마을의 여성들에게 헤자브를 쓰도록 강요하는 등 율법통치를 시행하고 있다.

이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와 적대성은 알누스라전선을 포함한 다른 반정부군 세력과의 반목을 낳고 있다. 내분이 격해지면서 반정부군이 장악한 북부 지역은 지난 3년간 가장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있다. 마르카다 등지에서는 지난 1월에만 용병 등 3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알카에다는 ISIS의 잔혹성 등을 들어 연계된 조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알누스라도 이달 초 휴전을 제안하며 이에 따르지 않으려면 시리아에서 철수하라고 최후통첩을 내렸지만 ISIS가 이를 거부해 앞으로도 유혈충돌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아사드 축출을 외치며 반정부군에 들어왔던 알카에다는 정작 아사드 정권에 ‘테러와 맞서 싸운다’는 명분을 갖도록 도와준 꼴이 됐다. 시리아 정부군이 교전지 외 공격에 대해 이 같은 이유를 대고 있기 때문이다. 서방이 반정부군에 지원한 무기 등이 알카에다로 흘러들어갈 것이라는 우려도 커졌다.

시리아는 오사마 빈 라덴 사망 이후 흩어진 알카에다 세력이 어떻게 재편됐는지 확인하는 자리가 됐다. 알카에다의 성전(지하드) 등 정신을 공유한 분파들이 본부를 중심으로 모이지 않고 지역으로 흩어져 세를 불린 것을 증명한 셈이다. 시리아에서 전열을 가다듬은 ISIS는 국경을 접한 이라크 안바르주 일대로 영향력을 확대해 수도 바그다드 코앞까지 위협하고 있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외곽의 팔레스타인 난민촌 마을 야르무크 주민들이 지난 1월31일 구호식량을 배급받기 위해 끝없는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여름 반정부군이 이 곳을 장악한 뒤 정부군이 주변을 봉쇄하면서 주민들을 반년 넘게 도시에 고립된 상태다. 사진은 유엔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UNRWA)가 공개했다. 야르무크|AP연합뉴스


■ 화학무기에 이은 잔인성, 통폭탄… 비인도적 살상무기의 등장

지난해 여름 다마스쿠스 인근에서 화학무기 공격이 일어나 어린이를 포함한 1300명이 숨졌다. 사린가스 등에 노출돼 손을 쓸 새도 없이 자는 듯 죽은 이들의 모습은 유튜브 등에 퍼져 국제사회의 공분을 샀다. 미국은 아사드 정권이 도를 넘었다고 선언하며 군사개입을 불사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아사드는 정부군의 소행이 아니라고 부인하면서도 기존에 가지고 있던 화학무기를 폐기하겠다고 약속해 면죄부를 받았다.

화학무기는 공해로 옮겨져 폐기 수순을 밟고 있지만 시리아 정부군의 살상은 더 집요하고 잔인한 ‘통폭탄(barrel bomb)’ 공격으로 이어지고 있다. 고성능 폭약과 유산탄, 휘발유를 통에 넣어 만든 이 폭탄을 헬리콥터를 이용해 떨어뜨린다. 알레포·홈스·다라야·야브루드와 수도 다마스쿠스 인근 등 거주지 밀집 지역이 집중 공격 목표다. 시리아 정부는 주거 지역에 숨어든 테러 잔당을 노린 공격이라고 설명하지만 통폭탄이 터진 거리와 시장에서는 노인과 어린이, 여성들이 가장 많이 죽었다. 통폭탄의 파괴력은 엄청나다. 알레포의 한 의사는 “사지가 절단되거나 머리, 복부에 부상을 입는 경우가 많다”며 “폭탄은 전투가 일어나는 최전선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전이 없는 도시 한복판에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폭발로 건물이 붕괴돼 사상자가 나오기도 한다. 지난해 말 알레포에 집중된 공격에 따른 사망자는 열흘간 650명에 이른다. 반정부조직 시리아국가연합은 내전 후 지난해까지 통폭탄으로 2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 실패한 제네바 평화회담… 정치·외교적 해결 요원

전쟁이 만 1년을 막 넘길 무렵, 국제사회는 시리아 내전을 멈추기 위한 논의에 들어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과 유럽연합, 중동 국가들의 외무장관들이 2012년 여름 스위스 제네바에 모여 머리를 맞댔다. 이 자리에서 아사드가 물러나 새 과도정부를 구성하는 길이 최선이라는 결의안을 만들고 이를 시리아에 제안했다. 아사드 정부와 시리아를 지원하는 러시아는 서방이 주도한 이 합의에 반발했지만 이를 계기로 시리아 정부와 반정부군 대표단이 휴전을 논의하겠다는 약속을 우여곡절 끝에 받아냈다.

정치적 해결 가능성이 열린 듯싶었지만 이후 싸움을 멈추지 않는 양측을 한자리에 어떻게 모으고, 누가 앉을지 이견을 조율하는 데만 1년 반이 걸렸다. 지난 1월 드디어 서방의 지지를 받는 반정부군 대표단과 러시아·이란의 지지를 받는 시리아 정부가 유엔의 중재로 평화회담(제네바2)을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 등 서방은 장기화된 사태를 해결하는 데 적극적인 의지가 없었다. 전쟁 당사자들도 시리아 과도정부 구성 여부를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타협의 여지는 보이지 않았다. 지난해부터 서방과 핵협상을 이뤄내며 중동 내 외교력을 키우고 있던 이란의 입지만 확인해준 자리가 됐다. 같은 시아파 계열의 시리아 정권을 지원하는 이란이 아사드를 설득하면 해결이 빨라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란을 경계하는 미국 의회 등의 반발로 이란은 평화회담의 정식 구성원으로 참여하지 못했다.

참혹한 전쟁을 끝낼 유일한 희망이었던 회담은 시리아를 둘러싼 첨예한 역학구도만 다시 한번 확인한 채 성과 없이 끝났다. 조만간 다시 협상 테이블이 마련될 수 있다는 보도도 나오지만 회담 자체에 회의적인 시각이 많아졌다.

더 이상 정치적 해결을 모색하기 힘들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반정부세력 연합인 시리아국민위원회는 “제네바2가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정치·외교적 해법을 더는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각국이 이해관계를 따지며 시간을 끄는 동안 시리아에서는 지금까지 14만여명이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