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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미 연준 의장 재닛 옐런 지명…경제정책, 시장주의서 ‘정부 개입’으로 선회

by bomida 2013. 10. 9.

ㆍ연준 첫 여성의장 옐런 공식 지명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 부의장이 연준 의장으로 지명된다면, 여성이 처음 미국 경제 수장직에 앉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오랫동안 경제대국 미국을 지배해온 경제관의 변화로도 읽힌다.

▲ 경제학계 ‘대항운동’ 참여 경력… 정계·학계서 지지
경기부양·일자리 확대 동시 추구… 월가에 비판적

1970년대 이래로 미국은 시카고학파가 주장해온 ‘완벽한 시장’에 대한 이론을 따라 정부 개입을 제한하는 시장자유주의 경제를 추구했다. 옐런은 이와는 달리 경제에서 정부의 역할을 중시한다. 옐런은 시장은 언제나 효율적이라는 ‘신화’를 거부하면서 1990년대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UC버클리) 교수 시절 경제학계의 ‘대항문화(counterculture)’ 운동에 참여했다. 또 정부 정책이 본질적으로 이득보다 비용이 더 든다는 시장론자들의 인식에도 반대한다.

이는 예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부터 갖게 된 관점으로 보인다. 정부 정책으로 경기 침체를 완화할 수 있다고 주장, 노벨상을 수상한 제임스 토빈이 옐런의 스승이었다. 토빈은 금융시장 거래세, 일명 ‘토빈세’의 주창자로도 유명하다. 옐런은 토빈 밑에서 공부하면서 실업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시각을 갖게 됐다. 남편인 조지 애컬로프 UC버클리 교수 역시 그의 성향에 영향을 미쳤다. 애컬로프는 정보의 불균형이 시장의 실패를 부를 수 있다는 ‘정보비대칭이론’을 창안,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 지명자.AP


옐런의 지명이 결정되기 전 가장 강력한 연준 의장 후보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밀접한 사이인 로런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이었다. 그러나 서머스 카드는 정계와 경제학계 모두에서 역풍을 맞았다. 미국 경제를 망친 금융규제 완화 정책의 선봉에 있었기 때문이다. 서머스는 2008년 금융 거품 붕괴를 몰고 온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에도 반대했다. 1990년대 후반 아시아 경제위기 때에도 아시아 각국에 허리띠를 졸라매는 재정개혁만을 강요해 지탄받았다. 하버드대 총장 시절에는 여성 비하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서머스 지명이 가시화되자 경제학자 350명이 서머스에 반대하며 옐런을 지지하는 서한을 백악관에 전달했고, 민주당 의원 3분의 1도 비슷한 서명을 했다. 서머스 반대 진영에는 애컬로프와 함께 노벨상을 수상한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도 포함돼 있었다. 결국 서머스는 물러났으며 오바마는 여론에 밀려 옐런의 손을 들어준 셈이 됐다.

벤 버냉키 연준 의장과 함께 양적완화 정책을 만들고 실행한 옐런은 경기 부양과 일자리 확대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관점을 갖고 있다. 정부가 더 적극적인 부양책을 써야 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플레이션은 감내해야 한다고 본다. 물가상승률이 현재 전망치인 2% 아래에서 유지된다면 지금처럼 시장에 돈을 푸는 정책을 유지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연준에서 국제금융부문을 맡았던 경제분석가 네이선 시츠는 블룸버그통신에 “경기 부양과 일자리 정책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것은 옐런의 발상이었다”며 “이 둘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최대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옐런은 월가를 보는 시각에서도 규제 반대론자들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그는 대형 금융기관들에 대해 비판적이며, 금융권 규제가 시장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본다. 따라서 이전보다 금융기관 규제를 강화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하지만 옐런이라는 ‘예측가능한’ 인물의 내정 소식에 시장은 안도하는 분위기다. JP모건체이스의 미국 경제 전문가 마이클 퍼롤리는 워싱턴포스트에 “시장은 낯익은 얼굴에 편안함을 느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