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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럽

꺼지지 않은 불씨, 유럽의 포퓰리즘

by bomida 2017. 9. 26.

영국 남부 브라이튼에서 지난 24일(현지시간)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린 가운데 유럽연합기와 영국기가 휘날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7월 뒤늦은 첫 해외순방길에 올랐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선택한 첫번째 목적지는 폴란드였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독일로 가기 전 유럽의 ‘냉대’에 앞서 ‘코드’가 맞는 폴란드를 택했다는 뒷이야기가 나왔다. 폴란드의 집권 법과정의당(PiS) 대표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역시 트럼프의 방문을 두고 “새로운 성공”이라고 치켜세웠다.


 두 권력자의 공통분모엔 지난 몇 년간 전 세계를 휩쓴 포퓰리즘이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의 당선과 맞물려 유럽에선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 반이민 정책을 내건 극우 민족주의 정당들의 득세로 기성 정치에 대한 반동이 커졌다. 하지만 올 들어 네덜란드 자유당, 프랑스 민족전선 등 극우가 잇따라 제1당 자리를 놓치면서 적어도 서유럽의 포퓰리즘엔 제동이 걸렸다는 게 중론이었다.


 지난 24일(현지시간) 독일 총선에서 나치 집권 후 70년 만에 극우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제3당으로 연방의회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를 두고 25일 “난민정책 등 유럽 유권자들의 공포와 분노를 활용해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선의 결과를 내고 있는 유럽의 포퓰리즘 정당들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포퓰리즘의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지난해 여론조사업체 유고브는 향후 10년간 포퓰리즘 정당의 바람이 이어질 것이라고 관측하며 브렉시트를 이끈 독립당과 프랑스의 극우정당 국민전선(FN), AfD, 트럼프 대통령을 “한 나무에서 갈라진 분파”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각국의 포퓰리즘 정당 지지율은 20%대를 나타내지만 실제 선거에선 대체로 그보다 낮은 10%대 득표율에 그친다. 돌풍은 일으켜도 강한 극우 색깔 때문에 당장 정부 구성에 참여하기 어렵고, 야당으로 남아도 한계가 많다. 스탠퍼드대 정치학자 안나 그지마와 부세는 워싱턴포스트에 “정책적 대안 제시에 실패한 주류 정당의 약화가 포퓰리즘이 권력을 잡은 계기”라며 “이들은 기존 정당의 무관심에 대항해 국민들의 이해를 대변하며 연정 파트너 없이도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민족전선의 마린 르펜과 자유당 헤이르트 빌더르스의 선거 이후 존재감은 여전히 크다. 


 연정을 구성하는 경우도 있다. 노르웨이 진보당은 반이민 정책을 내건 포퓰리즘 정당으로 총선에서 16% 득표율을 얻은 뒤 제1당인 보수당 주도의 연정에 참여하고 있다. 다음달 총선을 앞둔 오스트리아도 극우 자유당이 지지율 24%를 보이고 있어 30%대인 중도우파 국민당과 손을 잡을 가능성이 커졌다. 네덜란드의 포퓰리즘 전문가인 카스 무데는 “전통 정당의 쇠퇴로 선거 지형이 점점 더 파편화되면서 포퓰리즘 정당은 10~15%의 득표로도 새 대안으로 등장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분석했다.


 폴란드와 헝가리에선 포퓰리즘으로 집권한 정권이 민주주의를 무력화시키기도 했다. 강력한 국가주의 추구를 넘어 헌법재판소 권한을 축소하는 사법개혁, 언론 자유 제한, 선거법 개정 등을 통해 독재의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반이민·반유럽을 중심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한 정책이 핵심인 포퓰리즘 정당들이 각국에서 목소리를 내면서 국가 간 충돌 가능성도 있다. 더타임스는 “독일 극우의 부상은 유럽연합 전반의 반이민 정서를 강화할 것”이라며 “AfD의 ‘독일 우선주의’ 독트린과 복잡해진 연정 구도는 폴란드·헝가리의 국가주의 정권과의 긴장감을 확대시킬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예를 들어 폴란드는 독일에 1조달러에 이르는 나치에 대한 전쟁 피해보상을 요구한 상태이지만 AfD 총리 후보였던 알렉산데르 가울란트는 모든 참전 군인들에게 존경을 표시할 수 있도록 독일 정부가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